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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1] 동일시, 능력주의 강조가 의미하는 것
[한민의 문화등반 41] 동일시, 능력주의 강조가 의미하는 것
  • 한민
  • 승인 2022.07.2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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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1

 

한민 문화심리학자

지난 글에서 한번 언급한 능력주의란 요약하자면 개인의 능력껏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능력주의가 강한 나라로 꼽히는데 이는 능력에 따른 차별과 차등을 인정해야 한다는 태도로 드러난다. 능력껏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 거기서 누리는 모든 특권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 누리지 못하는 권리들은 언젠가 그 자리에 오르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갑질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이 모두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최근 이루어진 한국의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문제제기들의 이면에는 분명 이러한 심리가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든다. 어쩌면 당연한 이 의문은 ‘과연 그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이다. 

물론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개인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하고 그를 위해서 공정한 시스템과 절차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행성 도박에 명운을 거는 일은 아니어야 하고 내가 확인할 수 없다 하여 남이 얻은 성과를 불공정으로 폄훼하여 결국 자신의 밥상까지 걷어차는 일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계층의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능력 있는 누구나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그리고 그것이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편으로 순진하고 한편으로는 병리적이다. 그 근거가 내 능력이 다른 이보다 뛰어나다는 믿음에 있다면 본인의 정신건강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가능성이 극히 적은 환상이며 자기객관화가 덜 된 모습이라는 것이 지난 글의 요지였다. 

오늘은 이 현상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며 나는 특권을 누릴 능력이 있고 내가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의 불공정에 귀인하지만 다른 이들의 성취를 질시하며 정작 더 큰 불공정에는 침묵하는 이들은 사실, 스스로의 자아를 보호하려는 중인지 모른다. 

정신역동이론의 방어기제라는 개념인데, 방어기제는 욕구의 좌절로 인한 불안에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기제다. 이 경우는 ‘동일시’로 보인다. 동일시는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설명하면서 언급한 방어기제로 내게 불안을 초래한 대상에게 나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불안을 낮추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 사람들은 불안해진다. 사실 나는 능력도 없고 성공할 가능성도 없는 존재가 아닌가. 이러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나는 능력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더욱 강력하게 믿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에서 능력 있고 성공한 이들의 태도와 자신을 일치시키려 하는데 이러한 시도들이 성취를 위한 동기화를 지나쳐 실패한 자신을 정당화하고 성취를 이루는 다른 이들을 공격하는 데까지 이르면 자신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병리가 된다.

한국사회의 동일시는 뿌리 깊은 과시성 소비에서부터 집도 없는 이들의 종부세 걱정이나 매일같이 야근에 주말에도 출근하는 삶을 살면서 주52시간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이들 등 다양한 맥락에서 관찰되어 왔다. 일부 취준생 또는 사회초년생들의 능력주의 신봉 역시 동일시라는 방어기제로 해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정신역동 이론에 따르면 동일시는 자신에게 불안을 야기한 대상에 대한 공격적 정서를 줄여줌으로써 응집력 있는 집단형성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상으로부터의 독립과 퇴행사이의 갈등을 완화시켜준다는 기능을 갖는다. 쉬운 말로 하자면 나는 능력 없고 성공도 못할 거 같지만 능력있고 성공한 사람들과는 잘 지내고 싶다는 얘기다. 그들과 잘 지내는 편이 살아가는데 유리할 테니 말이다. 방어기제의 기능이다. 어떻게든 자아가 살아남도록 만드는 것. 

다음은 학술적 호기심이다. 한국문화에서는 왜 동일시와 같은 방어기제가 두드러질까. 방어기제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사람들의 욕구도 다양하고 그 욕구를 충족하는 방법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와 구분되는 특정한 유형의 행동이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 사회만의 독특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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