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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기술의 융합, 그게 답이다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 그게 답이다
  • 양진오
  • 승인 2021.10.20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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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20

“세상의 앎이 융합의 방식으로 생산, 분배되는 이 자명한 진리를 
지역대학 인문학은 아직도 애써 외면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 밖, 세상의 앎이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대학 캠퍼스 밖은 특정 전공으로 만들어지고 특정 전공이 작동하는 세계가 아니다.”

지난 6월 4일 기초과학학회협의체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지역대학 위기의 현실과 해결 방안 모색’ 정책 포럼 포스터. 이공계열에서 개최한 정책포럼이지만 구애받지 않고 참여하여 지역대학의 위기의 현실과 타개책에 대해 발표했다. 

 

 

 

 

 

 

 

 

 

 

아마도 우리대학 인문사회계열 교수 중에 나처럼 산학협력단과 협업을 한 교수도 많지 않을 거다. 굳이 우리대학으로 한정할 이유는 아니다 싶기도 하다. 유달리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은 자기 전공에 대한 자의식이 강한 편이다. 비인문사회계열, 그러니까 정보통신대학이나 공대 소속 교수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이 자기 전공의 경계를 더 의식한다는 게 나의 경험적 판단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그렇지 않다고 봐야겠다. 통섭이니 융합이니 인문사회계열 교수들도 자기 전공의 경계를 경계하는 학문적 주장과 이론들을 여러 번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인문사회계열 교수들도 그렇고 대학교육 운영의 방식도 그렇고 인문학 융합 교육은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특히 앎을 제도화된 교육체제로 생산, 분배하는 대학에서는 융합 교육이 이론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인문학, 특히 지역대학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전공 경계에서 온다고 봐야 한다.

나라고 하여 예외이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소위 전공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인문사회계열 교수였다. 산학협력단은 주로 공대와 관계된 딴 나라 이야기로 알았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다. 화근도 보통 화근이 아니다. 지역대학 인문학을 죽이는 화근이다. 지역대학 인문학 교수일수록 인문학 융합 내지 융합 교육에 관대해야 한다. 대학 인문학 교육을 전공 중심으로 설계하고 작동하는 구조가 용인되는 한, 지역대학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지나치게 얌전한 지역대학 인문학

자 이렇게 얘기해 보기로 하자.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우리나라 콘텐츠 「오징어 게임」에 열광한다. 「오징어 게임」은 영화 「기생충」의 살벌한 축제 버전 같다. 「오징어 게임」을 관통하는 사회적 코드는 경제적 빈부격차이다. 한쪽은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부를 이룩한 슈퍼 리치들이고 또 다른 한쪽은 당장 오늘 일용할 양식이 없는 빈자들이다. 이 빈자들이 사회 대중들과 격리된 어느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으로 초대받는다. 

말이 좋아 게임이지 사실은 생존 게임이다. 경제적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코드와 생존 게임을 버무린 드라마와 영화는 「오징어 게임」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전 세계인들은 왜 이리 「오징어 게임」에 열광할까? 거기엔 오히려 한국인들이 간과하는 흥행 코드가 있다. 바로 한국의 놀이이다. 「오징어 게임」에는 딱지치기,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 놀이 등등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놀이로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 그 놀이들이 비한국어권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한다. 그 시청자들에게는 오징어 게임이 놀이 수수께끼인 거다.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 콘텐츠라는 외형으로 시청자들을 만나지만 이 콘텐츠 자체가 디지털스토리텔링, 사회적 코드, 생존 게임, 한국문화의 요소를 융합적으로 온축한 텍스트이다. 이렇게 융합적 텍스트가 생산, 소비, 리뷰, 패러디되는 시대에 지역대학 인문학은 지나치게 얌전한 게 아닌가 싶다.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 텍스트이자 사회학 텍스트이며 또한 한국문화 텍스트라는 거다. 말하자면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라는 디지털스토리텔링 플랫폼에 탑재된 융합 텍스트인 셈이다.

그러나 자기 전공의 경계가 확고한 교수자라면 「오징어 게임」을 콘텐츠 텍스트, 사회학 텍스트, 한국문화 텍스트 중의 하나로 이해하거나 가르칠 공산이 제법 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오징어 게임」은 죽은 텍스트가 되고 만다. 자기 전공의 경계를 경계해야 한다는 걸 이렇게 길게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의 앎이 융합의 방식으로 생산, 분배되는 이 자명한 진리를 지역대학 인문학은 아직도 애써 외면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 밖, 세상의 앎이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대학 캠퍼스 밖은 특정 전공으로 만들어지고 특정 전공이 작동하는 세계가 아니다. 대학 캠퍼스 밖은 융합적 문제가 만들어지고 융합적 해결이 요구되는 세계였다. 그 어떤 세상 밖의 문제도 어느 하나의 전공이나 앎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령 이렇다. 학교 캠퍼스 내에서의 글쓰기 수업은 대단히 천편일률적이다. 어떤 대학은 2학점, 어떤 대학은 3학점으로 글쓰기 수업 학점이 부여되어 있다. 교수자들은 학습자들에게 글쓰기의 조건, 요령, 실천 등등을 단계별로 학습시킨다. 사정이 좋은 대학은 글쓰기 클리닉을 운영한다. 문제의식이 있는 교수자들은 IT 매체와 연계된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기술을 하류로 취급하는 인문학은 고사한다

그런데 학교 캠퍼스 밖의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일까? 학교 캠퍼스 밖의 글쓰기는 글쓰기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학교 캠퍼스 밖의 글쓰기는 대개 취재, 편집, 출판과 연계되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나와 함께 대구 원도심 마을 기록지를 만든 졸업생들은 학교에서 취재, 편집, 출판을 배우지 않았다. 그저 글쓰기의 이론을 배운 거다. 그런데 학교 캠퍼스 밖은 그저 이론만을 원하지 않는다. 요컨대 학교 캠퍼스 밖의 글쓰기는 학교 내보다 훨씬 더 융합적이다. 글쓰기와 취재, 편집, 출판이 함께 이뤄지는 거다. 

학생과 함께 한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실습 기념사진. 학생들은 산학협력단 지원을 받아 해운대 일대에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하여 스토리텔링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2018년 10월 9일 촬영. 사진=양진오

영상편집도 그렇다. 셀카의 시대이니 영상의 시대이니 이렇게 말하지만 인문사회계열 학생 중에서 영상편집을 실제 경험한 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 영상편집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프리미어를 다뤄본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은 거다. 영상편집은 이론으로만 배워서는 안 될 일이다. 스토리텔링도 이론으로만 배워서는 안 될 일이다. 신문방송학과 학생에게만 요구되는 일이 아닌 게다. 학교 캠퍼스 밖에서는 영상편집에 대해서도 정교한 편집과 생산을 요구한다. 

인문학도들에게 이런 배움이 필요하다 싶어 산학협력단 출입을 꽤 하지 않았나 싶다. 회의에 종종 참여했고 때로는 지원을 받아 지역 기반 콘텐츠를 학생들과 함께 제작했다. 인문학은 기술과 반갑게 만나 융합해야 한다. 교수자, 학습자 모두에게 요구된다. 기술을 하류로 취급하는 인문학은 고사한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실천하면서 얻게 된 성과이다. 학교 캠퍼스 밖은 이미 융합화된 세계이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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