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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제왕학, 군주는 어떻게 대사를 행하는가
주역의 제왕학, 군주는 어떻게 대사를 행하는가
  • 이한우
  • 승인 2022.12.01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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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㊲_주역
주역의 팔괘도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조선 군주들은 대부분 ‘주역’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종 21년(1439년) 7월4일 세종이 세자에게 강무, 즉 사냥을 할 것을 명하자 의정부에서 들고 일어나 “예전에 이런 일은 없었다”라며 저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한 세종의 반박이다. “‘주역’ 에 이르기를 ‘아비의 일을 아들이 맡아 처리한다’고 했다. 세자가 장차 나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릴 것이니 군사를 나누어 거느리고 권도로 강무를 행하는 것이 실로 의리에 있어 해롭겠는가?” 정면 반박이다.

그런데 ‘주역’을 가장 체화한 리더십을 보여준 조선 군왕을 꼽으라면 그 첫째는 태종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먼저 ‘주역’이라는 책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같은 제왕학 훈련서이지만 ‘논어’는 일의 이치, 즉 예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주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과 정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둘이 충돌할 경우 대부분 중이 훨씬 큰 비중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중이란 상황에 적중하는 것이고 정은 정으로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상도라고 하는 것이 바로 정이며 권도라고 하는 것이 중, 즉 시중이다. 이때 시란 시간이 아니라 상황을 말한다. 결국 주역은 건괘와 곤괘라고 하는 임금과 신하를 각각 상징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아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62가지 상황을 상정해 각각의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이때 상황이란 철저하게 공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사로운 구복과는 무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태종의 생애 중 몇 가지 고비를 짚어보자. 첫째 그가 정몽주를 척살한 일이다. 조정의 재상을 일개 관리 신분으로 죽인 일은 예에 어긋나는 것이며 부정, 
즉 바르지 못한 처신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난 상황으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시 이방원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조선 개국을 준비하던 정도전 조준 등의 세력은 정몽주에 의해 목이 달아났을 것이고 조선 건국은 물건너 갔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이성계는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을 심하게 꾸짖었다. 정에 머무른 것이다. 이때 이방원이 ‘주역’을 공부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생래적으로 정보다는 중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둘째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을 죽이고 아버지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일이다. 이 또한 군부를 거역한 이중적 의미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정도전이 왕권을 무력화하며 권신의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상 고려말 혼란기로의 후퇴나 마찬가지로 역행한 처사였다. 

정에 머물러 좁은 시야로 태종을 바라보면 잔인하고 몰인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중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위대한 지도자의 면모를 포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태종은 재위초부터 ‘주역’을 숙지하고 있었다.

최대의 정적이었던 처남 민씨 형제들을 제거할 때도 ‘주역’ 곤괘 효사인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르게 된다”를 가슴 속에 새겼다. 간사한 자는 일찍 싹을 뽑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늘 ‘주역’을 가까이 했던 태종은 태종 15년(1415년) 8월 1일 이렇게 말한다. “주역 태괘를 읽어보면 나라 다스리는 방도를 대개 알 수 있을 것이다.” 태괘는 건괘가 아래에 있고 곤괘가 위에 있다. 흔히 생각하면 건괘가 위에 있고 곤괘가 아래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게 바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정위에 머물 뿐 위아래가 하나가 돼 화합되지 못한다. 건괘는 위로 올라가고 곤괘는 아래로 내려오니 건괘는 자기를 낮춰 신하에게도 배우려는 바람직한 상황이 형성된다. 태종이 태괘를 이렇게 평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고려대 영문과 졸업, 한국외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부터 신문기자로 일했고 2003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2014년 조선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2016년부터 논어등반학교를 세워 논어, 주역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로 논어를 풀다』,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이 있고 반고의 『한서』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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