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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파동과 신자유주의의 부상…‘약속하는 정치’는 어떻게 무너졌나
석유파동과 신자유주의의 부상…‘약속하는 정치’는 어떻게 무너졌나
  • 우동현
  • 승인 2023.06.23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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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시대, 우리에게 ‘냉전’은 무엇이었나⑨ 냉전의 종식

아쉽게도, 한국과 북한은 냉전의 종식을 탐구하는 
연구 경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한국 연구자들이 냉전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닐까

1991년 12월 26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맹(이하 소련)의 입법 기관인 최고소비에트는 자국의 해체를 선언했다. 20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이자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모든 이들의 ‘조국’이었던 소련은 15개의 자본주의 국가로 쪼개졌다.

2023년 현재, 이들의 지정학적 위치와 셈법은 실로 복잡하다. 세 나라는 EU 회원국이고, 두 나라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렀으며, 러시아를 제외한 아홉 나라는 각각 러시아·서구·중국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70년대 데탕트와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을 목격한 국제질서는 이제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로 재편되는 듯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소련의 중동 개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제시했다. 하지만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의 최종적인 정부 형태라는 이 주장은 중국과 이슬람의 발흥을 예상하지 못했다.

소련의 붕괴, 새로운 냉전사 탐구의 시작

소련의 붕괴에 이은 ‘문서고 혁명’은 현대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구소련 국가의 비밀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소모적인 이념 공방의 ‘냉전적’ 연구를 뛰어넘는 냉전사 탐구가 시작됐다. 앞선 연재에서 다뤘듯, 2010년대부터 수준 높은 냉전사 성과가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냉전의 종식은 소련 붕괴와 동의어였다. 서구 역사학계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소련의 종장(終章)에 관한 역사학 성과들이 나왔었다. 이 연구들은 1960년대 소련의 경기침체와 1970년대 석유파동을 배경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을 주목한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대변되는 개혁의 방향과 그의 재임 기간 중에 터졌던 여러 재난(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 및 1989년 동유럽 혁명은 연구의 단골 소재이다.

소련의 붕괴를 가장 종합적으로 서술한 저작은 스티븐 콧킨의 『Armageddon Averted』일 것이다. 2001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학술서로는 드물게 2008년 개정판이 나왔다. 1857년 창간된 미국의 권위 있는 시사 잡지 <The Atlantic Monthly>는 이 책을 “현대사 연구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책의 핵심 주장은 간결하다. 외부의 힘이 작용해 소련이 붕괴로 치달았다는 상식과 달리, 소련은 내부의 취약성과 모순으로 인해 내파(內破)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선된 공산주의’의 결과

소련은 왜 자멸했을까? 콧킨은 고르바초프의 신념과 개혁에 주목한다. 고르바초프는 요샛말로 공산주의 이념에 ‘진심인’ 지도자였다. 젊은 고르비의 조국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자랑스러운 공산주의 과학기술 강국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년 전, 선배 정치인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비난하고 ‘레닌주의’로의 복귀를 외치며 개혁을 추구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개선된 공산주의’는 결국 자본주의로의 투항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소련 출신 역사가 블라디슬라프 주보크의 2021년도 역작 『Collapse』는 콧킨의 연구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소련이 대내외적으로 받은 압력에 조금 더 무게를 둔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점화된 소련 내 민족주의 운동의 물결 및 레이건 행정부와의 군비경쟁은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던 소련 체제를 안팎에서 짓눌렀다.

신예 역사가 프리츠 바텔의 2022년도 저작 『Triumph of Broken Promises』는 소련의 붕괴 과정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서술을 지구사적으로 혁신하는 쾌거라고 평가할 만하다. 미국과 소련은 물론 서유럽과 동유럽을 포괄하는 이 저서는 우리에게 냉전이 어떻게 서구의 승리로 끝났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를 가독성 높은 서술로 설명해준다. 

냉전사의 분수령, 1973년 석유 파동

바텔에게 냉전사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은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3년이다.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 그전까지 자본주의 서구와 공산주의 동구는 모두 지구적 호황 속에서 자국민에게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정치’를 펼쳤다. 이 흐름이 반전된 계기가 바로 산유국들의 집단행동이었다. 이후 에너지 수급과 비용이 국정의 제일 안건이 되면서 동서 진영은 모두 ‘약속을 어기는 정치’를 펼친다. 경제적 규율, 즉 영구적인 긴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약속을 어기는 정치’가 지배적이었던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부상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은 ‘약속하는 정치’를 추구한 이전 정권을 가혹하게 질타하며 사회와 경제의 관계를 재조직했다. 

한편 제2세계의 ‘약속하는 정치’는 소련의 값싼 석유와 가스로 지탱되던 공산주의의 정당성 그 자체였다. 모스크바와 동유럽 지도자들은 어떻게 공산주의를 유지하면서 사회계약을 재조정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물론 그 고민이 유효하기에는 동유럽이 서구에서 받은 대출의 규모가 너무 컸다. 더 이상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공산주의는 1989~1991년 사이에 무너졌다.

바텔의 서술은 20세기 현대사에서 석유(파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신자유주의의 부상을 재조명하는 흐름을 탁월한 필치로 포괄한다. 필자와 연배가 비슷한 바텔의 책을 읽으면서 30대 중반의 연구자가 생애 첫 저서로 이러한 성과를 내놓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러한 연구자를 대량으로 키워낼 수 있는 서구 역사학계의 힘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쉽게도, 한국과 북한은 냉전의 종식을 탐구하는 경향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한국 연구자들이 냉전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것 아닐까?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
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을 발표했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저주받은 원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이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총서 36권 및 38-39권을 공역했다. 주요 관심사는 냉전사·핵역사·환경기술사·디지털역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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