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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34] 한국인은 언제부터 빨랐나?
[한민의 문화등반 34] 한국인은 언제부터 빨랐나?
  • 한민
  • 승인 2022.04.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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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34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국은 빨리빨리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빨리빨리는 한때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였을 만큼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성정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닳아빠지는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이나 자판기에 손을 넣고 커피를 기다리는 한국인의 모습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화 「부산행」, 드라마 「킹덤」 등에 등장하여 한류의 한 축을 이끈 K-좀비의 특징 역시 미친 듯한 스피드다. 

과연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빨랐을까? 기원을 거슬러보면 의외로 빨리빨리의 역사는 길지 않다. 제국주의와 진화론적 사고가 섞여있긴 하지만 구한말 외국인들의 기록에는 한국인들이 상당히 느긋하고 심지어 ‘게으르다’는 기술들이 남아있으며, 한국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은근과 끈기’ 또는 천천히 끓고 오래 가는 ‘뚝배기’라는 말로 수식해 왔다. 

이미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하던 1980년대, 1990년대 초중반까지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존재하기도 했었다.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코리안 타임이란 약속 시간을 30분에서 1시간까지 넘나드는 농경문화적인 시간 계산법이다. 요즘의 한국인들을 생각해보면 예전에 그랬다는 사실조차 믿어지지 않지만.

그러고 보면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이 산업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농사는 분명 부지런해야 하지만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며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다르다. 한국인들을 게으르다고 묘사했던 19세기의 방문객들은 이미 분 단위의 삶에 익숙한 유럽 산업사회 출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한국인들은 늦었던 만큼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이미 누군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어야 했고 일본의 오랜 수탈과 전쟁으로 자원도 인재도 변변히 없었던 시절에 한국인들의 유일한 경쟁력은 부지런함뿐이었다. 그들이 3달 걸린다면 우리는 한 달, 그들이 저녁 5시까지 일한다면 우리는 밤 10시까지.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바뀌어갔다. 수천 년을 이어오던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며, 농사짓던 땅을 갈아엎어 공장을 지으며, 꼬불꼬불 산길을 뚫어 신작로를 내며 한국인들은 희망을 보았고 삶의 재미를 느꼈다. 뭐든 간에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었고 바꾸면 곧 성과로 이어지는 시대였다. 그렇게 빨리빨리는 한국의 문화가 되었다. 

빨리빨리의 이점은 분명하다. 빨리빨리 하는 사람들은 변화와 대처에 능하다. 그동안 우리가 손에 쥘 수 있었던 빛나는 성취들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한강 공원으로 배달되는 짜장면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빨리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감염병 대처까지도,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빨리빨리는 앞으로도 한국인들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임기응변만으로 살아갈 수만은 없다.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장기적인 시각도 필요하다. 변화에 대응하는 일 만큼이나 지금의 변화가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 그 언제보다도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금 ‘지속 가능성’이 화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적인 듯도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빨리빨리는 어느새 한국인들의 욕구로 자리 잡았다. 답답한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쾌감을 한국인들은 ‘사이다’라 부르며 갈구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은 사이다만 마셔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이다는 목구멍 수준에서는 시원함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심한 목마름, 체중과 혈당의 증가, 영양 불균형과 치아 건강의 악화를 가져온다.

사이다를 먹지 말잔 얘기가 아니다. 사람이 또 건강식만 먹고 무슨 재미로 살까. 모든 것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요는 균형을 찾자는 것이다. 사이다가 가장 맛있을 때는 삶은 계란이나 고구마, 돈가스처럼 퍽퍽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과 같이 먹을 때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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