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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⑧] 세대갈등의 심층심리
[한민의 문화 등반⑧] 세대갈등의 심층심리
  • 한민
  • 승인 2021.03.0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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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살해’ 모티브, 열정페이로 이어져
현실 위해 미래 가능성 희생하는 방식
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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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갈등이 갈등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과 맞물려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진화적으로 볼 때 부모자식 간엔 원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은 대개 자원의 배분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데 보통 자식이 더 많은 자원을 원하는 양상을 보인다. 아무래도 자식이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 자식의 이러한 관계는 세계 많은 지역의 신화, 문학, 예술에서 부친살해라는 모티프로 나타난다. 부친살해는 전 세계 신화와 동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보편적 주제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신화일 것이다. 

물론 부친살해는 은유다. 현실에서 아버지를 죽이는 행위는 존속살해에 해당하며 가장 무거운 형량이 선고되는 범죄로 취급된다. 오이디푸스도 자신의 죄를 깨달은 뒤 스스로 두 눈을 뽑고 평생을 방랑함으로 죄값을 치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상징적으로 보자면 부친살해는 과거, 혹은 지난 세계와의 단절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나타내며,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창조의 주체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올림푸스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이고 자신의 세계를 연 것은 부친살해의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친살해는 또한 자식이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아이는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주체로서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간다. 

그러나 부친살해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보편적 모티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에서는 부친살해의 서사를 좀처럼 볼 수 없다.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자식들이 아버지를 극복한 사례가 극히 드물거나 혹은 권장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학박사 김영희에 따르면, 한국의 전설, 설화, 민담에는 부친살해가 아니라 ‘자식살해’라는 모티브가 나타난다. 흉년에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거나(손순매아, 동자삼 등) 현재의 질서를 뒤엎을 영웅이 태어나면 부모와 동네 사람들이 후환을 막기 위해 아이를 죽이는(아기장수 설화) 등이다. 

한국문화에서 발견되는 자식살해의 서사는 아버지로 표상되는 기존 질서에 대한 순종과 헌신을 의미한다. 효(孝)를 으뜸 가치로 쳤던 한국의 역사에서 부친살해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패륜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자식살해는 청년 세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열정페이나 노오력 타령 등으로 21세기가 되도록 반복되고 있다. 

과거의 아버지들이 자식의 순종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참고 따라라. 그러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언젠가는 네 것이 될 것이다’는 메시지다. 부모를 위해 자식을 죽인 아들은 복을 받는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생매장하던 손순은 땅을 파다가 돌로 된 종을 캐내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나라로부터 큰 상을 받았고, 세상을 바꿀 아기장수를 죽인 부모와 동네 사람들은 역적의 부모, 역적의 동네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다. 

즉, 한국사회는 현실의 안위를 위해 미래의 가능성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지속해 온 것이다. 이것이 자식살해의 본질이다. 물론 현실의 안위도 중요하다. 현실의 안위가 있어야 미래도 가능한 법이므로. 하지만 현실의 안위만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변화와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친살해에는 단지 아버지가 가진 것을 차지하겠다는 것 이상의 이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정체성의 확립과 실존에 대한 욕구다.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나 큰 반면,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더구나 부와 명예까지 보장된다면 누가 굳이 아버지를 살해하려 하겠는가. 

자식들이 이 모든 것을 무릅쓰고도 아버지를 극복하려 하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법과 질서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면서 자신의 개별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 삶을 자신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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