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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없는 세상,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일이 없는 세상,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 김선진
  • 승인 2023.08.18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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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 김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388쪽

대증적 접근 방식을 벗어나 일의 본질을 재정의
분배 강조한 ‘큰 정부’나 조건부 기본소득 제시

최근의 사회 변화는 한 편의 SF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마저 느끼게 만든다. 자동차 조립, 서비스 로봇 같은 기계의 자동화는 물론이고 의사, 변호사, 작가 등 인간의 비정형 인지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이언맨의 자비스든(비서),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든(파괴자), 매트릭스의 AI든(정복자) 영화에서나 봄직한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일을 보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실질적 위협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14일 꿈의 공장으로 일컫는 할리우드에서 미국의 작가와 배우들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며 대책을 요구하는 동반 파업에 나섰다. 작가·배우조합이 동반 파업을 벌이는 것은 메릴린 먼로가 참여하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배우조합장을 지내던 1960년 이후 63년 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절박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노동의 위기에 관해서는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이미 30여 년 전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예견한 바 있다. 그는 노동 없는 미래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점에서 생계수단으로서의 노동이 사라지는 세상에 대비해야 함을 강조했다. 제레미 리프킨을 포함해 많은 미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일의 역사에서 반복됐던 것처럼 기술 혁신이 초기에 인간의 일자리를 뺏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거라는 낙관적 입장을 취한다. 실제로 과거 산업혁명기에 신기술의 등장에서는 크게 생산성 향상 효과, 파이 확대 효과, 파이 탈바꿈 효과가 기계 자동화에 의한 노동 대체를 상당 부분 상쇄시킬 수 있었다.

영국 정부에서 십여 년 이상 정책분석 및 정책자문 역할을 해온 대니얼 서스킨드 옥스퍼드대 베일리얼 칼리지 경제학과 선임 연구원은 노동의 미래에 관해 이와 같은 기존의 판단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는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원제: A World without Work)에서 노동의 축소가 초래할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와 불평등, 세수 부족과 소비 침체 등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증적 접근 방식이 아니라 일의 의미와 본질을 재정의하는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지금까지의 복지 정책이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며 국민이 다시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회복력을 주는 데 그쳤다면, 앞으로는 일자리가 사라져 소득이 없어진 계층이 더욱 늘어날 것이므로 기존의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의 생각은 단순히 줄어든 일자리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나 약화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사회복지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부족하고, 오히려 생계수단으로서의 일의 제한적 역할과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분배의 역할을 강조한 ‘큰 정부’, 조건부 기본소득의 지급과 같은 해법은 이념적 편견 없이 읽으면 상당히 설득력이 높다.

그의 책 제목이 말하는 ‘일이 없는 세상’은 조건부 미래가 아닌 정해진 미래라고 할 수 있다. 미래학자 로이 아마라의 말처럼 우리는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장기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노동 없는 미래가 일자리가 사라져 생계수단을 잃게 되는 공포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반대로 지금까지 인류가 그저 생존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고, 급증하는 빅테크의 힘을 제약하며, 일이 더 이상 우리 삶의 중심이 아닌 세상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우리의 미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왔던 지금까지의 세계는 끝났으며, 그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사느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웅변이다. 일이 더 이상 생계수단이나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닌 세상에서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이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 없는 미래는 일이 곧 능력을 의미하던 지금까지의 세계관을 비웃으며 삶의 즐거움과 목적을 다른 데서 찾도록 재촉하고 있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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