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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인문학, 더 과감하게 '지역으로'
대학 인문학, 더 과감하게 '지역으로'
  • 교수신문
  • 승인 2021.02.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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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④ 북성로대학 탄생기(2)

“원도심이 캠퍼스이고 카페가 강의실이며 
지역 전문가들이 인문학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대학과 지역의 분리 없는 인문학 배움. 
이런 배움이 지역과 대학을 살린다”


모든 영광은 과거시제로 발견되는 게 아닐까. 인문학만 하더라도 그렇다. 1980년대의 인문학은 죽어가는 학문이 아니었다. 1980년대의 인문학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전두환 독재정권이 질식시킨 나라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급 비책이 인문학이었다. 1980년대의 인문학은 저항의 최전선에서 전두환 독재정권과 싸웠다. 학교와 학과를 가리지 않았다. 신입생들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난쏘공’으로 부르며 선배들과 토론했다. 황석영, 윤흥길의 소설을 더불어 읽었다. 김지하의 시는 술집에서 노래로 불렸다. 철학 서적을 읽고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다. 읽고 토론하고 마시고 노래 불렀다. 이처럼 1980년대의 인문학은 시대의 경전이었다. 

2020년대 인문학은 어떤가

그러면 2020년대의 인문학은 어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치 않다. 인문학 전체의 사정을 한꺼번에 말하기는 어렵다. 대학 인문학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2020년대의 대학 인문학은 부지불식간에 죽어가는 학문이 되었다. 비수도권 대학의 인문학 사정은 더 비참하다. 인공심폐장치 에크모로 목숨을 부지하는 중환자 꼴이다. 수도권 대학 인문학은 사정은 다를까?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암 공격을 받지 않은 장기가 나는 괜찮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대학 인문학 사정이 대개 이렇다. 


대학 밖 인문학은 어떤가? 대학 밖 인문학은 그 열기가 뜨겁다. 대학 밖 인문학은 인문학의 새 장이 만들어지는 열기로 가득하다. 그 열기를 이끄는 대표적인 고수들이 고미숙, 최진석 선생이다. 고미숙 선생의 인문학 기반은 유튜브 ‘인문지성 네트워크 강감찬TV’ 채널이다. 이 채널에서 고미숙 선생은 동의보감, 숫파니파타, 주역 등 동양고전을 재해석하는 강의를 이끌고 있다. 최진석 선생의 인문학 기반은 유튜브 ‘최진석의 새말새몸짓’ 채널이다. 이 채널에서 최진석 선생은 반야심경, 장자, 노자 등을 강의하고 있다. 누구나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이들의 유튜브 채널에 접근할 수 있다. 등록금도 없다. 굳이 있다면 ‘좋아요’ 버튼이다.


고미숙, 최진석 선생의 예가 대학 밖 인문학의 전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대학 밖 인문학이 언제나 성공하지도 않는다. 성공의 예와는 달리 콘텐츠 부족으로 유튜브에서 사라진 실패의 예도 있겠다 싶다. 사정이 이렇더라도 고미숙, 최진석 선생의 예는 한국 인문학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사건인가? 바로 플랫폼 인문학의 출현이다. 유튜브, 페이스북을 필두로 디지털 플랫폼이 인문학의 존재 방식을 탈경계화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대구 수제화 골목(2020년 1월 10일 촬영). 이 골목에 내로라하는 구두 장인들이 모여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수제화를 만든다. 수제화 디자인, 제단, 재봉, 조립 공정을 맡은 생산업체들이 수제화 골목 인근에 있다. 수제화 골목에 원도심 인문학 학교 북성로대학이 있다.
대구 수제화 골목(2020년 1월 10일 촬영). 이 골목에 내로라하는 구두 장인들이 모여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수제화를 만든다. 수제화 디자인, 제단, 재봉, 조립 공정을 맡은 생산업체들이 수제화 골목 인근에 있다. 수제화 골목에 원도심 인문학 학교 북성로대학이 있다.

지역을 모르는 교수가 참 많다

이제 다시 대학 인문학이다. 위중한 환자가 되어버린 대학 인문학.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이렇게 꼬인 걸까? 인구 구조의 변화를 거론할 만하다. 수년 전부터 한국 언론은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소멸을 예고해 왔다. 이런 뉴스에 오르내리는 지역이 대개 군 단위 지역이었다. 2020년부터는 그렇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 영상보고서('코로나19로 인한 지방소멸 가속화')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2020년도 5월 기준 신규 소멸위험지역으로 인천 동구, 대구 서구, 부산 서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시 단위 지역도 소멸위험의 경고를 받는 실정이다. 지역에서 신입생을 충원해야 하는 지역대학 인문학 관련 학과로서는 외면하고 싶은 인구 구조의 변화이다.


그런데 인구 구조의 변화가 대학 인문학의 부진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이유일까? 그렇지는 않다. 대학과 지역의 불화(不和)를 먼저 말하고 싶다. 교수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지역을 모르는 교수가 참으로 많다. 나 역시도 그런 교수였다. 강의실과 연구실을 인문학에 최적화된 장소로 알았으니 말이다. 지역을 모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지역을 모른다는 건 지역 탄생과 형성의 시공간을 모른다는 말이다. 또한 지역을 모른다는 건 지역의 시공간으로 키워진 학생들의 심성 구조와 기대치를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간의 분리는 대학과 지역의 불화를 더 깊게 하는 요인이다. 도대체 어떤 공간의 분리인가? 대학과 지역의 분리이다. 대구의 주요 사립대학들은 대구가 아닌 경북 경산에 있다. 대구대학교만 하더라도 대구에 있는 게 아니다. 대구대학교는 경북 경산에 있다. 일부 학과가 대구 도심에 있다. 과거 1970년~1980년대 인구 팽창기에 서울 소재 대학들은 수도권에 소위 분교를 개교했다. 대구권 대학들은 대구 경계 밖으로 진출했다. 허허벌판에 학교를 열어 백화점식으로 전공을 개설해도 학생들이 아득바득 찾아오는 시절이었다.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2020년 1월 10일 촬영). 모루는 북성로 공구 거리 장인들의 작업장을 재현한 아카이빙 건물이다. 모루에서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생활용품을 제작하는 메이킹 프로프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2020년 1월 10일 촬영). 모루는 북성로 공구 거리 장인들의 작업장을 재현한 아카이빙 건물이다. 모루에서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생활용품을 제작하는 메이킹 프로프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역에 무지한 대학 인문학은 망한다

그런데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니 대학과 지역의 공간 분리가 더 커 보인다. 이 공간 분리가 대학과 지역의 관계를 더 소외시킨다. 또한 공간 분리는 대학 인문학과 지역과의 긴밀한 결합을 방해한다. 대학과 지역의 분리 없는 인문학 배움. 이런 배움이 지역과 대학을 살린다. 대학 인문학은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탈주하여 지역으로 더 과감하게 들어가야 한다. 이런 마음을 붙잡고 대구 원도심을 찾게 되었다. 대구 원도심이 캠퍼스이고 카페가 강의실이며 지역 전문가들이 인문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2018년부터 북성로대학 개교 프로젝트에 나서게 되었다. 공간의 분리를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구 원도심을 여러 번 찾았다. 

대구문학관(2020년 1월 10일 촬영). 1912년 8월 16일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이 개점하며 이 건물이 건립된다. 해방 후에는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 건물로 쓰인다. 2014년 대구시에서 이 건물을 인수하여 대구문학관을 개장한다.
대구문학관(2020년 1월 10일 촬영). 1912년 8월 16일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이 개점하며 이 건물이 건립된다. 해방 후에는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 건물로 쓰인다. 2014년 대구시에서 이 건물을 인수하여 대구문학관을 개장한다.

대학 인문학은 먼저 지역을 사랑해야 한다. 대학 밖 인문학 고찰은 다음 과제이다. 대학 인문학은 지역을 자기 존재의 터전으로 받아들이며 공간의 분리를 메꿔 나가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대학 인문학은 배움의 내용에 지역, 로컬리티, 장소 개념을 반영하는 인문학의 지역적 재구성에 도전해야 한다. 더는 대학 인문학이 지역과 불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불화는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감정이다. 지역에 무지한 대학 인문학은 망한다. 코로나19로, 인구 감소와 유출로, 경기 불황으로 지역이 아프다. 대학 인문학은 지역의 아픔에 답해야 한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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