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2:00 (토)
엄벌주의로 ‘이상동기 범죄’를 줄일 수 있을까
엄벌주의로 ‘이상동기 범죄’를 줄일 수 있을까
  • 이정원
  • 승인 2023.09.19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일곱 번째 주제 ‘법에도 마음이 있다’① 이상동기 범죄
이정원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AI시대의 심리학, 웰에이징 시대에 이어 일곱 번째 주제로 ‘법에도 마음이 있다’를 다룬다. 이정원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의 첫 번째 글이다.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대중매체의 경쟁적인 보도에서는 
범죄자의 개인사나 엽기적인 범행 수법, 
사건 현장의 영상이 여과 없이 자극적으로 보도되는 
일화적 프레임의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대중은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이상동기 범죄(일명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3월 3일 죽전역에서는 한 여성이 가방에서 흉기를 꺼내 난동을 피워서 시민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 8월 3일 서현역에서는 한 남성이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한 뒤 흉기 난동을 부려 총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총 18건의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했다.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

범죄자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를 가지고 무작위로 대상을 선택해 저지르는 범죄를 묻지마 범죄·무차별 범죄·무동기 범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용어는 ‘묻지마 범죄’다. 사실 이는 미디어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2000년대 초반 해당 유형의 범죄를 명명할 용어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하자, 미디어는 이를 ‘묻지마 범죄’라는 다소 황당한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 현재까지 관용적으로 굳어져버렸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묻지 말라는 것인가? 바로 범죄의 동기를 묻지 말라는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범죄는 그 범죄자의 뚜렷한 동기(돈·원한·명성 등)에 의해 발생한다. 그러나 이상동기 범죄의 경우에는 범죄의 동기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명확한 동기 없이 범행이 이뤄지다보니 피해자가 무차별적으로 선택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일반적인 살인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면식이 있는 관계에서 뚜렷한 원한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상동기에 의한 살인 범죄에서는 이러한 기존 살인 범죄의 특성이 적용되지 않는다. 학계와 사법기관을 중심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에 의해 무차별로 대상을 선택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묻지마 범죄가 아닌 ‘이상동기 범죄’로 명명하고 있다. 

왕이 될 운명으로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는 예언만으로 베틀레헴의 모든 아이를 살해했던 유대의 왕 헤롯. 오늘날에는 도처에 헤롯이 있는 것 같다. 그림은 피터 폴 루벤스의 「유아대학살」(Massacre of the Innocents), 판넬에 유채, 1637. 

왜 우리는 두려워 하는가

보라색 선글라스를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보라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사회적 이슈를 언론이 어떤 프레임으로 보도하는지에 따라 이해하게 된다. 특히 범죄 사건을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춰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주제적 프레임으로 보도할 때보다, 범죄 수법이나 관련 인물에 초점을 맞춘 일화적 프레임으로 보도하는 경우에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은 커지게 된다.

특히 이상동기 범죄는 대중매체의 보도가 경쟁적으로 이뤄지다보니, 그 범죄자의 개인사나 엽기적인 범행 수법, 사건 현장의 영상을 여과 없이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일화적 프레임의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이를 소비하는 대중은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또한 뚜렷한 동기에 의해 일어나는 전통적 범죄와 달리 이상동기 범죄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에 의한 불특정 다수 대상의 범행이 그 특징이다보니 사전 예방이 어렵다. 예를 들어 강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순찰을 강화하고 CCTV를 증설하는 등 환경 설계를 통해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이상동기 범죄의 경우에는 체계적 예방 조치가 쉽지 않다. 이상동기 범죄자 중에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지역사회 기반의 정신질환자 관리가 하나의 예방 조치로 이뤄지고 있지만, 일반 시민의 두려움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거운 처벌?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하면서 최근에는 이상동기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을 고려해 얼마 전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과연 엄벌주의로 이상동기 범죄 발생을 감소시킬 수 있을까? 실제로 강력한 처벌이 가지고 오는 범죄 억제 효과에 대해 전문가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특히 이상동기 범죄는 범죄자가 자신의 분노를 분출하는 격정범죄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자신이 받게 될 손실(즉 처벌)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상동기 범죄의 특성을 고려하면 엄벌주의를 통한 범죄 억제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광범위한 분석과 연구가 첫걸음

이상동기 범죄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총기 소지가 허용된 미국의 경우 이상동기 범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대만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이상동기 범죄는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상동기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체계적 연구를 통해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다행히 최근 경찰청에서는 이상동기 범죄 대응 TF팀을 구성해, 올해 상반기에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 18건을 대상으로 피의자 및 범행 수법 등에서의 공통점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이상동기 범죄의 피의자는 대체로 전과가 있으며(13명), 성별이 남성(16명)이라는 공통점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해당 연구는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내외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분석 연구가 조속히 시행돼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체계적인 예방이 이뤄지고, 일반인의 두려움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이정원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미국 뉴욕시립대 존 제이 형사사법대학에서 법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에서 범죄심리학·법심리학 등을 강의 중이다. 주로 목격자 식별, 유죄오판, 사건 판단에서의 고정관념 효과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