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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세균·대사물이 만드는 ‘건강한 장’
장내 세균·대사물이 만드는 ‘건강한 장’
  • 김재호
  • 승인 2023.12.12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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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난치성 치료’ 어디까지 왔나 ⑫ 과민성장증후군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염증성 장질환, 뇌혈관 질환 등 난치성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건에 대해 상용화를 승인하면서 바이오산업에서의 혁신적 장이 열렸다. <교수신문>은 각 질환별 난치성 치료 현황을 국내 최고 전문가로부터 들어 보고 치료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열두 번째는 과민성장증후군에 대해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센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팀의 최신 연구 현황을 소개한다.

국내 다른 연구진과 차별화된 점은 
소화기내과 임상 교수가 주축이 돼 
직접 과민성장증후군 환자를 진료하면서 
실제 환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바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민성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이하 IBS)은 기질적인 이상 없이 변의 형태나 배변 습관의 변화와 함께 복통이나 복부 불편감이 반복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IBS의 유병률은 지역에 따라 5.7∼34%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한국인도 6.6∼9.6%로 흔하다. 

IBS의 병인으로는 장운동 이상, 내장과민성, 뇌-장-축(brain-gut axis)의 변화, 정신사회적 요인 등 다양하나 아직 기전이 명확히 정립돼 있지 않다. 효과적인 치료법도 없는 상황이다. IBS는 비록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IBS로 인한 삶의 질 저하는 암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다. 크론병이나 궤양성대장염과 같은 만성 염증성 장질환보다 삶의 질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돼 보건학적으로 큰 문제다.

최근 장내 미생물이 장내 면역과 염증 반응 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장내 미생물의 5%를 차지하는 장내 세균의 변화가 IBS의 병인에 중요하다고 정립돼 가고 있다. 장내 세균과 이들의 대사물이 장내 민감도, 뇌-장-축의 변화, 장 운동성의 부조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졌다. 즉 뇌-장-장내 미생물 축(brain-gutmicrobiota axis)이다. IBS의 증상을 조절하고 치료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개발이 큰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센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팀이다. 연구팀은 과민성장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 차별화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혁·이동호·김나영·신철민 교수다. 사진=이동호

 

고전적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정장제’

고전적인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정장제(probiotics)이다. 주로 유제품·김치·된장 등 발효 식품으로부터 유래한 이러한 정장제는 이전부터 IBS에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이 꾸준히 보고돼 왔다. 이전 IBS 관련 정장제 치료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를 보면, 총 53개의 무작위 대조연구로부터 5천545명의 임상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 정장제가 IBS 환자의 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다만 전문가에 따라서 연구 간 이질성이 높아 아직까지는 정장제의 IBS 치료 효과의 근거는 불충분하다. 잘 디자인되고 질 높은 추가적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중에서도 특히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는 건강인의 대변 그 자체를 치료제로 이용하는 대변 이식치료(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다.

흥미롭게도 이미 4세기 중국 동진(東晉) 시대의 의서(醫書)에도 식중독이나 심한 설사의 치료에 대변 현탁액을 먹여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FMT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치사율 높은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에 의한 항생제 연관 대장염에서 FMT가 높은 치료 성공률을 보였다는 결과가 서구에서 일관되게 보고됐다. 현재 FMT는 난치성 CDI에서 가장 효과적인 표준 치료로 정립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재발성 CDI에서 FMT는 급여 처방이 가능하다. 다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병원에서 환자의 건강한 가족으로부터 얻은 대변을 이용해 FMT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변세균총이식액(FMT이식액)을 캡슐 형태로 만들거나, 건강인의 대변 내 유익한 혐기성 미생물을 배양해 치료제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4월 세계 최초로 건강인 대변 캡슐인 미국 세레스 테라퓨틱스의 ‘보우스트’(프로젝트 SER109)를 18세 이상 재발성 CDI 환자에 대한 치료제로 승인한 바 있다.

FMT는 CDI뿐만 아니라 염증성 장질환·IBS·파킨슨병·치매·우울증·자폐증 등 다양한 장-뇌장내 미생물 축 질환의 치료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최근 IBS에서 FMT의 임상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그 중 가장 잘 디자인된 사례는 최근 노르웨이 연구팀의 임상 연구다. 중등도-중증 IBS 환자에서 위내시경을 통해 FMT를 시행했을 때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키지 않았다. 아울러, 3개월 후 IBS 증상과 삶의 질 개선에 효과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 효과가 장기(최대 3년)간 유지된다는 희망적인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국내는 서울대 의과대학(분당서울대병원) 이동호 교수 연구팀이 다양한 질환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IBS와 관련해 연구팀이 국내 다른 연구진과 차별화된 점은 소화기내과 임상 교수가 주축이 돼 직접 IBS 환자를 진료하면서 실제 IBS 환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바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최초 ‘대변 은행’ 보유

더욱이,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대변 은행’ 힐바이옴(분당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 입주기업 바이오뱅크힐링 소속)을 보유하고 있어 철저한 문진·혈액과 대변 검사를 통해 철저히 검증된 건강인 공여자로부터 얻은 대변세균총이식액을 임상과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해당 연구진은 국내 재발성 CDI의 치료에 FMT이식액을 가장 먼저 적용하고 그 임상결과를 발표한 연구팀 중 하나다. 이를 통해 국내 FMT 치료의 급여화에 기여한 바 있고 이에 더하여 2016년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함께 ‘건강인 장’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해 한국인 대표 장 마이크로바이옴 프로필을 제시한 바 있다.

이동호 교수 연구팀은 최근 IBS 환자에서 FMT 치료 효과에 대한 전향적·탐색적 임상 연구를 국내 최초로 진행하고 있다. 이동호 교수는 “올해 말까지 연구 환자 등록을 마칠 예정이며, 내년 중에는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본 연구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된다면 향후 IBS에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연구팀은 건강인 FMT이식액 내 혐기성 균을 배양해 수십 종의 후보 균주를 확보했다. 연구팀의 김나영 교수는 이러한 후보 균주를 이용해 기전 실험(IBS 실험쥐 모델)을 진행해 일부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김나영 교수는 “IBS는 주 증상에 따라 분류되는 아형(subtype)인 설사형·과민형·혼합형 등 뿐 아니라 남녀에 따라 그 병태생리가 확연히 다르다”라며 “기전 연구부터 이를 고려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나영 교수는 “앞으로의 IBS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IBS의 아형과 성차에 따른 맞춤 치료가 돼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연구팀은 FMT이식액을 동결 건조해 FMT 캡슐 개발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아직 FMT 캡슐이 상용화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이동호 교수는 기존 FMT이식액의 단점을 보완하고 환자들이 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FMT 캡슐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FMT 캡슐은 일차적으로 재발성 CDI 환자의 치료에 먼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팀은 후보 균주 중 기전 연구(동물 실험)를 통해 그 효과가 검증된 균주에 대해서 전향적 임상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사실상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임상시험은 국내에서는 아직 진행된 바 없으며, 실제 수행까지는 여러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우선 락토바실러스·비피도박데리움 등 잘 알려져 있고 이미 정장제로 사용 중인 ‘그라스(GRAS: Generally Regarded As Safe)’ 승인 균주가 아닌 차세대 프로바이오틱스(NGP: Next Generation Probiotics)인 경우, 인체 적용 전 까다로운 안전성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다만 치료제가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기원한 유익균이어서 안전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후보 균주는 배양 어려운 혐기성 세균

다른 난관은 대부분의 후보 균주가 혐기성 세균이어서 배양과 대량 생산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동 연구자인 순천향대학교 프로바이오틱스·마이크로바이옴 융합연구센터(PMC)장인 송호연 교수팀이 든든하게 연구 지원을 하고 있다. 송호연 교수는 현재 난치성 질환 대응 공공기반 차세대 마이크로바이옴 생산 공정 플랫폼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배양 불가능한 균주에 대한 ‘컬처로믹스(난배양성 공생 미생물의 배양과 유용 미생물의 특성기능을 규명)’ 배양 연구 적용 분야의 전문가다. 이러한 공동 연구를 통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NGP 치료제 개발의 좋은 사례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도 많은 IBS 환자가 조절되지 않는 장 증상과 이로 인한 삶의 질 저하로 고생하고 있다. 그래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환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동호 교수는 “이번 과제 수행을 통해 얻은 IBS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노하우가 관련 연구를 하는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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