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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위기를 더불어 이기는 방법
지역 위기를 더불어 이기는 방법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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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⑦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라는 게 딴 게 아니었다. 
지역 배움과 지역 상생이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비전 아닌가. 
지역 상생을 꿈꾸는 게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일 수 있다 싶었다.”
 


2020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2020년 2월 대구의 그 날이 잊히지 않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나와는 무관한 한낱 소문 정도로 치부했다. 오만했다. 별일이구나 싶었다, 딴 나라의 일로 여겼다. 뉴스 보도를 들어도 그런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나와 무관한 소문이 아니었다. 2020년 2월부터 나의 일상이 펜데믹의 한가운데로 빠져들었다. 


시작은 2020년 2월 18일이었다. 2월 18일을 기점으로 대구 경북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방위적 공격에 노출되었다. 대구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태가 연일 전국 뉴스의 주요 소재로 떠올랐다. 이때의 대구 사정은 뉴스보다 심각했다. 방역 당국의 요청에 따라 집 밖 외출을 삼갔다.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 외출을 삼간 것이다. 그만큼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무서웠다. 자의 반 타의 반 은둔을 하게 되었다. 

2020년 2월, 코로나19와 맞선 대구

그러다 북성로 원도심으로 외출 아닌 외출을 하게 되었다. 은둔만을 할 수는 없었다. 마침 2020년 3월부터 연구년이 시작되었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꿈꾸며 기다린 연구년이었다. 이렇게 은둔을 계속해야 하나 싶었다. 3월이 시작되자 북성로 원도심으로 조심스레 외출했다. 아니 출근했다. 


북성로 원도심 골목은 마치 죽은 골목 같았다.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다. 사람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원도심 골목을 압박하고 있었다. 원도심 골목만 그런 게 아니다. 대구 전체가 그랬다. 적어도 이때까지 나는 우리나라에선 대구만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겪는 줄 알았다. 설상가상이었다. 마스크를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대구를 조롱하는 글들이 SNS에 꽤 퍼지기도 했다.

문 닫힌 북성로 원도심 가게(2020년 3월 19일 촬영). 2020년 3월 북성로 원도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태 때문에 문을 닫고 장사를 접은 가게들이 북성로 원도심에 많았다. 사진=양진오
문 닫힌 북성로 원도심 가게(2020년 3월 19일 촬영). 2020년 3월 북성로 원도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태 때문에 문을 닫고 장사를 접은 가게들이 북성로 원도심에 많았다. 사진=양진오

그런데 역시나 의인들이 있었다. 경향 각지에서 의료인들이 달려왔다. 의료인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119 앰뷸런스가 대구로 달려왔다. 임관한 간호 장교들이 나라의 명을 받고 대구로 왔다. 부끄러웠다. 정말 부끄러웠다. 지역 위기니 사랑이니 나는 말로만 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감염병의 공포 앞에서 나는 지역을 사랑하는 작은 실천에 대해 묻게 되었다. 


대구 원도심에 사회적기업 공감 씨즈의 허영철 대표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그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공감이다. 공감 게스트하우스에서 타지 의료인들을 위해 숙소를 무상으로 내놓았다. 마스크로 무장한 나는 동네 과일 가게로 득달같이 달려갔다. 과일 상자 몇 개를 공감 게스트하우스로 배송했다. 허영철 대표에게 이 과일을 의료인 먹을거리로 보태 달라고 했다. 

마스크 나눔에서 비전을 보았다 

이러다 마스크 나눔에 생각이 미쳤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라는 게 딴 게 아니었다. 지역 배움과 지역 상생이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비전 아닌가. 마스크 나눔으로 지역 상생을 꿈꾸는 게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일 수 있다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틈틈이 마스크를 사 모았다. 그래야 마스크를 나눌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감염병에 주눅 들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북성로 원도심 인근에 희움위안부역사관이 있다. 희움위안부역사관, 대구 원도심의 자랑이다. 이런 장소가 대구에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2020년 3월 어느 날, 희움위안부역사관을 다녀왔다. 역사관 활동가에게 할머니들께 마스크를 전해 주십사 부탁드렸다. 안이정선 전 관장에겐 마스크 나눔의 취지를 말씀드렸다. 원도심 활동가들의 문 닫힌 가게에도 마스크를 문틈으로 전달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20년 3월, 4월만 하더라도 대구의 이주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아예 구할 수 없었다. 나 역시도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잘 몰랐다. 배움이 부족한 까닭이다. 이주노동자들도 마스크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이게 상식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마스크를 전달했다. 

북성로 원도심 활동가, 주민들과 나누기 위해 사 모은 마스크(2020년 3월 19일 촬영). 2020년 2월, 3월 대구에서는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스크 나눔지기를 자처하며 북성로 원도심 이곳저곳에 마스크를 나눴다. 
북성로 원도심 활동가, 주민들과 나누기 위해 사 모은 마스크(2020년 3월 19일 촬영). 2020년 2월, 3월 대구에서는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스크 나눔지기를 자처하며 북성로 원도심 이곳저곳에 마스크를 나눴다. 사진=양진오

이렇게 마스크 나눔을 하는 사이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도시락 만들기 봉사가 반전의 계기였다. 방역 의료인들의 식사가 부실하다는 뉴스가 지역 매체에 오르내렸다. 어디 점심만 부실했을까. 방역의 최전선에서 의료인들의 고생이 여간 큰 게 아니었다. 

나눔으로 지역을 사랑하는법을 배웠다

북성로대학 인근에 단골 밥집이 하나 있다. 밥집 상호가 소희네마마이다. 소희네마마 대표와 공정여행 사회적기업 플라이투게더 대표를 필두로 원도심 주민들이 도시락 만들기 봉사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영광스럽게도 나도 그 결의에 끼게 되었다. 나는 그 결의의 청일점이었다. 큰 액수는 아니었으나 재료비도 보탰다.


도시락을 만들기로 한 날. 아침 일찍 소희네마마에 도착했다. 이미 도시락 봉사 동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에게는 쌈밥 만들기 미션이 배당되었다. 동지들의 손들이 빨랐다. 내 손은 어땠을까? 느렸다. 느려도 한참 느렸다. 내 더딘 손을 거친 쌈밥은 모양새가 고르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도시락 봉사를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펜데믹이 진정된 어느 날, ‘그래 그때 좋은 이웃들과 도시락을 만들었지’ 이렇게 기억하고 싶었다. 

동산 병원에 배달된 도시락(2020년 3월 14일 촬영). 북성로대학 인근 밥집 소희네마마에서 원도심 활동가, 주민, 자녀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도시락이다. 사진=양진오
동산 병원에 배달된 도시락(2020년 3월 14일 촬영). 북성로대학 인근 밥집 소희네마마에서 원도심 활동가, 주민, 자녀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도시락이다. 사진=양진오

도시락을 2백 개 정도 만든 것 같다. 다 만들고 나니 배달 트럭이 왔다. 트럭에 도시락을 실었다. 트럭이 기분 좋게 대구 동산병원으로 달렸다. 마스크 나눔으로 시작한 나의 봉사가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가외의 소득이 있었다. 과일과 마스크를 나누고 도시락을 만들면서 나는 북성로 원도심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교수로 불리는 이들의 고질적인 병폐가 있다. 어디에서든 가르치려고 드는 병폐 말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먼저 배워야 했다. 나눔으로 지역의 위기를 이기고 지역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2021년 신축년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수도권이 비상이다. 아니 수도권만이 아니다. 경향 각지가 비상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2월 26일부터 의료계 종사자와 요양 병원 입소자를 우선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언젠가는 원도심 활동가와 주민들에게도 접종 순서가 올 것이다. 그렇게 북성로 원도심에도 진정한 봄이 올 것이라 믿는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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