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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점을 이루어 하나의 선이 될 때
우연이 점을 이루어 하나의 선이 될 때
  • 송경희 이화여자대학교 시간강사
  • 승인 2019.03.05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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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한국연구재단에서 원고를 의뢰 받던 즈음은 계절학기 강의와 성적 마감으로 마음의 여유가 통 없던 때였다. 정중하게 거절하려던 차, 다른 마음 한 구석에서 바쁜 일정에 덮여 있던 빚진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글로벌 박사 펠로우쉽, 그리고 시간강사지원사업을 통하여 얻었던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기에 기고문 정도는 기꺼이 써야할 책임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원고를 쓰기로 한 후, 떠오르는 주제는 여럿이었으나 ‘계획된 우연성 이론(planned happened theory, Krumboltz, 2008) - 우연적으로 발생한 여러 사건이 개인의 진로발달을 이끈다는 주장’에 비추어 연구자로서 필자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필자는 국내박사에 진학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지도교수님으로부터 글로벌 박사 펠로우쉽을 안내받아 지원하였고, 펠로워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해외에서 공부하던 동료와 통화 중 큰 국제 학회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겁도 없이 경험삼아 홀로 떠난 해외학회에서 논문으로만 접하던 유명 학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마치 아이돌을 만난 것처럼 설레어 필자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 때 그 우연은 필연이 되었고, 그 교수님은 필자의 글로벌 멘토를 자처하고 계신다. 지난 2월에는 학회활동을 통해 인사를 나누었던 학자들과 우연히 연결되어, 그들의 연구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필자를 환대해 주며 학생 지도, 연구 미팅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필자의 연구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이런 우연한 경험의 연속은 국내에서만 수학한 필자가 연구자로서 새로운 동기와 시야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계획된 우연성 이론에 따르면, 우연을 계획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탐색하려는 호기심, 장애물을 이겨내고 지속하는 힘, 다양한 환경과 사건에 대한 융통성, 그리고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 그리고 우연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기회로 만드는 힘은 우리 젊은 학문후속세대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타전공을 하던 필자가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심리학 박사가 되기까지도 학부시절 지금의 지도교수님을 우연히 만났던 것이 시작점이 되었다. 그리고 필자에게 주어진 여러 기회들을 살려보고자 하는 의지와 호기심이 여러 우연을 만나 행운이 되었고 이러한 행운이 모여 하나의 선을 이루고 필자가 학문의 길을 계속 가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박사 졸업 후 혼자 연구를 수행하면서 “인생이 왜 이렇게 도전의 연속이지?” 라고 푸념한 적이 있다. 이를 들은 동료는 “우연한 기회가 있을 때, 그것을 흘려보내지 않고 도전하기 때문은 아닐까?” 라고 필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이처럼 개인적 수준에서 포기하지 않고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것도 일부 가능하겠지만, 현실적 문제에 사로잡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보니, 어떤 제도나 조직의 보호 하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학계 진입을 위해 홀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연구의 깊이와 규모, 효율성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크다고 여겨진다.
 
요즘 학계에서 들려오는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학문 후속세대에게 주어진 앞날은 긍정적이기 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를 포함한 학문후속세대가 쉽게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누군가에게는 우연적 사건이 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박사졸업 후 학계에 진출하기 이전, 다양한 학문을 하는 여러 젊은 학자들이 협업을 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어떤 형태로든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디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이 소외되지 않는, 균형 잡힌 대한민국 학문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송경희 이화여자대학교 시간강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달 및 발달임상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생애 발달의 다양한 영역 중 또래괴롭힘, 도덕성 발달 등 사회정서 발달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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