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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 대안은 외국인 육아 도우미?…계속되는 계급·인종의 성차별
직장맘 대안은 외국인 육아 도우미?…계속되는 계급·인종의 성차별
  • 김수아
  • 승인 2022.10.13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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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여성, 인종, 계급』 앤절라 Y. 데이비스, 정희진 (해제) 지음 | 황성원 옮김 | 아르테(arte) | 400쪽

피부색 문제는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무시
섹슈얼리티·몸의 주제에도 인종차별적 시각

교차성이라는 개념이 페미니즘 연구의 중요한 도구이자 토대가 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인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젠더와 인종, 그리고 계급의 문제는 언제나 페미니즘의 중요한 주제였다. 안젤라 데이비스의 1981년 책 『여성, 인종, 계급』은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기에, 어쩌면 지금과 무척 거리가 있는 과거의 기술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을 재해석하고 검토하는 것을 통해 다시 한번 평등을 위한 요구에서 무엇이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따져 볼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여성 권리 운동의 중요한 사건마다 어떠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배제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여성 권리 운동의 성공으로 표상된 성취들이 어떤 한계를 보이는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여성 역시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드러내어 준 분명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 그리고 흑인 여성은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전혀 부여받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는 흑인 여성 운동가, 흑인 여성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서 명백하게 지적되었다. 아직도 종종 인용되는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문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는 새로운 여성 운동의 계급 편향과 인종주의를 명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19세 말에 이르러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기보다는 더 커져서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피부색 문제는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면서 무시되었으며,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문해력이라는 담론적 도구를 활용하면서 흑인 여성 및 흑인 남성, 이민자 여성과 이민자 남성을 배제하면서 인종차별주의에 복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흑인 여성에게 해방의 의미는 부르주아 계급의 백인 여성과는 달랐다. 가사 노동이라는 주제에서, 흑인 여성은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치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백인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거나 여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흑인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추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여성들에게 가사 노동이 갖는 의미는 백인 중산층 계급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또한 섹슈얼리티와 몸이라는 주제에서도 인종차별적 시각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여성의 억압을 폭로해 온 여러 미국 여성 운동의 고전들은 이 책의 시각에서 보면 인종차별주의를 내면화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강간 문제를 제기한 브라운밀러나 파이어스톤과 같은 연구자들의 저작물은 결국 흑인 강간범 신화를 강화하며, 이 신화는 결국 흑인 여성성에 대한 고정 관념, 즉 흑인이 모두 성적 욕망에 지배당하는 동물적 수준이라는 전제를 통해 만들어지는 흑인 여성에 대한 과도한 성적 의미 부여 역시 강화한다. 이 효과는 흑인 여성이 강간 범죄를 신고할 때 그 여성을 먼저 의심하게 하는 피해자 책임 유발론이다. 특히 흑인 강간범 신화를 구축하게 된 역사적 맥락, 즉 린치라는 흑인에 대한 집단 행동에 대한 면죄부로 작동했던 차별적 맥락을 무시한 채로 흑인 남성에 의한 백인 여성의 강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흑인 남성이 주로 범죄자로 지목되는 것은 백인 남성들이 권력 구조 내에서 익명의 강간범으로 남아 있는 것에 대비되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직장맘의 대안이 외국인 육아 도우미일까? 이런 담론에는 여성, 계급, 인종 차별이 깔려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안젤라 데이비스는 페미니스트로서 여성 해방의 목표로 자본주의와 계급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사회주의적 지향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세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 맥락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사 노동과 임금 문제를 다룬 당대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논쟁 역시 낡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를 도입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등장하는 이 시점에서, 계급과 인종에 따른 성차별주의의 양상들이 어떻게 옷을 갈아입고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환기하는 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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