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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학습자, 지역대학의 또 다른 학생 
성인 학습자, 지역대학의 또 다른 학생 
  • 양진오
  • 승인 2021.06.08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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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⑬

“지역대학 인문학 연구자들은 성인 학습자와 만나야 한다. 
신입학 충원에만 목숨 걸 일이 아니다. 지역과 지역대학의 위기는 깊다. 
그럴수록 지역의 성인 학습자들과 함께 인문학의 활로를 궁리해야 한다.”

2021년은 한국 고등교육이 신기원을 연 해이다. 신기원이라? 말이 좋아 신기원이지 그 실질적 의미는 한국 고등교육의 위기를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고등교육의 관행적 방식이 해체되는 위기이다. 2021년 우리나라 대학들은 신입학 충원에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2021년 우리나라 대학들이 신입학 모집을 100% 충원한 게 아니다. 미충원은 대부분 지역대학에서 일어났다. 언론마다 난리법석이다. 지금도 그렇다. 교육부가 나섰다. 교육부가 지난 5월 20일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요점은 우리나라 대학을 권역별로 나눠 유지충원율을 근거로 정원 감축과 퇴출을 유도한다는 거다. 교육부는 부실대학과 한계대학이 정원 감축과 퇴출의 대상이 될 거라고 한다. 교육부 정책은 수도권 외부 지역대학의 미래를 더 암울하게 만든다. 교육부 정책대로라면 지역대학의 정원 감축과 퇴출이 명약관화하다. 악순환이다. 교육부의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역대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원 감축을 강요받고 있다. 

‘좀 더 알찬 앎’을 기대하는 성인 학습자들

수도권은 블랙홀이다. 지역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대학 학생들은 수도권 대학으로의 편입이 로망이다. 졸업생들도 서울을 동경한다. 지역대학 소속의 적지 않은 교수들이 거주지를 서울에 두고 있다. 지역은 수도권의 식민지 같다. 게다가 지역의 학령인구는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 정책은 지역대학을 더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한다. 그러면 이제 모든 게 다 끝난 건가.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서 지역대학 인문학 연구자들이 지역 안으로 들어가 성인 학습자를 만나보기를 부탁하고 싶다. 

중뿔나게 지역대학이 평생교육의 시대를 대비하자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더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거다. 대구만이 아니라 지역에는 ‘좀 더 알찬 앎’을 기대하는 성인 학습자들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물론 대학마다 평생교육원이 있다. 대학 평생교육원마다 성인 학습자 대상의 인문학 강좌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대학 평생교육원이 성업 중이다. 평생교육원 수강생들은 동문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이가 끈끈하다. 그런데 평생교육원 인문학에 만족하지 않는 성인 학습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5월 28일 토요일 대구 칠곡의 공공도서관 구수산 도서관을 다녀왔다. '이육사의 대구 시대'를 주제로 성인 학습자와 만났다. 오전 열 시부터 강좌가 시작되었다. 이른 시간이었으나 30명 이상의 성인 학습자들이 수강했다. 구수산 도서관의 성인 학습자들은 20대 학생들보다 집중력이 뛰어났다. 강좌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구수산 도서관만 이렇지 않을 거다. 지역의 많은 성인 학습자들이 좀 더 알찬 앎을 기대하고 있다. 

대구 칠곡 구수산 도서관에서 진행된 인문학 강좌의 모습. 30여 명의 성인 학습자들이 이날 열린 '이육사의 대구 시대' 인문학 강좌를 수강했다. 지난 5월 29일 촬영. 사진=양진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실천하기 전부터 그랬다. 지역 도서관과 사회적기업의 인문학 강좌 요청이 있으면 요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상당한 시간을 강좌 준비에 투자했다. 대개 도서관 인문학 강좌의 강좌 시간은 두 시간이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강의하고 삼십 분 정도 질문을 받는다. 만만치 않은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동종 업종의 선배인가 싶을 정도로 전직이 의심스러운 분들이 있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실천하면서 강좌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궁리하게 된다. 이 궁리는 혼자서 하는 궁리이기도 하고 원도심 인문학 전문가들과 더불어 같이 수행하는 궁리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원도심 스토리를 인문학 강좌로 만들어내 지역의 성인 학습자와 공유할까를 궁리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북성로대학 프로젝트 실천 이후에는 지역 성인 학습자와 좀 더 능동적으로 만나는 거다. 대구도 그렇지만 지역은 인문학의 보고이다. 대구를 예로 들어 말해 보기로 하겠다. 

지역은 인문학의 보고이다

살려내고 싶은 대구 원도심 스토리가 많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구상 시인, 마해송 아동문학 작가 등이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대구로 왔다. 휴전 이후에도 구상 시인은 당장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대구와 가까운 왜관에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한다. 마침 베네닉토 수도회가 왜관에 문을 열게 되면서다. 구상 시인은 이중섭 화가를 대구로 부르기도 했다. 이들의 우정이 각별하다. 이 둘의 관계를 주목하고 기획한 인문학 강좌가 '구상과 이중섭의 백 년 우정'이다. 

북성로대학 인근에 대구 종로가 있다. 종로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구에도 종로가 있다. 종로가 특별한 이름이 아니다. 종루가 있는 길이 곧 종로다. 종로와 만나는 마을이 장관동이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에 나오는 주요 장소가 장관동이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54년 대구이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전쟁고아 신세였던 길남이의 간난을 이야기하는 참 눈물겨운 소설이다. 

대구 종로에서 진행된 『마당 깊은 집』 문학 답사 모습. 20여 명의 성인 학습자들과 함께 『마당 깊은 집』의 주요 장소를 답사하며 작품의 현재 의미를 되새겼다. 지난 5월 2일 촬영. 사진=양진오

그런데 이 소설이 길남이의 간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 소설은 길남이의 꿈을 이야기한다. 어떤 꿈인가? 성장의 꿈이다. 자기를 키우는 꿈이다. 종로 저만치서 길남이가 ‘신문 사이소’를 외치며 뛰어오는 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콧등이 시큰하다. 길남이는 꿈을 꾸는 원도심 소년이었다. 나는 종로와 장관동을 오가며 마당 깊은 집 문학 답사를 꿈꿔왔다. 기회가 되면 성인 학습자들과 함께 마당 깊은 집 문학 답사를 하고 싶었다. 그런 기회가 왔다. 봄이 깊어지던 5월 첫째 주 일요일. 대구 중구문화재단 후원으로 성인 학습자들과 함께 마당 깊은 집 문학 답사를 추진할 수 있었다. 반가웠다.

지역대학 인문학 연구자들은 성인 학습자와 만나야 한다. 신입학 충원에만 목숨 걸 일이 아니다. 지역과 지역대학의 위기는 깊다. 그럴수록 지역의 성인 학습자들과 함께 인문학의 활로를 궁리해야 한다. 그게 옳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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