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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민주적인가, 계급적인가?
재난은 민주적인가, 계급적인가?
  • 김정규
  • 승인 2022.05.18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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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규의 책으로 보는 세상_『숨을 참다: 코로나 시대 우리 일』 김종진 외 14인 지음 | 후마니타스 | 336쪽

소규모 사업장 실직·비정규직 우울감이 더 많아
보편적인 사회 안전망 위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

‘인권’(人權, human rights)은 모든 법에 앞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국가는 개인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헌법 10조). 인권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을 생명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권, 정치적 견해·성별·인종·종교 등과 상관없이 평등할 평등권, 사람답게 살 ‘생존권’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권 중의 하나인 ‘생존권’(사회권)을 위협받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취약계층에서 더욱더 두드러졌다. 최근 출판된 『숨을 참다』은 코로나19로 위험에 처한 취약계층의 이야기를 11인의 작가가 르포 형식으로 담고, 말미에 연구자 4인의 ‘현장 분석’을 붙인 책이다. 

‘숨마저’ 참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처절하고 안타까워서 분노가 치민다. 방과후 강사 현진 씨는 2020년 3월부터 1년간 강의를 하기로 계약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자 학교에 불려가서 계약기간을 고쳐 썼다. 강의하지 못한 당초 계약기간의 강의료는 물론 받지 못했다. 수업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거기에는 학교도 교육청도 국가도 없었다.

C관광호텔에서 주말 파트타임 룸어텐던트(객실 청소 및 관리)로 일하던 지선 씨는 2020년 3월 초 ‘앞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85% 정도 감소한 시점이었다. 호텔 정규직도, 외주업체 직원도 아닌 지선 씨는 실업급여도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근무시간이 월 60시간 미만이었고, 쥐꼬리 월급에 보험료가 부담되어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호텔 사장은 프런트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주 15시간 미만의 파트타임 노동자를 고용했다. 퇴직금도, 주휴수당도 지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위험 사회, 사회 안전망 지속이 필요

이처럼 팬데믹이 시작되자 취약계층의 고용관계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재난은 민주적이지만 그 대응은 계급적”이라는 울리히 벡의 말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위험은 약자에게 확실하게 더 가혹했다. 

책에 실린 정슬기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과)의 조사를 보자. 5인 미만 사업장의 실직 경험 비율은 2020년 6월 19.7%에서 2021년 3월에는 33.1%까지 증가했다. 이는 300인 이상 사업장보다 3.5배 높은 수치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심각한 우울감’을 느끼는 비율은 어땠을까? 2020년 4월에서 12월까지의 기간에 정규직은 10.3%에서 22%까지 상승했는데, 비정규직은 16%에서 31.3%까지 상승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실직이 훨씬 많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우울감에 더 시달린 것이다. 이러한 지표들은 한국이 법적, 제도적으로 긴급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확진자 수 관리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방역정책이 초래하는 2차적, 3차적 피해에 대해 외면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근대적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찰적 근대화'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통제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사회적 위험을 증가시킨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신을 버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안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뮌휀대 사회학연구소장을 역임한 울리히 벡. 그는 1986년 『위험사회』 저서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사진=위키백과 

이제 정부 차원의 코로나19 방역은 사실상 해제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 변이 재유행 경고도 있고 또 다른 바이러스의 등장도 예견되고 있다. 위험이 상존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취약계층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사회 안전망, 특히 고용유지제도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하이에크(프리드리히 A.)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정신을 망각한 정책들이 언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허상을 신봉한 나머지 사회복지를 소홀히 하고, 각자도생을 당연한 것으로 몰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게 될 것이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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