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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빠진 자녀들, 유전 탓일까 환경 탓일까
게임에 빠진 자녀들, 유전 탓일까 환경 탓일까
  • 김주은
  • 승인 2023.03.09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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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네 번째 주제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① 게임 중독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에 이어 네 번째 주제로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시각을 4회에 걸쳐 싣는다. 중독연구자 김주은 충남대 교수(심리학과)의 첫 번째 글이다.   

부모의 강제적 태도에 대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게임 세계에서 자유와 보상을 누리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욕구를 자극해서, 
결국 게임 과의존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아이와의 협상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교수로 사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누군가의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최근에 ‘알쓸인잡’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책 소개를 하는 것을 시청하던 중 잘 찾아오지 않는(!) 그 느낌이 찾아왔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의 주인공인 제임스 팰런은 자신의 뇌 활동과 유전자 타입이 사이코패스와 비슷하며, 심지어 자신의 조상들 중에 범죄자, 살인자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는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어떻게 이런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도 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되지 않고 좋은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걸까?” 

되짚어보니 자신의 사이코패스적 성향과 행동(실제로 생물학적 힘은 크긴 컸다. 책을 읽어보니 ‘알쓸인잡’에서 말했던 것보다 많은 못된 행동을 이미 하고 있었다.)을 미리 알아채고 최대한 그 성향을 누르면서 살 수 있도록 교육하고 양육한 부모가 있었다. 부모는 제임스 팰런의 공감능력과 친사회적 행동을 키우기위해 특별한 사랑을 주고 또 양로원에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추가적인 노력을 지속적으로 한 것이다. 결국 유전과 본성의 힘을 환경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도박 중독으로 유명했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 그는 기괴한 화풍으로 인간 내면의 극단적인 암울함을 표현했다. 프란시스 베이컨,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서 출발한 습작」, 1953년, 캔버스에 유채. 

‘게임 과의존’ 일으키는 유전자와 환경의 힘

우리 몸의 2만 개가 넘는 유전자가 우리의 행동, 성향을 코딩하는 바탕을 이룬다. 그 중에 하나의 유전자를 골라내서 “이게 문제에요”라고 단정 짓기는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독 행동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연구되는 후보 유전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DRD2 같은 도파민 수용체의 기능을 좌우하는 유전자이다.

DRD2 유전자 타입 중 도파민 수용체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형질(DRD2 C967T T 형질과 Taq1 A1 형질)을 가지고 있으면 게임 과의존뿐만 아니라 인터넷 과의존, 알코올 남용을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유전자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유전자의 힘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어야 유전형이 행동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학생으로 하여금 그러한 유전자의 발현을 자극하여 결국 집에 콕 틀어박혀서 게임만 매일 하게 만드는 환경적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으로는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이다. 특별히 중독 행동에 취약한 유전자 형태를 가진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런 유전자 형태를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게임과 같은 대상에 몰두하여 스트레스를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클 수 있다. 

부모와 불안정한 애착의 연쇄 효과
  
어떻게 보면 게임도 애착의 대상이 되는 것인데 쉬는 시간에 머리를 식히는 정도가 아닌, 마치 24시간 연인과 붙어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게임에 매 순간 빠져 살아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극심한 게임에 대한 애착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 보면, 부모와의 불안정한 애착이 친구와의 애착 형성에 어려움을 일으키고, 그것이 게임 과의존으로 이어지는 연쇄효과에서 비롯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부모와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다는 것은 성장하는 시기에 주양육자와의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를 가지지 못하고, 가족 구성원의 존경이나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정한 부모 애착이 아이의 감정 조절 능력의 약화로 이어진다면(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인 기술의 발달이 더디어져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 이럴 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게임과 같은 가상현실 세계는 오히려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 안정감을 선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게임이 문제가 아니다. 게임은 오히려 자기 역할을 잘하고 있다. 오히려 컴퓨터를 없애고 게임을 못하게 하고 있는 부모가 그만큼 자녀와의 정서적 유대감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애착 형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자녀들은 게임을 통해 편안함을 얻기도 한다. 사진=픽사베이

자녀의 행동을 모니터링할 때 일방적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게임을 아예 못하게 한다거나 컴퓨터나 핸드폰을 빼앗는 등 엄격한 행동 절제 규칙을 세워서 자녀에게 강요할 경우, 오히려 아이는 자신의 결정권에 대해 심한 침해를 느낄 수 있다.

부모의 강제적 태도에 대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게임 세계에서 자유와 보상을 누리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욕구를 자극해서, 결국 게임 과의존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아이와의 협상이 필요하다. 그렇다. 부모는 협상의 달인이 돼야 한다. 나와 아이가 둘 다 적절히 만족할 수 있는 그 선을 찾아야 한다. 

‘게임 과의존’, 심리치료 효과는 있을까 

나는 부모이면서 심리치료자이기 때문에 특정 치료가 해당 증상이나 장애의 근거기반 치료인지, 어떤 치료가 가장 효과적인지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국내외에 출판된 17편의 게임 과의존 심리치료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청소년들에게는 개인의 행동과 감정, 그리고 생각과 감정의 고리를 밝혀내서 게임 과의존을 일으키는 행동 패턴과 생각의 습관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인지행동치료가 효과가 있다. 또한 가족치료를 통해 청소년 자녀의 게임 과의존 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족 간의 대화 방법, 집안의 행동 규칙 등을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인에게는 인지행동치료와 함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마련해주고, 신체적·심리적 긴장 상태를 낮춰주는 마인드풀니스 치료법이 효과적이다. 성인기의 삶에서 느끼는 무게와 책임, 긴장과 스트레스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비적응적인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현실에서 벗어나서 게임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호흡과 이완 훈련, 생각의 고리를 끊고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훈련을 한다면,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대처하거나 과도한 수준으로 게임 세계로 회피하는 충동을 줄일 수 있다.

나는 8개월쯤 전부터 온라인 명상 회원권을 끊어서 아침저녁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줌으로 실시간 명상을 하고 있다. 나는 게임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일부 중독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불안도 낮추고 중독도 예방하도록 나름대로의 방법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결국 나는 나를 연구하고 있나 싶다. 부모로서, 치료자로서 쓸 수 있는 방법들이 궁금한가보다.  

김주은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임상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시라큐스대에서 임상심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충남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중이며 물질중독에 대한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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