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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하고 싶었더라
내가 뭘 하고 싶었더라
  • 이장환 前 서울대 대학원생
  • 승인 2018.05.2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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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의 一聲 ⑤

“그래도 너는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실험실 생활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던 나에게 한 친구가 말했다. 지금껏 내 말에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주변의 얼굴들이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바뀐 것을 보니 다들 내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속으로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친구와 취업문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고 싶은 거 하는 네가 부럽다고.

일찌감치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 나는 전공시험 공부를 더 할 수 있었고, 동기들이 졸업하고 사회로 뿔뿔이 흩어질 때 학교에 남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남들은 전쟁터 같은 사회 속에서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 동안 이곳 대학원에서 평화롭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고, 먹고 살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루 종일 해내고 겨우 퇴근한 그들의 눈에는 나의 넋두리가 아직 사회경험을 해보지 못한, 세상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철부지의 투정으로만 보일지 모른다. 직장과 학교를 동시에 다니고 주말과 공휴일 구분도 없을뿐더러 걸핏하면 실험하느라 밤을 새야한다는, 이제는 너무 많이 말해서 뻔해진 말을 되풀이하기도 싫었고,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긍정적인 말로 위로해주려는 것임을 알기에 그저 웃으며 수긍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학원 생활을 그저 대학생활의 연장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생활

일반적으로 이공계 대학원생은 지도교수가 있는 실험실에 소속돼 있어야 한다. 책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실질적인 기술이나 현장 지식 습득을 위한 공간이라는 말은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졸업 필수 요건인 논문을 작성하려면 논문에 들어갈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장비와 실험 기술을 보유한 실험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실험을 디자인하는 능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리 만무하고, 설령 실험을 혼자서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실험 장소나 장비, 시약 등을 빌려주기만 하는 곳은 드물기에 대학원생은 입학과 동시에, 많은 경우는 그 이전부터 실험실에 소속돼 그 일원으로서 생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실험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고 실험하게 될 연구주제가 주어졌다. 연구 주제가 빠르게 정해질수록 졸업 때까지 남은 시간을 많이 벌 수 있으므로 그만큼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많아지기 때문에 석사 2학기 차, 늦으면 3,4학기 차에 정해지기도 하는 졸업논문 주제를 이렇게 빨리 받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으며 분야도 마침 내가 관심이 있었던 부분이었기에 비록 내가 선택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의욕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었다. 게다가 경험이 많은 박사님께서 1;1로 지도해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실험실 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며 정신없이 실험하다 중간 중간 수업을 들으러 가고, 돌아와서 밀린 실험을 하느라 새벽까지 실험실에 남아있기도 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실험실에 속한 대학원생은 연구비의 일정 금액을 인건비로 지원받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인건비 금액은 실험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개개인의 참여 정도에 의거해 책정된다. 프로젝트란 정부 주도의 국가정책 관련 또는 기업과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연구과제 등을 말하며 실질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지원되는 연구비로 실험실 살림(인건비, 시약 구입, 장비 설치 등)을 꾸려나가게 된다. 문제는 ‘참여도’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며 그 것을 결정하는 지도교수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참여도를 결정하는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지만 구성원간 도움 관계가 얽혀있는 실험실 특성상 몇 퍼센트의 차이를 구분하는 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참여도에 따라 금액을 책정해야 하지만 보통 대학원생의 인건비는 ‘석사 40만원, 박사 4학기까지 60만원, 졸업할때까지 80만원’ 등 미리 정해져 있고 그 금액에 맞춰 참여도가 설정된다. 문서상의 참여도와는 관계없이 일정한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은 좋게 보면 최저임금이 보장된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참여도와는 상관없이 대학원생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자유이용권인 셈이다. 그렇다고 인건비를 받지 않고 일을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교보다 높은 등록금을 충당해야 한다는 물질적인 이유는 둘째치더라도, 실험실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 실험실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기에 졸업을 코앞에 앞두고 온전히 자신의 졸업논문에만 집중해야 하는 학생이 아니라면(그것도 지도교수님이 배려해주어야 가능한 상황이지만) 당연히 참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대학원 프로젝트의 실상과 좌절

실험실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나도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실험실에서 참여하는 국가정책 과제와 관련된 일이었다. 원래는 실험실 선배가 하던 일을 졸업 후 내가 물려받게 된 것이었는데 참가 교수님만 대여섯 명이 넘는 작지 않은 규모의 프로젝트였기에 중압감과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더군다나 전에 그 선배에게 연구 실적이 시원찮았을 경우 매 분기마다 열리는 발표회에서 어떠한 불상사를 겪게 되는지 전해 들었기에 더욱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가게 됐다. 실험 자체는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하거나 많은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단순 노동이 대부분이었기에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단순 노동이 주를 이루는 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실험실 막내라서 메인으로 진행하는 실험 외에도 잡일을 도맡아 해야 했던 생활이 더욱 빡빡해지기 시작했다. 한층 정신없는 생활 속에 두 프로젝트의 실험을 혼동해 하루 종일 했던 실험을 날려버린 일도 있었고 시간 조정을 잘 못해 실험실에서 밤을 새는 날들이 많아졌다.

결과에 대한 방향성을 어느 정도 열어두기도 하는 개인논문 과제와는 달리 연구비 수주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는 특정 방향의 결과를 미리 정해두고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험 결과가 예상대로 잘 나오지 않는 경우 예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동일한 실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논문 과제라면 실험 기간이 길어져도 졸업이 늦어지는 정도의 개인적인 불이익만 감수하면 되지만 여러 실험실에서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합동 프로젝트의 경우 나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 진행에 발목을 잡을 수 있기에 정해진 기간 안에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능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나의 논문과제를 위한 실험은 계속해서 미뤄지게 됐다. 미뤄진 과제 또한 아예 놓아버릴 수 없기에 빡빡한 시간 속에 잠을 줄여가며 실험을 진행했고, 여유 없이 급하게 진행된 실험은 실험대로 좋은 결과를 보기가 힘들었다. 매주 진행되는 실험실 내 개인과제 현황 발표에서 개인과제 진행의 느린 속도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고,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매번 말해도 바뀌지가 않는다는 지도교수님의 질책을 들을 때마다 너무 괴로웠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원하는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자존감 하락이었다. 또다시 실패한 결과를 앞에 두고 다음날 발표 때 또다시 꾸중을 들을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고, 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에 다시 실험을 시작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의욕은 점점 떨어졌으며 몇 달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그리고 다음 분기 발표 때 다행스럽게도 어찌어찌 낸 결과를 발표할 수 있게 돼 ‘불상사’를 겪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몇 달간 몸과 마음을 고생시키며 만들어낸 실험 결과 속에 뿌듯함이란 전혀 들어있지 않았고, 마치 숙제검사 시간에 선생님께 혼나지 않은 듯한 안도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실험하는 일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내가 했던 일은 논문과제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실험이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 거라는 위안을 스스로 할 수나 있었지만,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가 많은 다른 실험실 선배를 볼 때마다 개인 연구와 상관없는 실험 때문에 수시로 밤을 새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안쓰러웠다. 

그래서 다시, “내가 뭘하고 싶었더라”

혹자가 말하듯 이것을 ‘갑질’에 의한 피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험실 운영을 위해서는 실험실 내 누군가는 해야 했던 일이었고, 내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나에게 그 일이 맡겨진 것이다. 또한 지도교수님 개인의 명예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닌 내가 속한 실험실을 위한 프로젝트였기에 보는 관점에 따라 잡무로도 보일 수 있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더라도 직접적인 불만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큰 건 어쩔 수 없다. 만약 이 일을 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반만이라도 개인 과제에 조금 더 투자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일찍 나오지 않았을까. 내 실험 스킬이 지금보다는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현재 내 마음보다는 더 애정을 갖고 의욕에 차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대학원생 대부분의 현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공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은, 혹은 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학생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는 정말 실험이 재미있어서, 또 누구는 미래를 위해 아득바득 버텨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내 개인적인 일화를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꿈을 좇아 이곳에 온 많은 사람들이 마냥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아마 이런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었기에 남들은 다 견디는 이 생활을 버티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동기들과 헤어져 다시 실험실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와는 달리 집으로 향하고 있을 그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살아왔던 결과가 고작 퇴근 조금 일찍 하고 주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부러워하는 거라니. 자조적인 쓴웃음이 실룩 흘러나왔다.

 

이장환 前 서울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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