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1-30 20:37 (화)
원도심의 재발견 … 배움 공동체로 이어진 놀라운 나비효과
원도심의 재발견 … 배움 공동체로 이어진 놀라운 나비효과
  • 양진오
  • 승인 2021.01.06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③ 북성로대학 탄생기(1)

나는 꿈을 꾼다. 
누구나 선생이며 누구나 학생인 배움 공동체를 원도심에 개교하는 꿈 말이다. 
그 꿈에 기대어 2018년 대구 원도심에 ‘북성로대학’을 열었다


환갑이 다가오는 나이이지만 나는 꿈을 꾼다. 어떤 꿈인가? 누구나 선생이며 누구나 학생인 배움 공동체를 원도심에 개교하는 꿈 말이다. 특히나 이 배움 공동체에서 지역 청년들이 자기를 배려하는 기술을 익히며 성장하는 꿈을 나는 꾸고 있다. 그 꿈에 기대어 2018년이 시작한 벽두부터 대구 원도심에 북성로대학 개교 프로젝트가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그 꿈은 이뤄졌을까? 그렇지는 않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프로젝트가 배움 공동체 만들기여서 그렇다. 오늘은 먼저 북성로대학 탄생기 제1화를 말씀드릴까 한다. 


대구에 읍성이 있었다. 대구읍성이다. 대구에 감영이 있었다. 경상감영이다. 감영 사무의 집행자가 관찰사다. 역성혁명으로 개국한 조선은 고려와 체제 성격이 근원적으로 달랐다. 조선은 감영이 설치된 고을에 관찰사를 파견하여 백성들에게 왕명을 받들게 하는 중앙집권적 체제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조선 읍성들은 단단하고 든든해야 했다. 토성과 석성이 뒤섞인 고려 읍성과는 달리 조선의 읍성은 석성을 지향했다. 


기록은 이렇다. 대구읍성을 석성으로 축성한 이는 관찰사 민응수이다. 영조 12년(1736년) 4월부터 관찰사 민응수가 대구읍성을 석성으로 축성한다. 이전의 대구읍성은 토성이었다. 허술했다. 1592년 토성 대구읍성이 파괴된다. 임진왜란의 참화 탓이다. 선조 34년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로 이전한다. 그로부터 민응수가 석성 대구읍성을 축성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흘렀다. 민응수의 대구읍성 축성의 배경이 이렇다. 

대구 원도심 경상감영공원 입구 전경(2020년 11월 13일 촬영). 전면으로 건물이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 오른편 건물이 관찰사 숙소 징청각이다. 경상감영이 공원의 지위를 탈피,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복원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대구 원도심 경상감영공원 입구 전경(2020년 11월 13일 촬영). 전면으로 건물이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 오른편 건물이 관찰사 숙소 징청각이다. 경상감영이 공원의 지위를 탈피,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복원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사진=양진오

식민도시로 성장했던 ‘대구 북성로’

경상감영을 품은 석성 대구읍성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양과 대구의 거리는 수백 리이다. 수백 리의 지리적 격차를 메우는 공간이 대구읍성이며 그 공간에서 임금을 대리하여 사무를 집행하는 이가 바로 관찰사이다. 이처럼 조정은 한양도성 외곽의 고을을 읍성, 감영, 관찰사를 매개로 직접 통할하고자 부단히 애쓴다. 대구읍성의 역사는 대구가 일본인 식민자들의 도시로 그 위상이 뒤바뀌며 끊긴다. 


대구읍성 철거를 주도한 이는 1906년 대구 군수로 임명된 박중양(1872~1959)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대구읍성 철거를 승인해 달라는 박중양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국운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반면 박중양의 뒷배는 이토 통감이었다. 내로라하는 친일파 박중양이 대한제국 정부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대구는 1910년 병합 이전에 일본인 식민자들이 점유하는 식민도시로 그 위상이 바뀌고 있었다. 그 계기는 경부선 대구 개통이다. 1905년에 대구를 경유하는 경부선이 대구읍성 북문 인근에 개통된다. 경부선 대구 개통은 대구읍성 철거를 현실화하고 나아가 대구를 식민도시로 재편하는 사건이 되었다.


대구읍성이 철거되자 읍성 외곽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읍성 내부를 잠식한다. 특히 대구읍성 북문에 해당하는 공북문 인근에 형성된 신시가지 북성로는 일본인들의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으로 성장한다. 식민지 대구, 북성로는 미나까이 오복점, 양복점, 목욕탕, 철물점, 식당, 여관 등이 성업하는 일급 도심으로 특화되었으니 대구 원도심의 탄생 배경이 이렇게나 ‘역사적’이다. 대구 원도심은 대구읍성의 시공간과 북성로의 시공간이 불균형한 방식으로 혼재된 역사문화 현장이다. 

북성로 거리 전경(2019년 6월 1일 촬영). 대구읍성이 철거되며 북성로 남성로 서성로 동성로 등 신작로가 탄생한다. 북성로는 일본인 식민자들의 거리로 식민도시 대구의 번화가였다. 해방 이후 북성로는 공구 거리로 바뀐다.
북성로 거리 전경(2019년 6월 1일 촬영). 대구읍성이 철거되며 북성로 남성로 서성로 동성로 등 신작로가 탄생한다. 북성로는 일본인 식민자들의 거리로 식민도시 대구의 번화가였다. 해방 이후 북성로는 공구 거리로 바뀐다. 사진=양진오

서울 근대한옥, 원도심을 새로 보게했다 

처음부터 대구 원도심이 배움의 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구 원도심에서 부산, 서울, 인천, 전주 등등으로 원도심 답사 반경을 넓히면서도 원도심과 배움을 연계하여 생각하지는 않았다. 생각의 전환은 원도심 답사의 반복 누적에서 왔다. 서울 종로 익선동의 근대한옥을 여러 차례 답사하다가 기농 정세권(1888~1965) 선생을 알게 되었다. 익선동 만이 아니라 경성 전역의 근대한옥을 설계하고 분양한 이가 바로 정세권 선생이다. 


정세권의 근대한옥 분양은 1920년대 중반 경성의 도시 형성과 연동되는 사건이다. 1920년대 중반 경성에는 총독부 식민권력이 집행하는 대규모 건축 이벤트가 연출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 청사, 경성운동장, 경성역, 경성부청 등이 1920년대 중반 무렵에 건립된다. 조선총독부 청사, 경성부청사 등 총독부 식민권력이 주도한 대규모 건축물 건립을 계기로 경성은 일본인 식민자의 식민도시로 그 위상이 확 바뀐다.


이런 배경에서 북촌을 포함,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등 서울 전역에 근대한옥을 분양한 이가 정세권이다. 서울 원도심에 산재한 근대한옥이 아무런 맥락 없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거다. 정세권은 경성 요지에 근대한옥을 건축, 분양하며 경성을 식민자들의 도시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세권이 조선어학회의 일급 후원자였다는 사실을 환기하면 그는 돈만 밝힌 집장사가 아니다. 서울 원도심의 근대한옥은 식민자, 피식민자, 경성, 이중도시, 북촌, 남촌, 민족 기업을 흥미롭게 학습할 수 있는 배움의 텍스트인 게다. 

배움의 텍스트로 재발견된 대구 원도심

대구 원도심은 어떤가? 대구 원도심이 배움의 텍스트로 발견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대구가 여느 지역 도시처럼 경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팽창을 거듭하는 사이 원도심은 소멸과 침체를 겪는다. 찬밥 취급을 받던 대구 원도심이었다. 대구 원도심을 살린 이들은 지역 청년들이다. 2001년 대구 지역의 YMCA 대학생 십여 명이 100여 일간 대구 원도심 골목을 답사하면서 대구문화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며 대구 원도심이 재발견되기에 이른다. 대구 원도심의 중층적인 타임라인 그리고 그 타임라인이 축적한 배움의 텍스트들이 지역 청년들의 발품으로 재발견된 거다.

대구근대역사관 전경(2020년 9월 3일 촬영). 식민도시 대구를 표상하는 근대건축물이다.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로 쓰였으며 현재는 대구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감영공원과 인접한 건축물이다. 사진=양진오
대구근대역사관 전경(2020년 9월 3일 촬영). 식민도시 대구를 표상하는 근대건축물이다.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로 쓰였으며 현재는 대구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감영공원과 인접한 건축물이다. 사진=양진오

지역 청년들의 대구 원도심 재발견은 나비효과를 낳는다. 놀라운 나비효과이다. 대구 원도심의 재발견은 근대골목투어,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창업, 마을공동체 사업, 도시재생 사업 등으로 그 형식과 내용이 진화한다. 그리고 이 나비효과에 힘입어 2018년 9월 대구 원도심에 배움 공동체 북성로대학이 탄생한다. 북성로대학 탄생기를 시간 개념으로 말씀드렸다. 다음 칼럼에서는 공간 개념으로 북성로대학 탄생기를 말씀드리겠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