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성폭력 근절 위한 노조의 책무
대학 내 성폭력 근절 위한 노조의 책무
  • 정혜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 
  • 승인 2018.04.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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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의 一聲

[편집자주] 대학원생들이 신음하고 있다. 학문적 열망을 품에 안고 대학원 문을 두드린 대학원생들은 불안한 미래와 고달픈 현실에 제 공부를 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교수신문>은 대학원 사회의 부조리한 관행을 고발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10회에 걸쳐 칼럼을 연재한다.
   

                 <칼럼 연재 순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위계형 성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뉴스타파>에 의하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대 중앙일간지(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경향)가 보도한 성범죄 기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가해자는 대학 교수(53건)이다. 대학 내 성범죄의 대다수는 교수-학생, 선배-후배 등의 ‘위계관계’에서 발생한다. 대학에 만연한 위계형 성범죄를 어떻게 근절시킬 것인가? 어떻게 탈위계적이고 성평등한 대학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여기서는 ①대학원 사회에서 학생 자치 및 연대관계 구축의 악조건과 ②성폭력 피해자가 학습·연구·노동권 침해라는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짚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원생노조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려 하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피해자가 위계형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하거나 신고해 합당한 조치 및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과정을 밟기 위해서는 대학을 지배하는 위계관계를 가로지를 ‘연대관계’가 동료들 사이에 형성돼야 한다. 신원을 보호받는 것은 물론, 대응 과정에서 섬세하게 소통할 동료가 존재할 때 피해자는 가해자 및 폭력의 조건들과 싸울 수 있다. 동시에 그러한 싸움이야말로 동료와의 연대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대학 내 위계형 성범죄에 대한 대응은 위계관계를 넘어설 연대관계를 만들어 가는 실천적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에 연대는 쉴 새 없이 흔들리기도 하고 순식간에 신뢰가 깨어지기도 한다. 결코 녹록치 않지만 여학생회/여학생위원회 같은 상설 기구가 존재한다면 설령 위기를 겪더라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공동체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학과 학생회는 물론, 총학생회조차 없는 경우가 적잖은 오늘날 한국의 대학원에서 학생 자치 기구를 설립 및 운영하고 반성폭력내규를 제정, 이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여기서 당사자 조직으로서 대학원생노조의 역할이 요구된다.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 당사자의 대학 개혁을 위한 지속적인 개입의 토대이다.

한편 위계형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학내에서 피해자가 처해있는 학업·연구·노동 여건 또한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권력은 교차적으로 작동하며, 위계형 성범죄 가해자는 피해자의 학위와 노동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력을 가진다. 대학(원)생들의 (연구)노동은 교수의 호의에 기대는 종속적인 환경에서 수행되고, 위계형 성폭력은 이와 같은 환경에 의해 조장·비호된다. 피해자가 자신의 학위나 경제 활동에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실제로 성폭력을 공론화 한 피해자가 연구와 노동의 영역에서 배제 당하는 2차 피해가 만연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처럼 (특히 피해 당사자의) 학습·연구·노동권 보장은 위계형 성폭력 근절의 요건임에도 학내 인권센터나 성평등센터/상담소 등의 기구에는 상기 제 권리의 보장을 위한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학 내에 대학(원)생들의 학습·연구·노동권을 보장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그러한 방식의 2차 피해로부터 보호·구제하는 시스템은 부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 내 위계형 성폭력 근절을 위해 대학원생노조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피해자가 학습·연구·노동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심리 상담 기능이나 법적/의료적 지원은 외부 전문기관 혹은 유관기관에서 담당하되 대학원생노조는 그러한 1·2차 피해를 유발하고 지탱하는 대학 내 악조건, 즉 비대칭적이고 불평등한 학습·연구·노동의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성폭력 고발 당사자를 공동체에서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펜스룰’이 확산되고 있는 요즘,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가 학습·연구·노동 환경에서 차별을 겪지 않도록 지원하는 일에 특히 심혈을 기울이려 한다.

미투 운동은 지금 대학의 문화를 바꾸고 있으며 제도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대학원생노조의 궁극적인 지향은 대학원생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원생들이 2차 피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대학 공동체에서 학습·연구·노동의 권리를 보장받고 자기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과 맞닿아 있다. 그로써 위계관계를 가로지르는 평등한 관계가 대학에 깊이 뿌리 내리고 널리 확장되도록 대학원생노조가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정혜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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