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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60] 꿈이 없는 청년을 걱정하는 중년에게
[한민의 문화등반 60] 꿈이 없는 청년을 걱정하는 중년에게
  • 한민
  • 승인 2023.07.26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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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60 끝.

 

한민 문화심리학자

청년이 꿈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한참 되었다. 앞으로 뭐가 하고 싶냐는 질문에 청년은 어두운 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요즘 애들은 꿈이 없어~’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는 물론이고 초중고 선생마저 걱정이 한가득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이 꿈이 없다니, 느낌상 매우 부정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과거의 청년은 무슨 구체적인 꿈이 있었는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문화심리학자’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취업이 잘 될 거라는 친척 형님의 추천으로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아내를 일어일문학으로 이끈 것은 장모님께서 지인에게 할부로 구입한 일본어 학습 전집이었다. 

오랜 시간 학생의 전공을 결정지은 것은 소위 고3 때 치렀던 학력고사 또는 수능 모의고사의 점수였지 결코 학생의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도 딱히 어떤 꿈이나 목표가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렵게 대학에 왔다는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뿐 졸업하고 나서 뭘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는 친구는 드물었다. 

졸업이 가까워지면 토익을 보네, 학점 관리를 하네 하며 나름 취업 준비를 했지만 그것이 어떤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덜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지금 청년들’이 꿈이 없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고, 여러 사람들이 그걸 걱정하기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나 때는 안 그랬지만 지금 청년들은 뚜렷한 인생 목표와 계획을 갖고 세상에 나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나는 한참을 살아오면서 갖게 된 여러 가지 목표를 예전부터 꿈꾸어왔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심리학적으로는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중년이 되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가장 큰 이유는 물리적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멈출 용기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에너지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지나온 삶을 긍정하며 삶의 안정감을 찾는다. 

그러나 돌아보면 인생은 언제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필자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색약 때문에 천문학의 길을 갈 수 없었고, 사학과를 갈까 했으나 취업이 어렵다는 주변의 걱정 때문에 심리학을 선택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공부에 대한 막연한 동경 반과 취업에 대한 공포 반으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학위를 받고 난 다음부터는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고뇌와 방황이 이어졌다. 

일찌감치 보다 뚜렷한 꿈이 있었더라면 그러한 고뇌와 방황의 시간이 없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잘 짜여진 계획도 인생의 무수한 변수 앞에서는 제대로 맞아들어가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그때그때 되는 대로 살아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운칠기삼(運七氣三)이란 말이 있듯이, 아무리 운이 좋아도 자신이 할 탓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이 순간, 현재는 우리가 경험한 그 어느 시대보다도 불확실성이 큰 시대다. 경제구조의 변화, 기후 및 환경재난, 닫혀 가는 신분 이동의 가능성. 지금 시대의 청년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혼과 출산율이 괜히 바닥을 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시기에 기성세대가 후속세대에게 전달해야 할 것은 회의와 절망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희망이어야 한다. 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당장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한때 설정한 목표가 꺾이거나 사라져도 잘 살 수 있다. 하루하루 의미있게 자신의 삶을 살면 된다.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도 한두 명은 필요하지 않을까.

불확실성의 시대에 근거 없는 희망을 주자는 말이 아니다. 살아갈, 살아낼 용기를 주는 것은 근거 없는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세상을 만든 책임이 있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줄 책임도 있다.

이번 호로 ‘한민의 문화등반’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수고해 주신 필자와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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