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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원도심에서 만난 일본의 한국문학 독자들
대구 원도심에서 만난 일본의 한국문학 독자들
  • 양진오
  • 승인 2021.04.14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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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⑨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었다. 
한·중·일 시민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원도심을 걷고 싶은 꿈이다. 
이 꿈을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로 이루고 싶었다.”

이메일을 여러 번 읽었다. 수신자가 나인가 싶었다. 수신자는 양진오가 틀림없었다. 이메일 발신자는 일본 도쿄 진보초에서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쿠온을 경영하는 김승복 대표였다. 김승복 대표는 쿠온만을 경영하지 않았다. 한국문학 북카페 책거리도 경영하고 있었다. 이메일의 내용은 이러했다. 

쿠온 주관으로 일본 독자들이 한국문학 답사를 해마다 해오고 있다. 올해 답사지는 대구인데, 구글 검색을 하다 대구 향촌동 스토리텔링 맵북 기사를 알게 되었다. 자신과 일행에게 향촌동과 대구 원도심 일대를 안내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말하자면 가이드 요청이었다. 요청은 더 이어졌다. 10월 답사 전에 도쿄 책거리 독자 모임에 와서 대구 원도심을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2019년 3월에 받은 이메일이다. 도쿄에는 8월에 와주십사 요청을 받았다. 김승복 대표의 요청에 화답했다. 8월 도쿄 진보초 책거리에서 뵙자고. 그리고 10월에 예정된 대구 답사도 도와드리겠노라고. 나는 왜 김승복 대표의 요청에 화답했을까. 여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우연의 일치일까, 김승복 대표의 이메일을 받기 전부터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었다. 한·중·일 시민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원도심을 걷고 싶은 꿈이다. 이 꿈을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고 싶었다. 황당한 꿈일 수 있다. 한·중·일 시민이 원도심을 같이 걸으며 우정을 쌓는다는 이 꿈 말이다. 한·중·일 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근대 제국주의 침략과 저항의 역사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긴장과 대립이 수시로 촉발되는 나라가 한·중·일 아닌가.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세 나라 시민이 원도심을 같이 걸으며 상호 이해의 너른 토대를 만들어 간다면 이 또한 이룰만한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이렇게 온 거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도쿄 진보초와 대구에서 만난 일본 독자들

드디어 8월이 왔다. 책거리 강연일 이틀 전에 도쿄에 도착했다. 숙소는 일본 최초의 근대공원인 우에노 공원 인근으로 정했다. 우에노 공원과 그 일대를 정밀히 답사하고 싶어서였다. 우에노 공원은 천황의 나라를 만들며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된 일본이 만들어낸 근대적 장치이다. 단순한 놀이 공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에노 공원의 내부 구조와 근대의 표상 건축인 박물관, 동물원, 미술관 등의 배치 방식이 궁금했다. 우에노 공원 답사 일정은 도쿄 도착 다음 날 오후로 잡았다. 다음 날 오후, 숙소에서 우에노 공원 방향으로 걷는데, 혐한 표현을 쏟아내는 차량을 만났다. 일본 극우들이 분명했다. 8월의 뜨거운 열기만큼 그들의 언어도 뜨거웠다. 제국 일본과 절연되지 않은 일본의 민낯을 우에노 공원 인근에서 만난 거다.

일본 진보초에 있는 문학 카페 ‘책거리’에서 일본 독자들과 만난 날(2019년 8월 16일 촬영). '문학으로 이야기하는 대구와 대구의 일본인들' 강의를 듣기 위해 책거리에 모인 일본 독자들이다.
일본 진보초에 있는 문학 카페 ‘책거리’에서 일본 독자들과 만난 날(2019년 8월 16일 촬영). '문학으로 이야기하는 대구와 대구의 일본인들' 강의를 듣기 위해 책거리에 모인 일본 독자들이다. 사진=양진오

우에노 공원이 만들어지기 바로 이전의 우에노 지역은 전쟁터였다. 막부군과 막부군을 타도하려는 천황지지 정부군의 일대 격전이 벌어진 장소가 바로 우에노 공원과 그 일대이다. 이 전쟁이 바로 보신전쟁(1868~1869)이다. 전쟁의 승자는 천황지지 정부군이었다. 일본의 전근대가 막을 내리고 근대가 문을 여는 지점이 우에노인 셈이다. 보신 전쟁 이후 우에노는 일본 근대의 공간적 아이콘으로 바뀌어 간다. 

강연일이 다가왔다. 숙소에서 진보초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강연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하는 게 좋다 싶었다. 김승복 대표와 반갑게 만났다. 일본의 문화적 자존심으로 불리는 진보초에서 한국문학 출판사와 문학 카페를 경영하는 김승복 대표가 존경스러웠다. 이때도 위안부 문제가 한일 두 나라의 정치적 이슈였다. 강연을 이렇게 시작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안부 문제는 인권 문제이니 한일 두 나라 시민이 협력하여 이 사안에 대응하면 좋겠다고 서두를 열었다. 

진지하고 성실했던 배움의 태도

일본 독자들의 반응은 진지했다. 마침 대구 원도심 이야기에는 식민자의 거리인 북성로의 탄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성로의 탄생에 뒤이어 근대 도시 대구의 면모를 식민의 역사와 결부하여 말씀을 드렸다. 대구읍성 해체, 경부선 개통, 근대적 병원과 학교의 등장, 이천동 소재 대구 주둔 일본군 80연대의 위치 등 일본 독자들은 근대 도시 대구의 예사롭지 않은 성격을 주의 깊게 학습했다. 강연을 마치고 일본 독자들과 함께 피자와 음료를 시식했다. 분위기는 한결 친근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독자들이 10월 대구에 온다고 했다. 

일본 진보초 소재 한국문학 출판사 쿠온과 문학 카페 책거리가 주관하는 일본 독자들의 대구 원도심 및 인근 지역 답사가 2019년 10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대구문학관 1층에서 찍은 일본 독자들의 단체 사진(2019년 10월 20일 촬영). 사진=양진오
일본 진보초 소재 한국문학 출판사 쿠온과 문학 카페 책거리가 주관하는 일본 독자들의 대구 원도심 및 인근 지역 답사가 2019년 10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대구문학관 1층에서 찍은 일본 독자들의 단체 사진(2019년 10월 20일 촬영). 사진=양진오

대구 문학 답사를 준비하는 일본 독자들은 성실했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 집>을 대구 답사 전에 읽기로 했다고 한다. <마당깊은 집>의 문학적 배경은 1954년 대구 중구 장관동이다. 전후 대구 원도심을 배경으로 쓴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이 <마당깊은 집>이다. 이 소설은 전후 대구의 풍속화이다. 이 소설을 정밀하게 읽으면 1954년의 대구가 보인다. 일본 독자들은 대구를 이렇게나 알고 싶어 했다. 배움의 태도가 성실한 일본 독자들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기분 좋게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10월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드디어 일본 독자들과 만나기로 한 그날이 왔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정말 이들과 대구 원도심을 즐겁게 걷고 싶었다. 출발지는 대구문학관이었다. 대구의 10월은 화창했다. 일행들의 표정은 모두 밝았다. 반가웠고 기뻤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국제 버전이 이날 대구 원도심에서 개막되고 있었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진골목을 답사하는 일본 독자들(2019년 10월 20일 촬영). 진골목의 ‘진’은 ‘길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사진=양진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진골목을 답사하는 일본 독자들(2019년 10월 20일 촬영). 진골목의 ‘진’은 ‘길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사진=양진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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