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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에서 분열로…공산주의 주도권 싸움, 그리고 ‘로맨스’
동반자에서 분열로…공산주의 주도권 싸움, 그리고 ‘로맨스’
  • 우동현
  • 승인 2023.04.2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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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시대, 우리에게 ‘냉전’은 무엇이었나⑤ 중국·소련 관계

중소관계를 협력(~1959)과 갈등(1959~)으로 보는 
학술적 흐름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중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 속에서 
러시아와 사랑에 빠진 중국 혁명가들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미국과 함께 신(新)냉전의 주연이다. 오늘날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중동부 유럽 및 동지중해,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세(勢)를 넓히고 있다. 대한민국 관세청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에도 한국의 수출입 상대국 1위를 고수했다. 한국과 북한의 대(對)중국 전략은 역사적으로 지난한 과제였다.

중국이 이처럼 부강한 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은 냉전의 역할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사 서사에서 중국의 위치는 다소 모호하고 분명치 않다. 특히 1970년대 데탕트(긴장 완화)와 미국과의 관계 회복, 1980년대 개혁개방을 추구하기 이전의 냉전기 중국사는 오류와 실패로 점철돼 있다. 한국전쟁 파병(1950~1953), 대약진운동(1958~1962)과 대기근, 문화대혁명(1966~1976)을 떠올려보라.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이 나온 1956년부터 갈등과 대결로 치달았다. 서구 학계는 중소 분쟁의 원인과 지정학적 함의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원을 투입했다. 동시에 미국은 소련을 압박하는 봉쇄 전략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동반자 관계 설정을 위해 물밑에서 적극적인 교섭을 펼쳐 나갔다. 그 결과, 1972년 2월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아 마오쩌둥 주석과 역사적인 악수를 나누게 된다.

미국은 소련을 압박하는 봉쇄 전략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동반자 관계를 설정한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사 서사에서 중국의 위치는 다소 모호하고 분명치 않다. 사진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아 마오쩌둥 중국 주석과 악수하는 모습이다. 사진=미국 국립아카이브 닉슨 백악관 사진집

냉전의 판도를 바꾼 중소 분쟁

중소 분쟁은 쿠바 미사일 위기(1962), 석유파동(1973), 소련-아프간 전쟁(1979~1989) 등과 함께 냉전의 판도를 바꾼 사건이었다. 스탈린 사후(1953)에 마오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 경제는 그러한 목표를 실현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낙후됐다. 단숨에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환상인 대약진운동의 결과는 처참했다. 여기에 흐루쇼프는 서구와의 평화적 공존을 내세웠다. 마오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제국주의’(자본주의 진영)와 ‘수정주의’(소련)에 대한 투쟁을 선언했다. 소련의 자본·기술 공급이 줄어들자 중국은 인민 동원을 통한 축적에 나선다. 그 참혹한 결과는 중국 당국의 데이터 통제로 아직도 본격적으로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2010년대 전후에 나온 연구들은 양국 문서고 자료를 엄밀히 검토해 중국과 소련의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런 연구에는 다소 관점의 차이가 발견된다. 로렌츠 루티와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전통적인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중소 분쟁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이념적 갈등의 지점들을 부각시킨다.

정치학자들은 양국의 협력을 ‘배움’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낸다. 오스틴 제르실드는 중국인들이 자국에 파견된 소련·동유럽 전문가 집단에게서 받은 미묘한 무시와 차별의 감정, 그리고 중국과 서구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한다.

공산주의 운동 주도권 벌인 중소 ‘냉전’

2017~2018년에는 냉전사 분야의 권위 있는 중국인 학자들이 양국 자료를 검토해 1945~1973년의 중소관계를 두 권의 연구서로 펴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 책은 최고지도자 중심의 외교에 초점을 맞춰 양국 관계를 1959년 이전까지는 동반자 관계로, 그 이후는 분열로 정의했다. 아쉽게도 두 저서는 서사 창출에 별다른 고려가 없어 가독성이 높지 않다. 

이처럼 중소관계를 협력(~1959)과 갈등(1959~)으로 보는 학술적 흐름은 오늘날에도 지배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제레미 프리드먼 교수의 『그림자 냉전』(Shadow Cold War)은 ‘제3세계’ 외교, 나아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소련과 중국의 외교전을 사회주의권의 ‘냉전’으로 풀어낸 역작이다.

그에 따르면, 소련의 ‘반자본주의’ 노선과 중국의 ‘반제국주의’ 노선 사이에서 제3세계는 심정적으로 후자에 끌렸다. 소련은 제3세계 외교에서 중국의 ‘반제’ 메시지와 전략을 차용해 아랍연합공화국(이집트와 시리아), 알제리,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중국의 외교적 도전을 차단했다.

러시아와 사랑에 빠진 중국의 ‘로맨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이스트베이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엘리자베스 맥과이어 교수의 2017년도 저작 『붉은 마음』(Red at Heart)은 ‘로맨스’라는 개념을 통해 20세기 전반부터 냉전기까지의 중소관계사를 풀어낸다. 이 책은 정치사·외교사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중국 혁명가들이 어떻게 러시아 문화와 사랑에 빠졌고, 러시아 여성과 인연을 맺었는지를 들려준다.

이 책에 나오는 중국 혁명가들의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 창카이섹의 아들 장징궈의 부인 장팡량(파이나 바흐레바), 1920년대 후반 중국공산당을 이끈 리리싼의 부인 리샤(엘리자베타 키쉬키나) 등 기존 연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여성 행위자들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각각 프린스턴의 스티븐 콧킨, 시카고의 쉴라 피츠패트릭을 사사한 프리드먼과 맥과이어는 인상적 외국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두 연구자는 중소관계사 연구에 필요한 양국 언어는 물론, 독어·희랍어·서어·포르투갈어(프리드먼), 불어·페르시아어(맥과이어) 등을 구사한다. 냉전사 연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향후 연구가 무척 기대된다.

우동현 한국과학기술원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
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을 발표했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저주받은 원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이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총서 36권 및 38-39권을 공역했다. 주요 관심사는 냉전사, 핵역사, 환경기술사, 디지털역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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