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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당신(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 김민섭 작가
  • 승인 2018.05.14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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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의 一聲④

대학원생은 학생인가 노동자인가, 하는 질문은 이제 해묵은 논쟁이 되었다. 그들은 어느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11월에 발표한 ‘대학원생의 연구환경 실태조사’에서는 60% 이상의 대학원생들이 자신을 ‘학생근로자’라고 이중적으로 규정해냈다. 그들을 학생이라든가 노동자라든가 그 무엇으로만 규정하려는 시도는 온당치 않다. 대학원생 조교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다.

내가 아는 많은 대학원생들이 ‘조교’라는 직함을 가지고 대학이나 대학과 연계된 여러 학회, 연구소에서 노동한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정식으로 일하기도 하지만 과사무실과 같은 작은 단위로 갈수록 주먹구구식이 된다. 예컨대, Y대학교 특정 단과대의 여러 학과는 ‘조교장 제도’라는 것을 운영한다. 대학원생 중 등록금의 180~260만원 정도를 감면 받는 TA장학금 수혜 대상자들이 학과 사무실 조교로 일하고, 그 중 박사과정생 한 명이 조교장으로 선발된다. 조교장은 ‘9to5+a’로 교직원이 없는 사무실에 상주하며 거의 모든 사무를 챙긴다. 그들이 단과대학으로부터 받는 업무 메일을 보면, “2018학년도 대외평가 관련 자료 요청”이라든가, “시간표 및 수강지침 원고 제출 의뢰”, “학·처장회의 자료 요청”, “교수 수양회 참가신청서 요청”과 같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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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의 사전적 정의는 “대학의 교수 밑에서 연구와 사무를 돕는 직위”다. 그래서 ‘助’(도울 조)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조교 노동을, 특히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이들의 노동을 보조적 활동으로 전제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대학은 그들의 노동이 없다면 존립할 수 없는 기관이 됐다. 

그럼에도, 대학은 대학원생 조교의 ‘노동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굳이 노동자로 규정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여러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대학들 역시 대학원생 조교들을 학생으로만 규정해왔다.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2004년에 “조교들은 피고용인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선적으로 학생들이다. 조교들은 기본적으로 학교와 경제적인 관계보다는 교육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며 대학원생의 노동을 ‘교육적 관계’에 편입시킨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생들의 노조 결성 청원에 대해서는 “미국 사립대학의 조교들도 연방 노동법에 따라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3대1로 이를 수용했다. 그에 따르면 교육과 노동은 결국 분리돼야 할 대상이다. 

올해 3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대학원생 제도가 생긴 이래 가장 상징적이고 급진적인 사건 중 하나다. 그 당사자들이 직접 “우리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다”고 선언하고 사용자인 대학 측과의 단체교섭이 가능한 조직체를 만든 것이다. 2016년 12월에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이 총장과 이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각 대학은 기존의 조교 TO를 대폭 줄이거나 그들을 TA장학생으로 대체하며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원생 당사자들에게는 다시 폭력이자 희생의 강요로 가서 닿는다. 그 조교 노동을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 온 이들이 있는 것이다. 약자는 그 구조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에 약자다. 생존을 위한 현상유지를 주장하면서 구조를 수호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약자다. 한국의 대학은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대학원생을 구조적으로 착취해 왔다. 이 대목에서는 그간 대학에서 편안히 연구하고 강의해 온 모두가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의 소진과 희생으로 대학은 지금의 대학일 수 있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출범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이 글을 읽은 대학의 연구자들께서 조합원이나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주시기를 제안 드린다. 가입방법은 간단하다. 홈페이지 “https://graduunion.or.kr”에서 가입원서를 다운 받고 자필로 서명해 사진을 찍은 뒤, ‘카톡 플러스에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을 검색해 전송하면 된다. 조합원/후원자의 이름과 소속 등 신상정보는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김민섭 작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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