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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이 대리하는 ‘성범죄’…점점 상품화 되고 있다
법조인이 대리하는 ‘성범죄’…점점 상품화 되고 있다
  • 김수아
  • 승인 2023.06.0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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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 | 휴머니스트 | 392쪽

이 책은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성범죄 전담 법인의 문제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하면서 성폭력 문제 해결의 의미를 다시 짚어낸다. 저자는 오랜 기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헌신해 왔다. 현재의 사법 체계가 일방적으로 성폭력 가해자의 변호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무책임하게 승인하는 문제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포털 사이트나 검색 사이트에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률 정보를 검색하면 성범죄를 전담한다는 사선 변호인 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형량 강화, 신상 공개 제도 운영 등 성폭력 범죄를 엄벌하기 위한 법제도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는 성폭력 피해자, 변호인, 그리고 지원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국선 변호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부조리에 직면한다. 그런데 반대로 가해자는 고액의 사선 변호사를 고용하여 적극적으로 형량을 줄여나간다. 종국적으로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사법 체계의 문제가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최근의 뉴스를 보면 성범죄 전담 법인에 의해 감형과 무죄 전략이 끊임없이 발명되고 활용된다. 승소 사례집에는 진심 어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형되는 사례, 역고소를 통해 피해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가하고 재판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강화하는 전략 등이 자랑스러운 성공전략으로 홍보되고 있다. 그러니 가해자가 비싼 사선 변호인을 쓸수록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즉, 피해자의 피해가 가해자에 의한 공격 여지가 큰 피해와 그렇지 않은 피해, 무고로 의심받을 피해와 그렇지 않은 피해로 재의미화되는 것이다. 성범죄 전담 법인은 무죄와 감형 전략을 정보화하고 상품화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억울한 피해자 정체성을 공유하고 법정의 언어를 가해자 중심으로 재조직화한다. 그 결과 상업적 전략이 피해자의 권리 실현과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구조적 폭력의 문제이자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과제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숙련된 법조인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개인 간 싸움을 대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이익이 되는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남성 중심 법체계에서 유리한 언어를 구사하는 가해자 전담 법조인들이 명성과 부를 쌓아간다. 

그래서 저자는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법적 과정에만 맡기게 된 현실을 성폭력 사건 해결의 사법화, 즉 정치의 사법화 현상으로 진단한다. 정치 과정과 공론을 거쳐 논의되고 합의를 도출해야 할 과제가 엘리트 법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성폭력 문제 해결이 오로지 개인의 역량, 다시 말해 경제력으로 환원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하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중요한 과제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즉 엘리트 법관의 판결문에 따라 가해자에게 형량이 선고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부정의를 바꾸는 투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법적 판결이라는 도달 상태가 아니라 공적 책임을 지고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권력 구조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과정적인 것으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개념화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끌어내 정치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성폭력 정치는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공공성을 확장하고, 공적 책임의 문제를 환기하여 해결의 조건을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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