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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연구는 사람이 한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연구는 사람이 한다
  • 안희경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9.04.22 09: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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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사람이 한다. 이 단순한 명제가 쉬이 잊혀지는 세상이다. 사실 세상이 지금껏 보아 온 연구자의 모습에는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비범함이 있었다. 지치지 않는 강철 같은 체력을 지녔거나, 허약하나 비상한 지능을 가졌다. 독신이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이 드물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예시가 이러하니, 우리 상상 속 과학자를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히 어렵다. 골방에 틀어박혀 사는, 머리가 산발인 과학자는 떠올릴지 몰라도, 아침마다 만나는 평범한 옆집 이웃을 과학자로 상상하기는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연구는 평범한 사람이 한다. 오늘날 최신 연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우리 옆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겪는 시기는 미래가 불확실한 학문후속세대 시기와 겹친다. 여성들은 연구를 하다 어느 시점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경력 단절이 그나마 덜 될지를 고민한다. 남성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가장이라는 몫을 다하기 위해, 가난한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시간을 빠르게 끝내려고 고군분투한다. 이 시기를 겪어내면 곧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세뇌하며 뒤돌아볼 겨를 없이 달린다.

그러나 연구는 돈과 자리를 가진 사람이 계속 할 수 있다. 십여년에 걸쳐 학위를 받고 박사후연구원까지 마치고 채용 공고를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하지만 박사학위자를 뽑는 곳은 많지 않다. 그래서 시장에 남아 버텨보지만, 학위를 받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경쟁률은 계속 올라간다. 게다가 계속 버틸 수만도 없는 일이다. 배고파 우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을 수도 있다. 조건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다른 일을 찾아 학계를 떠난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임신과 출산 후 아이를 맡아 키울 방법이 없어 학계에서 빠져나오는 경우도 많다. 연구가 좋아서 이 길을 선택했지만, 연구 외에 평범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구를 포기한다.

그럼에도 연구는 사람이 한다. 결혼을 한 사람도, 부양의 의무가 있는 사람도, 아픈 사람도 연구를 한다. 아니,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올해 2월에 열린 제3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는 대학원생의 기본 생활을 위한 학생연구장려금, 박사후연구원에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펠로우십’ 등의 정책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학문후속세대 이후의 생활이 불확실하다면, 이러한 정책들이 있다 해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더욱 절실한 것은 연구를 안정적으로 계속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실험 기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테크니션이나 전임연구원의 수를 늘리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대학만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연구는 사람이 한다. 누구나 평범한 삶을 지속하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기를 바란다.

안희경 세인스버리 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식물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국의 세인스버리 연구소(The Sainsbury Laboratory)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식물병리학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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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2019-05-08 17:14:59
마른 땅에 물 뿌린다고 풀이 자라나지는 않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