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12-06 17:59 (화)
[한민의 문화등반 37] 공정한 사회를 위한 마음 습관
[한민의 문화등반 37] 공정한 사회를 위한 마음 습관
  • 한민
  • 승인 2022.05.30 0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민의 문화등반 37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국인들은 공정에 민감하다. 대단히 민감하다. 혹자는 그동안 한국에 불공정한 일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라 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한국인들의 마음 습관, 즉 문화적 경험 방식 때문일 가능성을 이야기해 왔다. 물론 한국에 불공정한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적 기억이 닿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나라의 체계가 완전치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현상은 역사 사회적 조건과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상호작용이다. 근대가 시작된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시스템이 작동했던 곳은 없으며 우리가 선진국으로 추앙해 왔던 나라들도 사정을 알고 보면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불공정이 만연했었고 지금도 그렇게까지 이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개개인을 불공정에 민감하고 이에 저항하도록 만드는 것은 사회적 조건에 이은 그 나라의 문화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부정적인 경험을 한(恨)이라 규정했는데, 문화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은 첫째, 부당한 차별을 받았을 때, 둘째,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셋째, 자신이 했던 돌이킬 수 없는 일(부정적 결과)로부터 발생한다. 이 중 셋째를 제외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이 공정과 관련된다. 

어떠한 일이 내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다른 이가 가진 무언가가 내게 박탈감을 줄 때, 한국인들은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게 닥친 이 상황이 부당하고 이러한 부당함을 해결할 수 없음이 답답하다는 느낌이 합쳐진 정서다. ‘억울함’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으면 일련의 심리적 적응과정을 거쳐 한(恨)이 된다. 공정과 관련된 경험에서 비롯된 정서를 부정적 경험의 최고봉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공정’에 민감한 마음의 습관을 지녀 왔다 하겠다. 

현대사회에서 시민들로부터 출발하는 공정의 추구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한(恨)은 한때 일부 학자들이 주장했듯이 무력감과 자포자기의 퇴영적 정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시민들이 요구하면 어쨌거나 국가는 공정한 절차를 고민할 것이고 고위 공직자가 될 사람들은 어쨌거나 자신과 가족을 단도리할 수밖에 없으니 이를 통해 한국은 어쨌거나 점점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인들의 마음 습관에는 고려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경험을 내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억울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애매하거나 불공정하여 마음이 분하고 답답하다’라는 뜻이 나온다. 억울함에는 누가 봐도 불공정한 경우도 있으나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당사자는 억울해 죽을 맛인데 제 3자가 옆에서 보기에는 별로 억울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별로 억울할 게 없다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너는 누구 편이냐며 핏대를 올린다. 한(恨)의 두 번째 원인으로 꼽히는 상대적 박탈감도 애매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다. 자산이 100억 원이 있어도 200억 원인 사람이 있다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니 말이다. 한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표상 객관적으로 고소득층인 이들도 절반은 자신이 빈곤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에게 닥친 불공정은 크게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객관적인 지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객관화의 능력이다. 적절한 수준의 자기중심성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자기중심적 해석은 인지적 오류와 정신병리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사태), 평창 올림픽 단일팀 논란, 법무부 장관 가족의 입시 부정, 코인 규제와 부동산 문제 등 수많은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전 정권이 물러나고 무한한 공정에 대한 희망을 품은 새 정권이 들어섰다. 피켓을 들어가며 거리에 나서가며 한국 사회를 위한 공정을 외쳤던 분들은 모쪼록 새 정권에도 같은 기준을 요구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외쳐왔던 목소리도 진심이 아니라는 오해를 살 수 있으니.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