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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에는 니체가 필요하다
절망의 시대에는 니체가 필요하다
  • 김선진
  • 승인 2023.11.17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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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니체의 삶』 | 수 프리도 지음 | 박선영 옮김 | 비잉 | 692쪽

허무주의와 혼돈의 시대에 필요한 이정표
삶의 긍정·의지 견지하는 실존주의의 시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까지 겹쳐지면서 인간은 얼마든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무고한 생명에 대한 학살과 무자비한 폭력은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보았던 인간의 집단적 광기를 재연하고 있다. 

이성적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주겠다는 신에 대한 믿음에 심각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어디에도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길을 잃어버린 듯 허무주의의 망령이 거리를 배회하는 시대엔 니체가 필요하다. 극심한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번민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삶의 견고한 의지를 재건한 ‘초인’이었던 철학자 니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에게 혼돈의 시기에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사실 그 많은 철학자 중에 니체만큼 오해하고 오독되는 사람도 없다. 이를테면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을 구성하는 ‘힘에의 의지’는 심지어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 의해 인종청소의 논리로 왜곡되기도 했고, 지금도 출판 시장에서는 그의 많은 ‘명언’들을 발췌해 인용한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단골로 오용되고 있을 정도다. 니체를 그저 자기계발서로 소비하는 것은 그의 사상과 언명을 너무 협소하고 편협하게 낭비하는 것이다. 

허무주의와 무신론을 대변하는 의미로 인용되는 니체의 언명 ‘신은 죽었다’ 역시 그의 사상 중 대표적으로 자주 오해받는 생각 중의 하나다. 그 자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가 실제로 결국 무신론자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 말이 단지 무신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신은 당대의 보편적 가치와 권위·제도·도덕과 종교 등 개인의 자아와 주체성을 억압하는 일체의 가치 체계를 상징하는 아포리즘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세상의 권위와 기준이 사라졌다는 허무주의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삶을 긍정하고 삶의 의지를 견지하는 실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언명이었다.

전기작가인 저자 수 프리도는 이 책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인 호손덴상을 수상했다. 이 책 이전에도 작품 『절규』로 유명한 에드워드 뭉크의 전기를 써 영국의 세계적인 전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을 정도로 믿을만한 작가다. 이 책에서 그는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의 주변 사람들을 보라는 말처럼 니체에게 중요한 사람들을 조명하는 방법으로 니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그가 존경했던 음악가 바그너, 니체의 연인이었던 코지마와 살로메 심지어 그의 악한 여동생 엘리자베스까지 다양한 인물을 그려내는 그의 글솜씨는 시사지 <뉴욕타임스>가 ‘평전을 문학 작품의 경지로 승화시켰다’고 격찬할 정도로 뛰어나다. 심지어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영국·스위스·독일·미국 등에서 활동하는 많은 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려 4년의 시간을 투자했다. 

『니체의 삶』은 ‘음악의 밤’이란 제목으로 시작되는 첫 장부터 개인적 일화를 통해 인간 니체가 성장한 과정과 니체의 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우리가 몰랐던 인간 니체의 처절했던 삶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이 형성된 삶의 맥락과 『비극의 탄생』을 시작으로 니체의 마지막 작품인 『이 사람을 보라』까지 이어지는 니체 철학의 요체를 체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극심한 고통과 우울 속에서도 허무주의에 침잠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굳건히 세운 그의 삶이 그의 철학의 맥락과 배경이었다. 니체를 발견한 후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재미’를 탐구하면서 인간을 이해하는 동안 그는 반대로 ‘고통’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밖에 있는 신도, 종교도, 도덕도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본연의 나, 참된 나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사방이 흑암으로 둘러싸인 것 같고 우리의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때가 바로 우리에게 니체가 필요한 시간이다.

 

 

 

김선진 
‘재미 연구서’ 『재미의 본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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