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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씌운 프레임…정치가 선동한다
‘페미니즘’에 씌운 프레임…정치가 선동한다
  • 김수아
  • 승인 2023.04.17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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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백래시 정치: 안티페미니즘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신경아 지음 | 동녘 | 272쪽

‘페미니즘·인권·민주주의’의 변혁 거부하는 백래시
부정적 감정의 정치에 대항하는 대안·연대가 절실

어느 때보다 반(反)페미니즘 정서가 다수가 공유하는 정서로 여겨지고, 정책 과정과 생활 영역에서 여성의 이름이 지워져 가고 있다. 『백래시 정치』가 그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개념적 도구와 설명을 제공해준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백래시’의 의미를 짚고, 이 현상이 한국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지리적으로 살필 때 페미니즘이 운동으로서 성과를 보이는 경우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백래시는 반동 혹은 반격으로 번역될 수 있다. 백래시는 페미니즘뿐 아니라 인권에 대한 주장,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등 불평등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을 때, 이러한 변혁을 거부하고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에 의해 나타나게 된다.

 

특히 미국·유럽 등에서 나타난 백래시 사례에서 미디어가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페미니스트가 위험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데에는 페미니즘의 의제를 제대로 다루는 대신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묘사해온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미투운동을 다룰 때에도 이를 마녀사냥이라거나, 여성들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생긴 일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나 성폭력 문제의 해결에 걸림돌로 작동했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대남 현상과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상황에선 정치권이 반페미니즘 메시지를 언론과 커뮤니티를 동원하여 유포하고 대중에게 인식시킨다. 언론은 무책임하게 논란을 중계하면서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 책은 다수의 통계 자료와 인식 조사 자료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현실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현재 청년들이 경험하는 어려운 취업 시장에서, 20대 여성들의 취업률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의 맥락을 잘라 해석하면서 이를 남성이 경험하는 불평등으로 생각하는 데 대한 상세한 해설이 제공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노동시장의 문제는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의 발달이나 노동 구조의 변화 등 거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고, 청년들의 취업 상황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여성에 대한 우대 때문이라고 보는 인식은 노동시장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 불안이 지속되고,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은 선거 기간에 일어난 성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전략적 괴롭힘이자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에 대한 무력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책은 현재 정부의 여성 관련 정책이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이자 민주주의의 약화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페미니즘 의제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 △여성들 간 연대의 강조 △담론 지형에서의 반차별·반혐오 연대 구축 △지역 운동의 강화 △반페미니즘 세력을 염두에 둔 전략의 형성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성차별 현실에 대한 풍부한 해석, 백래시가 민주주의에 해악을 미치게 되는 과정에 대한 해설, 그리고 백래시 정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부정적 감정의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서 대안을 고민하고 연대를 위한 전략을 구성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 책은 막연하게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개념과 이론적 자원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백래시가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면서도, 성평등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반드시 대항해야 하는 것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번 정부에 들어 여성 정책의 퇴보와 여성가족부의 역량과 담당 업무 축소가 가시화된 상황을 보는 페미니스트들은 냉소와 무력감에 빠지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감정의 정치에 눌리기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존의 감각을 형성하면서 연대와 민주적 설득을 위한 자원을 늘려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제안들이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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