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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혁명성과 인종차별 공존…섬세하게 관찰하고 한계 성찰하기
여성, 혁명성과 인종차별 공존…섬세하게 관찰하고 한계 성찰하기
  • 김수아
  • 승인 2022.04.2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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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틀어보기_『19세기 허스토리: 생존자의 노래, 개척자의 지도』 노서경 외 5인 지음 | 마농지 | 372쪽

19세기 여성들의 가부장제·인종차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주류 백인층에 호소하여 운동을 성공시키려는 전략도 구사

19세기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에 거리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적으로도 멀 뿐 아니라, 아이티,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을 오가는 지리적 거리 때문에도 친숙감이 쉽게 안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19세기 허스토리』가 다루는 역사적 순간들은 여성의 삶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들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관련된 것이다. 

 

가부장제와 인종차별, 글로벌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 하에 놓인 제3세계 여성들의 현재는 가부장제와 식민주의가 결합한 노예제 하에서도 꾸준히 자신만의 삶을 위한 토대를 쌓아가는 19세기 아이티 여성들의 여정에 이어지는 것이다. 혁명에 앞장선 여성들, 노동 운동을 시작한 여성들, 글을 출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단선적이고 이분법적인 구도로 여성의 삶을 설명하는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 책은 소설, 광고, 편지, 언론 기사 및 도서, 선언문과 같은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당시 여성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읽는 방법으로 저자 중 한 사람인 권윤경은 승리자에게 감정이입하지 않고 억압받는 자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 투사와 지식인은 물론 비인간적인 환경 하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을 강조한다. 

 

여성, 스스로 말하고 표현하다

또한, 이 책의 저자들은 현재의 시각에서 당시의 삶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역사를 평가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여성들의 삶과 경험은 저항과 순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설명할 수 없고, 시대적 한계 속에서 평등의 추구와 여성의 자아 실현을 위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전략을 수행한 성과로 보아야 한다. 19세기 미국 로웰의 첫 세대 여성 공장 노동자는 사회적, 경제적 존중에 대해 요구하면서 직접 글을 쓰고 이를 묶어 문집을 냈다. 이 문집에 실린 글들이 당시 여성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비판을 받아 종간했다. 하지만 이 문집은 여성 공장 노동자가 그의 삶에서 다른 차원을 그려내면서 스스로를 말하고 표현하는 사람으로 정체화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영국 빅토리아 시기의 문학가인 세라 콜리지는 당시 남성의 일이던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다. 그러나 시대의 한계 때문에 아버지의 글에 편집자 역할로 이름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순응한 그를 가부장제 하의 여성상을 유지하여 이득을 누리는, 투쟁하지 않았던 작가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는 남성의 일인 글쓰기에 종사하면서 빅토리아 시기의 가정의 천사 모델을 벗어나 자기 실현의 한 방식을 구축한 것이었다.  

혁명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삶 역시 다기하다. 검은색 옷만을 입었던 루이즈 미셀은 남태평양 그리고 파리의 감옥에서 글을 썼고 글을 모르는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농촌 여성의 삶을 드러냈고, 책 『코뮌』을 세계 각국의 제국주의 희생자들에게 바쳤다. 평범한 가정 주부의 삶을 영위해왔던 미국의 캐디 스탠턴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19세기 여성 운동의 주요 의제로 만들었고 의복,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이혼법 개정, 신학의 성차별성 등 생활 속에서 여성 운동의 의제를 발굴했다. 그러나 그는 인종차별을 활용하여 주류 백인층에 호소하여 운동을 성공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어떤 여성 혁명가가 올바른가를 논하기보다는 다기한 혁명가의 삶 속에서 혁명성과 인종차별이 공존하는 상황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한계를 성찰하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독일의 혁명가 루이제 오토를 설명하는 ‘시대의 한계 안에서 시대와 더불어’라는 소제목이 이 책이 보여주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9세기로부터 이제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노동권 문제, 여성의 말하기와 재현, 그리고 사회적 변혁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역사서이자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성찰의 지점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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