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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노인은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 김정규
  • 승인 2024.02.16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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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_『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키케로 지음 |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 | 237쪽

큰일은 체력이 아니라 명망·판단력이 중요
노년에는 학구열 같은 정신적 쾌락을 추구

‘노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질까 나빠질까?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나이 듦’에 대한 편견은 무의식 차원에서 작동한다고 한다. ‘늙은이’, ‘고령’ 같은 단어들이 화면에 잠깐 스쳐 지나가게 하면, 노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답한 사람들에게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이러한 암묵적인 편견은 아동기의 학습에서 시작되어 깊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쉽게 없애기 어렵다.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생산력주의·능력주의에 입장에서는 노인은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이다.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떨어졌다고 보고, 정년 제도를 두어 경제활동 현장에서 밀어내고, 취업 기회를 제한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인 자신이다. 나는 나인데, 내가 보는 ‘나’와 사회가 보는 ‘나’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혼란이 시작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젊은데, 사회는 나를 노인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나인가? 여성해방 운동가 보부아르는 이를 ‘동일시의 위기’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 위기에 저항하지 않고 수용한다고 했다. 사회적 시선을 받아들일 때 존재론적 안정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인은 사회와 자신에 의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세상에 개입할 의지를 상실하고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난다. 변화와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고 점점 보수적이 되어 간다. 

고대 로마의 지성 키케로가 쓴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중 「노년에 관하여」는 30대의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의 요청에 따라 84세의 ‘카토’가 노년의 짐을 어떻게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 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포도주가 오래됐다고 모두가 시는 것이 아니듯,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비참해지거나 황량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글이다.

키케로는 이 글에서, 노년에 대한 네 가지 불평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들어 하나씩 반박한다. 첫째,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노년을 배의 키잡이에 비유하면서 큰일은 체력이나 신체의 민첩성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과 판단력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러한 자질은 노년이 되면 줄어들지 않고 늘어난다고 말한다. 

둘째, 몸이 쇠약해진다는 것에 대해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의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라고 말한다. 

셋째, 감각적 쾌락이 없어졌다는 것에 대해 “쾌락은 심사숙고를 방해하고, 이성에 적대적이네. 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쟁을 다 치르고 나서 자신 속으로 돌아가, 자신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라고 하면서, 학구열 같은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라고 주문한다.

넷째,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이 죽으면 한참 타오르는 불길을 물을 부어 강제로 끄는 형상이지만 노인이 죽으면 불이 다 타서 저절로 꺼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서 젊은이에게서는 폭력이, 노인에게서는 ‘완숙’이 목숨을 거두어간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2035년 30%, 2050년에는 43%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법과 제도, 정책의 대부분은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65세 이상 연령층 또한 두터워지고 있으므로 이들이 경험을 토대로 자기의 탁월성을 발휘하면서 사회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고, 사회적 돌봄에서도 ‘주체’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노년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 키케로는 존경받는 노년으로 살아가려면, 무기력하게 나이에 굴복하지 말고, 활처럼 팽팽한 마음을 지니라고 말한다. 자신을 방어하고, 제 권리를 지키고,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제 영역을 지배하라고 조언한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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