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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노동, 젠더화·계층화에 머물 것인가
여성의 노동, 젠더화·계층화에 머물 것인가
  • 김수아
  • 승인 2022.07.15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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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한국가족: 신가족주의에서 포스트 가부장제로』 이재경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8쪽

계층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혼 제도, 소득 불균형과 연계
젠더 규범을 전복하려면 노동의 패러다임·양육 모델 전환해야

한국 가족의 모습은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국민 전체에서 34.0%였고, 20대의 경우는 53%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증가 추세 역시 가파르다. 2015년 조사에서 21.3%였던 1인 가구 비중은 이번 조사에서는 30.4%로 증가했다. 대중매체에서는 여전히 양식화된 대가족 혹은 근대적 핵가족을 가족 모델로 제시하지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은 훨씬 더 다양해졌다. 이는 그저 가족의 모습이 달라진 것에 그치는 게 아니다. 가족을 기준으로 구성된 삶의 방식이 갖는 한계 역시 드러나는 중이다. 

 

『한국가족』은 한국 가족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짚으면서 현재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여러 가지 혼란과 갈등의 원인이 이와 같은 가족 구조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 사회가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발생한 가족 구성의 다양화, 핵가족 중심 생애 규범의 변화를 상세하게 제시하고, 이러한 변화가 결혼 및 노동,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던지는 논점들은 다층적인 차원을 가로지르는 무거운 주제들이다. 서구 페미니즘이 다루어온 가족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핵가족 비판에 집중되었다면, 비서구 사회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은 압축적 근대화와 개인화, 전통적 가치 구조와의 갈등 등 보다 다면적인 차원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이 책은 핵가족화의 한국적 맥락을 다루면서 특히 생애 과정의 변화가 여성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의 노동 참여 증대, 생애 과정에 대한 인식 전환에 비해 남성들의 인식은 여전히 근대적 핵가족 이상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격차가 사실상 현재의 갈등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인식 격차는 계층이라는 사회적 제약에 따라 서로 다른 실천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젠더와 계층이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에 주목한다. 비혼 선언이 대세로 보이는 현재의 담론 구조 속에서 결혼은 계층적 이익을 위해 실리적으로 선택되고 있다. 계층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혼 제도는 가족 간의 소득 불평등에도 연계된다. 개별 가족 내에서 여성의 노동 참여가 소득을 증가시키지만 가구 간을 비교하면 계층 차에 따라 여성의 노동 참여는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현상이 여성의 노동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는 근거인 것은 아니다. 이는 여성의 노동이 젠더화, 계층화되어 있어서 노동 시장 양극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젠더 구조와 불평등의 복합적 효과인 것이다. 

가족 구조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왔으며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상세하게 살핀 후, 이 책은 가부장제 이후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로 끝을 맺는다. 책이 부제로 제시한 포스트 가부장제는 전통적 가부장제도의 권위가 줄어드는 가운데에도 잔존하는 가족주의의 영향력을 말한다. 성별 분업 구조의 변화가 요구되고 가부장제의 제도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가족 내의 젠더 규범 체계는 유지되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젠더 규범 변화가 느린 이유 중 하나로 이 책은 돌봄의 문제를 꼽는다. 돌봄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를 물으면서 육아휴직의 확대 등을 논의하는 정책 패러다임은 젠더 관계의 해체를 상상하지 않는다. 저자는 보다 급진적 변화를 위해서는 돌봄의 문제를 어떻게 돌봄을 수행할 것인가라는 문제 틀 내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누가’를 묻는 정책은 여전히 남성 노동자 규범을 전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도의 변화만 상상하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의 부담을 나누어 갖는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종종 현재의 청년세대들이 가족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이들이 떠나고자 하는 가족은 포스트가부장제 가족, 즉 여전히 성별 분업에 기초한 젠더 규범의 잔재가 남은 가족이 주는 억압이다. 이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노동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양육의 모델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 책은 역사적, 구조적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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