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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조정시대, 교수는 누구인가?
대학 구조조정시대, 교수는 누구인가?
  • 양진오
  • 승인 2021.09.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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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18

“교육부 대학평가체제에 순치된 나의 정체성은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실천하며 새로이 구성할 수 있었다. 
역시나 지역대학 교수들의 정체성을 새로이 구성할 수 있는 근거는 지역이었다.” 

교수는 누구인가? 고등학문 분야의 이치를 탐구하는 연구자인가? 미래 사회를 이끌 인재를 키우는 교육자인가? 아니면 그저 숱한 월급쟁이에 불과한가? 흔히 대학교수는 대학에 근무하면서 전공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가를 지칭한다. 문제는 대학의 정체성이 현실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가변적으로 구성된다는 데 있다. 대학의 정체성이 가변적으로 구성되면서 대학교수의 정체성도 시대를 달리하며 변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대학에 근무하면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를 대학교수로 지칭할 수는 있다. 다만 어떤 연구이고 어떤 가르침이냐가 문제라는 거다. 

나에게 대학교수의 이미지는 권위적이었다. 오해하지 않기로 하자. 권력적이라는 게 아니라 권위적이었다. 먼저 학문적 권위가 대단했다.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교수들의 이미지가 하나같이 그랬다. 이들의 강의는 친절하지 않았다. 교수법, 그런 개념이 작동하는 강의가 아니었다. 이들은 당신들의 공부 경험을 논쟁적으로, 공격적으로 강의했다. 소문으로는 유명한 연구자이지만 강의 실력은 참으로 부실한 교수도 있었다. 이들은 논문이 아니라 저서로 자기 학문 실력을 입증했다. 이들은 교육 연구 봉사로 설계된 교수업적평가 제도에서 자유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은 교육자 같지는 않다. 자기 세계를 구축한 연구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나도 교수가 되고 싶었다. 민주화 시대 이전 1980년대 중반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대학은 내 스승의 대학과는 다르다

운이 좋아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스승들처럼 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대학의 정체성이 시장주의적으로 변한 까닭이다. 오늘날의 대학은 내 스승들의 대학과는 다르다. 오늘날의 대학은 대학구조조정시대를 배경으로 대학평가체제에 완벽하게 포섭된 학교로 존재한다. 오늘날의 대학은 교육부가 요구하는 각종 상시적 평가에 강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교육부가 설계한 대학평가를 거부하고 우린 우리식으로 독자 생존하겠다는 대학이 우리나라에선 나올 수 없다. 가능하지도 않다. 

그 단적인 예가 최근의 기본역량진단 가결과 낙제 소동이다. 기본역량진단 가결과에서 낙제점을 받아 하루아침에 부실대학처럼 판정받게 된 대학은 교육부를 강력히 성토하고 있다. 가결과 낙제점을 받은 대학은 수험생들의 선택에서 배제될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소속 대학 학생들의 피해도 여간 큰 게 아니다. 가결과에 선정된 대학이라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가결과 선정 대학도 앞으로 교육부의 어떤 평가에서 어떤 결과를 받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교육부의 대학평가체제에서 교수들의 연구는 중요하지 않다. 대학의 특성화 계획과 학생들의 충원과 취업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고 대학구조조정시대를 살아가는 교수들이 연구를 포기했다는 말이 아니다. 연구는 여전히 교수들의 관심사이며 중요한 과제에 해당한다. 나 역시 그렇다. 부족한 실력이나마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고 간혹 저서를 출간하며 연구를 힘겹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학회 임원으로 학술대회 개최에 협력한 일이 여러 번이니 연구를 아주 포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대학구조조정시대의 교수들에게 연구가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교육부의 대학평가체제에 순치되어 국가를 대신하여 학생들의 취업을 전담하는 취업학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취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업’은 소중하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학생들에게는 취업의 의미는 참으로 각별하다. 그런데 교육부가 학생 취업을 대학 취업률의 통계 수치로 환원하고 대학구조조정의 근거로 삼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유능한 교육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이유

어디 이뿐인가. 대학구조조정시대의 교수들은 교수법의 달인이어야 한다.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오늘날의 대학은 교수들에게 유능한 교육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기대할만한 이유가 있다. 충원율 때문에 그렇다. 대학평가체제에서 충원율은 최고의 핵심 지표로 간주된다. 충원율 최소기준을 충족한 대학만이 정부재정지원사업에서 선전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대학마다 충원율 관리가 발 등에 떨어진 불이다. 재학생 이탈을 막아야 하는 게 대학 당국의 긴급한 과제이다. 그러면 교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고백해야겠다. 나는 교육부 대학평가체제에 순치된 교수였다. 이 순치를 깨게 된 계기는 지역 개념을 경험하고 내면화하면서이다. 부연하면 이렇다. 학생을 잘 가르치는 일, 중요하다. 학생을 취업시키는 일, 중요하다. 문제는 그러한 일들의 방향성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고 취업을 장려하는 학생들이 살아갈 삶터이자 일터인 지역에 대한 학습과 경험이 부족했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실천하며 교수 정체성의 새로운 방향, 즉 지역 개념을 맥락을 깨달았다.

지역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창작학교 수강생들과 함께 대구 향촌동 골목을 답사하는 장면이다. 지역대학 졸업생, 재학생, 청년 창업가 등이 창작학교의 수강생이다. 2020년 10월 20일 촬영. 사진=양진오

2020년 9월, 대구광역시 중구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스토리텔링창작학교가 개교되었다. 2020년 9월 22일에 개강하여 11월 10일에 종강한 창작학교였다. 이 창작학교 프로그램은 대학 강의실의 교과목과 그 성격이 달랐다. 대학 교과목이 지역 개념과 구체적으로 연계되지 않았다면, 창작학교 프로그램은 지역 개념과 긴밀하게 연계되었다. 대학 교과목이 상대평가에 강력히 연계되어 있다면 창작학교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창작학교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나와 수강생들은 배움을 배움 그 자체로 환대할 수 있었다. 

교육부 대학평가체제에 순치된 나의 정체성은 이처럼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실천하며 새로이 구성할 수 있었다. 역시나 지역대학 교수들의 정체성을 새로이 구성할 수 있는 근거는 지역이었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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