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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정책에 ‘남녀’ 차이는 왜 없나
빈곤 정책에 ‘남녀’ 차이는 왜 없나
  • 김수아
  • 승인 2023.11.03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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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김진희 외 7인 지음 | 후마니타스 | 268쪽

여성 홈리스는 싸우면서 동시에 타협하는 사람
성 착취 위험 때문에 노숙 못하고 정책에서 배제

이 책은 여성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돼 있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는 기록의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에서 홈리스는 노숙인을 포함해 쪽방 거주자 등 비적정 주거 거주자를 지칭한다. 활동가가 담아낸 목소리와 여성 홈리스가 직접 쓴 이야기가 함께 수록돼 있다. 

활동가는 자신이 만난 여성 홈리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그 경험에 대한 자기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기록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그 관계가 쉽게 어긋날 수 있는 쉽지 않은 경험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글쓴이들은 자신이 만난 여성 홈리스에 대해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을 강조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 홈리스가 처한 개인 상황이나 성정에 따라 유발하는 갈등 상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활동가 홍혜은은 여성 홈리스가 해온 돌봄의 노동을 부각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길순자의 돌보는 삶에 대해 들려준다. 그가 스스로 설명하는 돌봄의 노동은 다른 사람을 깨끗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길순자의 삶은 어머니나 쪽방촌의 옆방 아저씨 등 살면서 만나온 여러 타인들을 돌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책을 쓰면 수십 권을 쓸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할 얘기가 없다고도 말한다. 돌봄이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홍혜은이 삽화처럼 그려낸 길순자의 근황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려고 부르는 일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쉼터 생활을 하면서 일과 양육을 병행하고 독립적 주거를 갖게 된 김진희의 편지는 여전히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로 세계를 해석할 때 생기는 한계를 구절구절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 목소리를 낸 여성 홈리스는 싸우는 사람이자 타협하는 사람이었다. 전시 행정의 현장에서 현실을 직시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 집회에서의 강경 발언을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려는 사람이자, 구조의 빈틈을 활용하고 타협하면서 자신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싸움과 타협의 대상이 되는 구조는 여성 홈리스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없다. 이재임은 통계를 통해 여성 홈리스가 처한 사각지대에 대해 설명한다. 성 착취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거리에서 노숙을 못하는 여성 홈리스들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기에 보건복지부의 ‘거리와 시설, 쪽방’ 중심의 대책에서 소외되는 결과가 생긴다. 

지난 17일,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다. 사진=홈리스행동 

인권단체인 ‘홈리스행동’의 도움으로 남성 중심의 노숙인 거주 공간이 아닌 고시원과 같은 주거를 구하려는 경우, 종종 집주인이나 시설 담당자가 노숙인이라 안되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서가숙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말하듯 급식소에서도 여자들은 식당 가서 일하면 된다는 남성 노숙인의 배제와 차별을 넘지 못한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이 책의 제목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여성 홈리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넣어 다니는 가방이 차별의 표식이 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자 방이라는 독립된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의미 역시 담겨 있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여성 홈리스 구술 생애사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읽은 이는 또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남긴다.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가 대중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홈리스는 비난 대상이 되기 쉽다. 젠더화된 구조적 차별이 작동해 비가시화된 여성 홈리스의 삶에 대해 듣게 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홈리스이자 활동가인 서가숙의 말처럼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숨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현재의 몰성적(沒性的) 빈곤 정책을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내려면 무엇부터 시작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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