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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간의 지성만이 환경을 구한다 
그래도, 인간의 지성만이 환경을 구한다 
  • 최승우
  • 승인 2022.09.27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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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⑲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28일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가 「동양의 환경철학」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0강은 도승연 광운대 교수(인제니움학부)의 「자유와 근대 감시 체계」, 제21강은 김응빈 연세대 교수(시스템생물학과)의 「생태계의 경쟁과 공생」, 제22강은 김대수 카이스트 교수(생명과학)의 「뇌과학에서 자유의지」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인간중심주의의 관점이 자연 세계의 약탈과 남획을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면,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생태중심주의자들은 인간을 자연 세계의 평등한 일원으로 복속시킴으로써 진화를 통해 획득한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무장 해제시키려고 한다."

20세기 중후반에 들어,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 직면해 생태주의자들은 근대 과학·기술 문명이 전제로 하고 있는 인간관과 자연관 그리고 인간-자연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기 위해 도가와 불교 등으로 대변되는 동양 사상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생태주의적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에게 도가 사상은 일체의 인위적 행위 방식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촉구하는 반문명론적 계시록으로 재해석돼왔다. 특히 『노자』, 『장자』의 ‘무위·자연’ 사상은 근대 과학·기술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자연과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양약으로 간주됐다. 

프랭클린 앤드 마샬대 교수를 역임했던 존 노스는 도가 사상을 과학·기술문명과 극단적인 대비의 각도에서 파악한다. 도가 사상이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자연의 모든 존재들을 평등한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하는 데 반해, 서구인들은 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 서서 자연을 정복하고 남획함으로써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근대가 자연계를 탈마법화시켰다면, 생태중심주의는 자연계를 재마법화시키고 재신비화시킨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또한 도가에서는 인위적 기술을 거부하고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데 비해, 서구인들은 인위적 기술을 개발하여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사회생태론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머레이 북친은 심층생태주의 담론이 애매모호한 신비주의에 기생해 상업주의화하거나 정치적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을 비판해왔다. 그는 심층생태주의가 도가·불교 등의 동양 사상과 결합하여 조야하고 모호한 신비주의의 노선으로 흐르는 경향을 비판한다.

서구의 동양 사상 신봉자들은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양 사상의 모호성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신의 자가당착적인 주장을 지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동양 현자들의 은유를 차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호성은 결코 장점이 될 수 없다. 생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명료화와 해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태계 안에서 유일하게 고도의 지성을 소유하고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간의 지위와 능력을 무턱대고 폄훼하는 일은 그다지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근대이래 과도한 인간중심주의가 환경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환경 문제의 이해와 해결 또한 철저하게 인간의 지성에 의해 가능하며,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노력 또한 인간과 자연의 균형 잡힌 조율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과도한 인간중심주의는 ‘약화된 인간중심주의’로 변모할 필요가 있으며, 과도한 생태중심주의 또한 ‘약화된 생태중심주의’로 바뀔 필요가 있다.

인간도 생태계 안에서 여러 구성원 중의 하나임을 인정하면서, 여러 구성원 가운데 가장 지적으로 우월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면, 극단적으로 치닫던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는 일단 화해의 물꼬를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활동에 영향받지 않는 원시적인 자연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빙하의 극점이나 대양의 심연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야생 동물조차도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과 개입을 통하여 멸종을 모면하고 종을 보존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이제 1차 자연에 속한 야생 동물의 생존은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결정과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인간중심주의의 관점이 자연 세계의 약탈과 남획을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면,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생태중심주의자들은 인간을 자연 세계의 평등한 일원으로 복속시킴으로써 진화를 통해 획득한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무장 해제시키려고 한다. 

특히 생태중심주의자들에게 인간의 지위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러한 경향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인간을 가이아의 몸에 기생하는 ‘지적 벼룩’ 정도로만 인정한다. 생태중심주의는 인간에 대해 지나친 혐오감과 극도의 적개심을 가지고 반문명과 반기술주의를 주장한다. 

근대가 자연계를 탈마법화시켰다면, 생태중심주의는 자연계를 재마법화시키고 재신비화시킨다. 심층생태주의는 도가·불교·구루·요기들의 직관으로부터 메시지를 이끌어온다. 동양의 종교를 캘리포니아식 신비주의로 변형해 수사학적으로 재포장한 심층생태주의는 100만 년이 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성취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무화해버리는 조야한 영성주의이다.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는 서로 너무나 반대 방향으로 치달린다. 하나는 인간이 계속 생태계에 대한 성공적인 약탈자로 남기를 원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이성과 도덕적 능력을 버리고 새나 짐승과 함께 뒹굴기를 원하는 입장이다. 

주자는 이 양극단의 중간에 선다. 주자는 우리에게 극단적인 인간중심주의를 버리고 인간이 우주 대가정의 여러 자식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도록 권유하는 한편, 극단적인 생태중심주의를 버리고 인간이 우주 대가정의 능력 있고 책임 있는 적장자로서 천·지를 도와 다른 존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 단순히 과학·기술적 지식이 아닌 도덕·과학적 지식은 이러한 공진화의 가능성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다. 『중용』에서 ‘타존재를 이루어주는 일[成物]’을 인간의 지성적 능력[知]과 연관시킨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우주 대가정 안에서 참여적 공진화의 주체로 나설 것을 제안하는 유학의 공동체적 생태 윤리는 극단적으로 치닫는 두 노선에 비해 한결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해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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