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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노동제’, 사고율 줄고 임금은 올랐다
‘6시간 노동제’, 사고율 줄고 임금은 올랐다
  • 김선진
  • 승인 2023.04.21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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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8시간 vs. 6시간: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지음 | 김승진 옮김 | 이후 | 392쪽

노동자 인터뷰·경영진 수기·언론 보도 분석
시간 줄자 고정비용 낮아지고 일자리 증가

인류 역사상 신기술의 등장은 늘 그랬듯이 ‘창조적 파괴’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의 도전은 인간의 역할과 존재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정도로 가공할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일론 머스크, 유발 하라리, 스티브 워즈니악 등 1천여 명의 유명 인사들이 나서 인공지능 개발 경쟁을 한시적으로 중단하자는 제안을 할 정도로 전문가들조차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명품 패딩을 입은 교황’과 ‘체포된 트럼프’의 사례는 단순한 장난을 넘어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가짜 뉴스를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바로 ‘노동의 종말’에 대한 우려다. 이미 전문가들은 향후 5년 이내에 전체 노동인구의 20%를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우리나라는 노동 유연화란 미명 하에 주 52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이는 시대 역행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싫든 좋든 장구한 세월 인류의 생존 근거가 되어준 ‘일’은 축소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적정 노동’이나 ‘노동의 의미와 가치’ 등 노동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노동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해야 할 필요성이 높은 시점이다.

 

이젠 너무나 당연시되는 하루 8시간 노동의 타당성에 대해 근본적 회의를 던진 벤저민 허니컷의 『8시간 vs. 6시간』(1996)은 출판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요즘같이 격변하는 노동 환경 변화에 시의성 높은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으로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이 책은 산업사회학과 노동 연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켈로그 공장을 사례로 6시간 노동제의 탄생과 유지 그리고 소멸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저자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는 미국 아이오와대의 여가학과 교수로, 전작 『끝이 없는 일』에서 일과 여가의 경계가 사라지는 역사적 현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종말을 연구한 바 있다.

저자는 대공황에 허덕이던 1930년대 미시건 주 배틀크리크의 켈로그 공장이 전격 도입해 무려 50년간 지속돼 온 ‘6시간 노동제’(1931년 4월 1일∼1985년 2월 8일) 사례를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경영진의 수기, 언론 보도 내용을 면밀하게 조사해 노동시간 축소의 인류사적·문화사적 의미를 생생하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6시간 노동제는 일자리 나누기 효과를 넘어 다양한 경영 성과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1931년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한 이후 5년째에 접어든 1935년에 발표한 경영진의 통계에 의하면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기 전인 1929년보다 단위당 고정비용이 25% 줄었고, 단위당 노동 비용도 10% 줄었으며, 사고율은 41%가 줄고, 1929년보다 노동자가 39% 늘어나는 등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나타냈다. 6시간 노동제의 선도적인 정책을 광고에도 활용하여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부수적 효과도 거뒀다.

노동자들은 소홀했던 가족과 공동체 활동을 즐겼고, 허드렛일이 아닌 아이 돌보기, 이웃 돕기 등 일상의 의무들과 여가 활동에서 자유를 찾았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 단순히 ‘자유 시간’의 증가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여가의 증가는 곧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과 통제력의 증가를 의미했다. 당시 6시간제 시행과 동시에 시간당 임금이 12.5% 상승하고, 1년 뒤에 다시 12.5% 올라 노동시간 감축에도 노동자들의 소득은 오히려 상승하는 효과도 있었다.

1940년대 들어 2차대전이 발발하고 경영진이 교체됐으며, ‘더 많은 임금’과 ‘더 많은 소비’가 삶의 중심 가치가 된 소비주의 사회가 정착되는 분위기 속에서 1950년을 기점으로 6시간 노동제는 소수의 입장이 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다. 심지어 노동조합조차 임금 인상을 쟁점화하면서 8시간 노동을 지지했다.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는 결국 1985년 미완의 실험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노동과 삶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통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즉, 노동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 것이다. 이는 특히 OECD 최장시간 노동과 과로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사는 존재’라는 평범한 진실 말이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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