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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 막다가 소수자 목소리도 묻힐라
혐오 표현 막다가 소수자 목소리도 묻힐라
  • 김수아
  • 승인 2023.12.28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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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혐오: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 홍성수·유민석 옮김 | 아르테 | 332쪽

혐오 표현 금지법은 편의적 해결책에 불과
대항 표현 가능한 환경 조성이 중요한 대응

많은 국내 연구자들이 혐오 표현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관해 형성적 규제, 즉 다양한 표현을 장려하고 교육을 통해 혐오 표현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시민성의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왔다. 네이딘 스트로슨 미국 뉴욕 로스쿨 교수의 이 책은 이러한 형성적 규제와 대항적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혐오 표현의 법적 규제가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중요 쟁점 중 하나는 혐오 표현의 개념이 모순과 혼란 속에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혐오 표현 금지 법제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혐오 표현 금지 법제가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 역시 제기한다. 저자는 혐오 표현 금지법이 실제로 차별과 폭력을 줄이고 피해자의 정신적 상처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논증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혐오 표현 금지를 위한 규제가 실질적으로 소수자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거나, 실질적으로 혐오 표현을 줄이는 데는 효용이 없었다. 

특히 저자는 창작물의 경우 창작물 제작자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책임까지 따지는 것이 적절한 조치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인종차별 행동의 책임은 행위자에게 있음에도, 그 사람이 본 인종차별 표현을 검열해 이를 방지해야 한다고 논의하게 되면 오히려 차별 행위자의 책임은 완화될 수 있다. 

소외된 사람들의 대항 표현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혐오 표현 문제를 해결하려면 표현의 검열보다는 차별의 시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차별금지법이 충분히 작동하는 사회는 혐오 표현의 해악이 줄어들 수 있다. 저자는 소수자가 충분히 혐오 표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나를 향한 혐오에는 덜 민감해지고 다른 이를 향한 혐오 표현에 더 민감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더 두껍고 얇은 피부를 개발해야” 한다는 제안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혐오 표현 금지법은 가장 단순하고 편의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혐오 표현의 규제가 결국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제한하는 역효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 혐오에 대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 소수자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소수자의 역량 강화와 차별을 금지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등 혐오 표현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대안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분명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혐오 표현을 충분히 방지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저자의 주장이 상당 부분 미국 문화와 맥락에 따른 것이라는 점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항 표현이 가능한 환경 조성이 상호 윤리적 맥락은 물론 다양한 규제 효과를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작금의 ‘집게 손가락’을 둘러싼 논란과 같이, 온라인 공론장이 현실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우리가 환경 조성을 시작해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온라인 극단주의 커뮤니티에 대한 우려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한국과 같이 언론이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여론을 대변하는 경우는 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자는 저자와 대담을 통해 문화적 맥락과 차별금지법의 유무와 같은 근본적 자원 차이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법적 금지와 형성적 규제가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언급과 함께 ‘표현의 법적 금지’라는 단순하고 마법적인 혐오 표현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저자가 주장하는 ‘더 많은 노력’은 지금부터라도 실천적 전략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혐오 표현 규제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열어주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결국 차별의 금지가 혐오 표현을 줄이는 데 있어 핵심이라는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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