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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폐지론자들의 위대한 투쟁
노예제폐지론자들의 위대한 투쟁
  • 허현
  • 승인 2022.07.22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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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⑳_허 현 충남대 사학과 교수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출처=위키피디아

1831년 초 미국 노예제폐지운동의 대부였던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은 보스턴에서 <해방자(Liberator)>라는 급진적 노예제폐지론 성향의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개리슨은 <해방자> 첫 호에서 “나는 노예들을 즉각 해방하기 위해 불굴의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이 문제에 관해 나는 온건하게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글쓰기를 원치 않는다...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 나는 모호하게 얼버무리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변명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 그리고 모두가 나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이전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비(非)타협적인 즉각적 노예제폐지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식민지시기를 포함하는 미국의 19세기 전반기 역사는 피부색만을 근거로 하는 인종주의적 노예제(racial slavery)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인들의 피부색을 “악마의 색깔”로 지칭하며 흑인들의 종신 및 세습 노예화를 정당화하고 있던 미국 사회는 심지어는 1787년에 제정되는 연방헌법 상에도 노예제 보호조항들을 명시할 정도로 반(反)자유주의적이며 반(反)민주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미국 혁명을 전후한 시점에 노예제를 점진적으로 폐지했던 북부의 소위 ‘자유주들’에서도 자유흑인들은 북부 주들이 제정했던 ‘흑인법(black codes)’으로 인해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사회에서는 설령 노예해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 하에 노예소유주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 논쟁이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일종의 해방흑인 추방운동으로서 아프리카식민운동이라는 해괴한 인종분리정책이 제안되곤 하였다. 

이러한 극단적인 인종주의적 노예제의 시대에 누군가 노예제 폐지를 부르짖는다는 것은 정신병자로 취급되거나 심지어는 국가적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무정부주의자 내지는 반역자로 인식될 정도였기에 노예제폐지운동에 뛰어든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사회적 자살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시대였기에 당대의 미국민들 사이에서는 노예 해방이나 노예제 폐지라는 대의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비(非)현실적 몽상에 불과했으며 설령 누군가 반(反)노예제운동을 전개한다 한들 일종의 정치적 타협과 패배주의 속에서 타락하기 쉬웠다.

이러한 어둠과 혼란의 시대에 개리슨과 개리슨주의자들은 기꺼이 나섰다. 이들이 본 노예제는 단순한 강제노동제도가 아니라 절대적 죄악이었으며 전 국민이 공모하는 국가적 범죄였고 미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급박한 정치적 청산 과제였다. 하지만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국민들 대다수, 심지어는 양심적이라는 교회조차도 양심적 마비 상태에 빠져있었다. 

개리슨과 개리슨주의자들은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 속에서도 대중들 의식 가운데 노예제 폐지라는 혁명적인 정치적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이들이 전개했던 노예제폐지운동은 단순히 노예제라는 범죄적 법률제도의 폐지를 목표로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노예제라는 극악(極惡)이 배양하고 있던 또 다른 죄악들과 범죄행위들의 청산을 통한 총체적 사회개혁운동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기력한 정치권을 질타하며 정치개혁을 부르짖었고 비(非)양심적인 교회개혁을 외치며 반(反)교권주의를 내세웠으며 타협하지 않는 양심을 요구하는 도덕적 절대주의를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인종평등과 마찬가지로 남녀평등을 향한 여권운동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그 급진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를 폭력의 지배체제라고 규정하면서 비(非)폭력적인 도덕적 설득론을 내세웠다. 요컨대 이들은 기성의 정치 문화에는 부재했던 ‘해방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냈고 기어코 내전을 통한 노예제 폐지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미래의 발판을 마련했다. 흔히 링컨 대통령을 “위대한 해방자”라로 부르지만 당대의 노예제폐지론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위대한 해방자”였다. 

우리 국가와 우리 시대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실망과 혐오, 혹은 패배주의적 인식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키워내지는 못하는 리더십의 부재(不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지도자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악당들은 모여 있는데 위대한 영웅의 탄생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하고 안일한 태도는 소위 민주주의의 시대에 결코 그 주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니다. 구(舊)시대를 타파할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키워낼 수 있다면 그 누구나 새로운 지도자이고 새로운 영웅이다. 혐오와 차별, 멸시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이끌 자격이 없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개리슨과 개리슨주의자들”을 꿈꿔본다.   

 

허 현 충남대 사학과 교수
미국 위스컨신 주립대(매디슨)에서 도망노예와 관련된 북부 자유주들의 인신자유법(personal liberty laws)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노예제와 노예제폐지운동, 미국 혁명, 미국 내전 및 인종주의 등과 관련된 일련의 논문들이 있으며 현재 미국사는 물론, 기록학과 여성젠더학과 관련한 연구 및 대학원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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