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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원도심, 한류의 또 다른 플랫폼
지역 원도심, 한류의 또 다른 플랫폼
  • 양진오
  • 승인 2021.08.04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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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17

“BTS 슈가가 랩으로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를 알고 싶어 
굳이 서울이 아니라 대구로 유학을 왔다고 그 일본인 유학생은 밝혔다. 
이들은 서울과 도쿄에 없는 대구만의 장소를 더 좋아했다. 이렇게 한류는 지역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할 수 없었다. 어떤 날을 말하는가? 한류로 불리는 문화적 현상을 말하는 거다. 자 이제 말을 더 정확히 하기로 하자. 한류가 이렇게 국내외에서 각광받을 날이 올 거라 예상할 수 없었다. 

한류를 자명하게 정의하기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한류를 장르로 설명하면 드라마, 영화, 가요가 떠오른다. 한국 드라마, 영화, 가요의 인기는 국제적이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그룹 방탄소년단을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임명했을까. 그룹 방탄소년단이 오는 9월 제75차 유엔총회 등 주요한 국제회의에 참여하여 세계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라 하니 한류의 위상이 격상된 게 틀림없다.

그런데 한류는 장르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한류는 때때로 어떤 문화적 흐름 내지 현상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K-뷰티가 그런 예에 해당한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 아시아권에서 K-뷰티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좁혀 말하자면 한국산 화장품의 인기가 높다는 거다. 넓혀 말하자면 한국적 미의 방식이 인기가 높다는 거다. 사정이 이렇다면 한류는 한국 스타일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용어 같다. 한국 스타일로 만들어지는 문화적 장르를 포함하여 어떤 현상, 흐름 등을 일컬어 한류로 부를 수 있겠다. 

한류가 죽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과거, 한류를 두고 비관적 전망이 팽배한 일이 있었다. 누구는 한류가 거품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한류의 인기는 반짝 인기에 불과하다는 거다. 누구는 한류가 지나치게 이윤 추구적이라고 비판했다. 한류가 자본주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류는 종래의 비관적 전망과 비판을 뚫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비관적 전망과 비판 사이에서 한류가 죽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한류가 살아있는 생명처럼 예고된 전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류는 예측 불가의 방향으로 진화하는 현상이자 사건이며 어떤 흐름이라는 말이다. 

한류의 진화는 어떤 특정 단체나 세력이 기획하여 이뤄진 결과가 아니다. 반론은 가능하다. K-pop 관계자들의 기획 덕분에 한류가 더 부흥한 게 아니냐는 반론 말이다. 보이 그룹과 걸 그룹이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라는 말이겠다. 드라마와 영화 장르에서는 이런 반론이 더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반론은 기획 결정주의 같다. 한류의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건 한류를 즐기는 이들의 마인드이며 태도인 까닭이다. 그들의 마인드와 태도가 한류를 또 다른 한류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인 까닭이다. 

한류의 진화는 한류를 즐기는 모든 이들의 동시적, 비동시적 상호 작용으로 이뤄진 결과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이들이’의 모든 이가 한국인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이의 범주는 국경을 초월한다. 가깝게는 일본인, 중국인을 포함하여 동남아시아 더 멀리로는 유럽, 북미권에서 한류를 즐기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이 한류를 즐기는 방식은 다양하다. 먼저 말해야 하는 건 한류를 즐기는 젊은 세대들의 태도이다.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은 더는 일본 혹은 일본 대중문화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일본에 대해 열등감이나 도덕적 우위를 견지하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그렇지 않다. 기성세대는 일본을 대하는 감정이 이중적이다. 하나는 부러움의 감정이다. 특히 대중문화에서는 더 그렇다. 기성세대에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대중문화의 표상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일본 대중문화의 저력을 부러워 한 건 나만이 아니다. 또 하나의 감정은 도덕적 우위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우리를 수차례 괴롭힌 나라라는 거다. 일본은 우리를 괴롭힌 가해국이니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는 거다.

일본어 기반 북카페 대구 하루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는 아리무라 레이나. 레이나는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3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2021년 5월 15일 촬영. 사진=양진오

한류를 ‘쿨’하게 즐기는 젊은 세대들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 일본은 특별히 부러운 나라가 아니다. 또 젊은 세대들은 우리나라를 일본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설 나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일본은 기회가 온다면 여행가고 싶은 다른 나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거다. 일본이 특별히 우리보다 대중문화의 수준이 높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한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들은 한류를 국위선양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한류에 굳이 국위선양을 붙이는 쪽은 나 같은 기성세대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도 그렇다. 그들은 한류를 좋아하는 거지 이 나라의 국위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한류를 즐기는 두 나라 젊은 세대들의 이 ‘쿨’한 태도가 건강한 국제 교류의 출발점 같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승에도 불구하고 북성로대학 골목에는 한류를 즐기는 일본인 유학생들이 출입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와 똑 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원도심에서 행해지는 여러 행사에 참여한다. 궁금하기는 했다. 한류가 좋아 한국에 입국할 수는 있겠는데, 왜 하필 대구일까 이게 궁금했다. 그래서 일본인 유학생에게 물어본 일이 있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답변했다. BTS를 좋아하는데, 그들의 노래 중에 사투리 랩인 팔도강산이 있다. 이 노래가 좋아 대구에 오게 되었다고 답변했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의 사투리 노래가 재미있어서 서울이 아니라 대구로 오다니. 정말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BTS 멤버들은 자기의 지역성을 감추지 않았다. 리더 격인 RM은 인터뷰할 때마다 자기가 일산 출신이라고 밝혔다. 제이홉은 광주 출신이고 슈가는 대구 출신이다. 슈가가 랩으로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를 알고 싶어 굳이 서울이 아니라 대구로 유학을 왔다고 그 일본인 유학생은 밝혔다. 

대구 원도심을 배경으로 찍은 아이짱과의 사진. 2020년 상반기 아이짱이 대구로 유학을 왔다. 아이짱은 한류를 즐기고 지역을 사랑하는 일본인 여대생이다. 2020년 7월 2일 촬영. 사진=양진오

이게 한류를 주체적으로 즐기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이 일본인 유학생들은 서울과 도쿄에 산재한 높은 빌딩과 스타벅스에 환호하지 않았다. 이들은 서울과 도쿄에 없는 대구만의 장소를 더 좋아했다. 대구 음식도 좋아했다. 이렇게 한류는 지역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한류는 천편일률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한류의 지역적 진화가 바로 한류의 새로운 현상이며 흐름일 수 있겠다 싶었다. 두 나라 젊은이들의 교류는 이렇게도 이뤄지고 있었다. 이 교류를 활성화하는 플랫폼으로 지역 원도심이 재구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각별하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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