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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④] 중년의 위기, 다시 찾은 삶의 이유
[한민의 문화 등반④] 중년의 위기, 다시 찾은 삶의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21.01.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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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 문화심리학자
한민 문화심리학자

다사다난한 2020년이 갔다. 매해 연말이면 다사다난이란 수식어가 붙지만 지난해는 유난했다는데 모두들 동의하실 것이다. 전지구적 재난이 된 코로나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도 실직과 구직,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남은 얼떨떨한 감정 속에 한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또 한 살을 먹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디 가서도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요 어디 가서도 늙었다고 하기 어려운 나이다. 어디에도 끼기 애매한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특히 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중년의 위기’라 한다. 


중년의 위기가 비롯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수명의 연장이다. 1960년대가 되어서야 평균수명이 60세를 넘었을 만큼 중년이란 말이 나온 시기 자체가 최근의 일이다. 살아야 할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아지는 것이 중년의 위기인 것이다.


중년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남은 인생을 살아갈 이유를 찾는 데 있다. 사람들은 소년기를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며 보내고, 청년기는 사회생활에의 적응과 성취를 위해 보낸다. 그런데 인생 초반기는 상대적으로 짧은 반면, ‘중년’으로 퉁치고 마는 인생 중반기는 생각보다 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꿈의 성취와 관계없이 중년의 당면 과제는 유지가 될 수밖에 없다. 목표를 이룬 이들은 새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고, 이루지 못한 이들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과 똑같을 내일을, 심지어 하루하루 착실히 줄어들고 있는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가 중년의 위기에 대처하는 핵심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몸부림치는 중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제시해 주는 것은 ‘관대성’이라 주장한다. 관대성은 자기 자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사회와 내 자식들이 살아갈 미래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많은 중년들이 중년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초점이 여전히 자신에게 향해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달라진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청년기의 역할을 지속하려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시술로 주름을 지우고 누군가는 약물로 사라져가는 능력을 되찾으려 하며, 누군가는 그간 성취한 돈과 권력으로 그것들을 얻기 위해 내버렸던 것들을 다시 사려 한다.  


그러나 청년의 젊음과 매력, 열정은 청년기의 필요에 의해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중년에게는 누군가의 선배로서, 부모로서, 스승으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이 요구된다. 후속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기여. 적어도 그러한 마음가짐이야말로 관대성의 본질이다.


중년들은 무의식적으로 관대성을 실현하려 한다. 그 이유는 삶에 대한 성숙한 깨달음으로부터일 수도 있고 자기 자리를 찾겠다는 절박함에서일 수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중년의 꼰대짓(!) 또한 기성세대의 깨달음을 후세에 전하려는 관대성의 발현으로 본다.


그러나 관대성의 가장 높은 차원은 후속 세대를 위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문화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잘 살기 위해 만들어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일단 문화가 형성되면 문화는 문화 구성원들의 행동을 규정하고 이끌어 간다. 따라서 후손들을 위한 더 나은 가치관과 삶의 기준들을 고민하고 정립하는 것이야말로 기성세대가 후속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주변을 향한다. 우리 아이들이 더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고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세상을 읽는 지혜와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아가 내가 사는 나라가 좀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였으면 좋겠다. 세계평화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년의 위기를 벗어나 성숙한 관대성의 의미를 찾아낸 것일까, 아니면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의 개인적 성취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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