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19:20 (화)
마을에서 어떤 배움을 할 수 있을까
마을에서 어떤 배움을 할 수 있을까
  • 양진오
  • 승인 2021.04.28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⑩

“학생들은 서서히 배웠다. 마을의 복잡함에 대해서 말이다. 
마을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마을 주민의 이질적 구성 관계, 입장의 차이, 
마을을 둘러싼 여러 견해를 학생들은 배웠다.”

마을이란 말은 그 울림이 참 좋다. 마을이란 말은 배려와 돌봄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환기한다. 실제 현실에는 이런 마을이 없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 이런 주장이 아주 무리하지는 않다. 마을이 사라진 자리마다 전광석화처럼 대단지 대규모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게 시대의 추세인 까닭이다. 마을은 더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가상의 장소처럼 보인다. 오늘날 마을은 아파트 재개발을 위한 배후지 정도로 평가되는 게 아닐까 싶다. 

대구 북성로도 그렇다. 북성로는 대구 도시재생의 최전선이다. 한때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도 북성로가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식민지 시대 일본인 식민자의 거리였던 북성로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공구 가게 거리로 새로이 변모한다. 말하자면, 북성로는 나름대로 도시재생을 한 거다. 공구 가게 거리의 생명력은 우리나라 산업화와 궤를 같이하는 1970~80년대가 절정기였다. 

반면에 2000년대로 접어들며 공구 가게 거리의 생명력은 빛이 바래기 시작한다. 그런데 거리는 쉽게 죽지 않는다. 2000년대부터 북성로가 대구 도시재생을 선도하는 장소로 진화한 까닭이다. 사회적기업, 마을협동조합, 독특한 개성의 카페와 가게들이 북성로에 입점한다. 북성로대학도 북성로 원도심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게 북성로의 진실은 아니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지역문화 유산

현재 북성로는 건설이 한창이다. 이러다가 북성로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북성로 건설 경기의 주역은 단연 아파트이다. 북성로 곳곳마다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흔적 없이 사라지는 지역문화 유산이 한둘이 아니다. 한 예를 들면 이렇다. 

한국전쟁기 서울 문인들이 대구로 피난을 온다. 구상 시인도 이때 대구로 온다. 종군작가단 일원으로 대구로 오게 되는 거다. 이때부터 구상 시인과 대구와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된다. 구상 시인이 그 각별한 인연에 기대어 출간한 시집이 초토의 시이다. 초토의 시가 한국전쟁의 비극과 상처를 노래한 전후 대표적 시집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된다. 

1956년 초토의 시 발간 기념회가 북성로 꽃자리다방에서 열린다. 꽃자리다방 인근에 소금창고가 고풍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문을 연 창고이다. 역사가 백 년을 넘기는 창고였다. 대구 근·현대사의 타임라인이 베인 소금창고가 같은 이름의 카페로 탄생했다. 북성로를 오갈 때마다 카페 소금창고에 들렀다. 소금창고, 대구 문화자산으로 손색이 없었다. 소금창고를 허물고 들어서는 건 45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소금창고의 소멸이 안타까웠다. 식민자 일본인들이 만든 유곽 자갈마당 일대에도 신축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대구의 마을들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다.

나는 중뿔나게 아파트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좋은 집과 환경에서 살고 싶은 사람의 욕망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좋은 집을 바라는 사람의 심리는 인지상정이다. 다만 아쉬운 건 이런 거다. 소금창고와 같은 문화자산은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거다. 말하자면 문화자산을 기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금창고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정말 소멸되는 거다. 나는 이게 안타까웠다. 어디 소금창고만 그럴까.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한 지역 문화자산들이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록되어야 하는 건 문화자산만이 아닌 게다. 마을도 기록되어야 한다. 마을을 아파트 재개발을 위한 배후지에서 구출하고 싶었다. 마을이 마을의 일상을 이야기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20년에 나는 북성로에서 일을 벌였다. 마을 기록의 배움을 다지는 일이다. 혼자 하지 않았다. 지역 스토리텔링을 공부한 학생들과 이 배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2020년 6월 26일 문화콘텐츠 전문 사회적 기업 ETC 박성백 대표와 지역 청년들의 마을 워크숍이 대구 하루에서 열렸다. 사진은 대구 하루에서 열린 마을 워크숍 모습이다(2020년 6월 26일 촬영). 사진=양진오
2020년 6월 26일 문화콘텐츠 전문 사회적 기업 ETC 박성백 대표와 지역 청년들의 마을 워크숍이 대구 하루에서 열렸다. 사진은 대구 하루에서 열린 마을 워크숍 모습이다(2020년 6월 26일 촬영). 사진=양진오

마을을 기록하는 배움

운이 좋았다. 마침 대구시 산하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에서 마을사업을 공모했다. 여러 사업 중에서 마을의제 연구 사업에 지원했다. 요행히 사업에 선정되었다. 센터에서 대학 선생의 사업 참여를 가상하게 여긴 게 아닌가 싶다. 마을 배움을 추진할 약간의 예산은 마련이 된 셈이다. 관건은 마을 배움의 비전이었다. 학생들과 마을 배움의 비전을 놓고 자주 토론했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마을 배움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업 추진 이전에 마을 배움의 비전과 방법을 먼저 숙고하는 게 옳다 싶었다. 

나는 사업 참여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마을을 더 깊게 공부해 보자고. 그리고 마을을 기록하되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또한 이렇게도 당부했다. 마을 주민들을 원주민으로 호명하며 배움의 대상으로 가두지 말자고. 더불어 배우고 더불어 협력하는 관계 구성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마을 배움의 방법으로 워크숍을 기획했다. 전문화된 기록 학교의 개교는 시간이 더 걸릴 터여서 일단 워크숍을 연 거다. 이렇게 2020년 6월 한 달 마을 워크숍이 열렸다. 골목 그리기 투어를 계획 중인 화가, 대구 원도심을 기록해온 대만 유학생, 지역 사회적기업 대표가 마을 워크숍의 강사였다. 지역대학 학생들이 마을 워크숍의 학생이 되어 주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마을 워크숍은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성과는? 성과는 괜찮았다. 마을이 워크숍 이상의 배움터로 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진행된 마을 워크숍 포스터이다. 사진은 마을의 재발견 포스터(2020년 6월 19일 촬영). 사진=양진오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진행된 마을 워크숍 포스터이다. 사진은 마을의 재발견 포스터(2020년 6월 19일 촬영). 사진=양진오

워크숍에서 마을 기록의 여러 사례를 학습한 학생들이 드디어 활동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서서히 배웠다. 마을의 복잡함에 대해서 말이다. 마을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마을 주민의 이질적 구성 관계, 입장의 차이, 마을을 둘러싼 여러 견해를 학생들은 배웠다. 그리고 학생들은 정말 배웠다. 마을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를. 2020년 10월 가을에 ‘채울’이라는 제호의 향촌동 마을 기록지가 출간되었다. 학생들과 주민이 더불어 만든 마을 기록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