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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겪는 노화, ‘마음의 준비’에 관하여
누구나 겪는 노화, ‘마음의 준비’에 관하여
  • 정안숙
  • 승인 2023.08.2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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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여섯 번째 주제 ‘웰에이징 시대’③ 
정안숙 드폴대 심리학과 교수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AI시대의 심리학에 이어 여섯 번째 주제로 ‘웰에이징 시대’를 다룬다. 정안숙 미국 드폴대 교수(심리학과)의 세 번째 글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기만 하면 
사회적 연결이 잘 되어 있을수록 
노년이 건강하다는 연구는 차고 넘친다.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 공공의 안전망, 살아온 인생에 대한 축하, 
시설 신세 지지 않고 나 살던 데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은 왜 여전히 개인의 몫인가.

나의 어머니는 12년 전 처음으로 암을 앓으셨다. 당시 66세. 그래도 기초 체력이 있으셨던 분이라, 종양 부위를 절제해내고 그 자리에 피부이식도 해 넣고, 나머지는 방사선으로 치료 과정을 거쳤다. 그 후 10년간, 삶의 질에 중차대한 타협이 있었어도, 이동력과 의사소통 부분에서 아직 당당한 60대로, 힘찬 어머니로 든든히 자리를 지키셨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 한중간인 2021년 여름에 두 번째 암이 재발했다. 12년 전과 위치가 너무 유사하고, 연세 76세에 지난 10년간 누적된 영양부족 및 골다공증 진행으로 이제 수술이 불가해졌다. 방사선을 해도 항암을 해도, 없어지기를 바라는 종양은 지독하게 살아남고, 몸만 더 망가지셨다. 항암부작용 시기에 낙상으로 인한 골절과 수술까지 겪으시고 나니 종전 체중의 절반이 되는 데에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신의 존엄을 지켜내신 어머니

12년 전, 혀에 자란 암을 제거하는 수술 직전에 “암을 조금 남겨놔도 좋으니 (노래할 수 있게) 성대는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의료진을 놀라게 했던 어머니께서 이제는, 턱에 구멍을 내고 입안으로까지 뻗친 종양 때문에 예/아니오 질문에 겨우 답하는 상태가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에도 한 시간이 걸리는 체력 상태이다.

그런데도,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은 잠들어 있다가, 깨어있는 4시간 동안 진통제와 유동식 영양보조제를 드시고 뒷정리를 하겠다는 나를 내쫓고 속옷 세탁을 하신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당신의 존엄을 손수 지켜내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진즉에 연명치료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집에서 출혈이 반복되자 입원을 원했다. 입 안팎으로 자라 이제는 호흡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른 이 종양 덩어리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어한다. 외과적으로는 현재 가능하지 않은 접근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거부하는 연명치료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철저하게 ‘신 앞에 선 단독자’를 경험하고 있는 어머니를 위한다면, 가족으로서의 나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가.

죽음과 가까워진 노인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캔버스에 오일. 

삶의 포기와 의지의 공존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에 대한 의료진 및 가족을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로 인정한 판례)과 2009년 김 할머니 사건(평소 본인의 연명치료 거부 의사에 근거한 가족의 요청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 판례)이 촉발제가 되어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고,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돼 왔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려면,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이 동의하는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서 환자 또는 가족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애미’가 자식한테 도움도 못 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병실만 차지하는 말년은 싫다던 어머니의 현재 기력 상태로 봐서는, 사망에 임박했고 연명의료 거부 의사가 이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속옷을 손세탁하는 그 고집이나 눈에 보이는 종양을 떼어내고 싶다는 바람에서는 삶의 의지가 확인되는 것도 같다. 그럼 이 둘은 가족보호자의 상충되는 해석인가, 당사자의 존엄을 위한 본심인가. 우리의 ‘마음의 준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노인은 유언을 남기거나,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를 마련하고 장지를 미리 정해놓음으로써 당신의 마지막에 대해 준비를 하기도 한다.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 의사소통의 많은 부분을 상황에 의존하는 문화)인 우리 문화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더 좋겠지만, 사실 말해도 잘 몰라주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 

그러니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최선으로, 공동체심리학에서 말하는 임파워먼트면 어떨까. 미국의 장례식은 ‘인생 축하(celebration of life)’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를 장례 시점이 아닌, 살아계신 동안 해보는 것으로서 말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생에 대해 ‘잘 사셨다’고 인정해드리고 치하하기. 좀 더 시간이 된다면 구술생애사적인 접근으로 자서전이나 사진첩같은 기록을 남기고 기념하기. 남겨진 시간 동안 가족·지인과의 좋은 관계를 한번 더 기억하기. 

노화는 공동체 모두가 겪는 공동체의 일이다. 존엄을 지키며 늙어가는 것도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한다. 그림=DALL·E2

말하자면,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로서는 당신의 매순간에 영혼까지 갈아넣었으면서도,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는 왜 그리도 후회가 많은지.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스스로의 지나온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뿌듯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조력하는 데 우리의 정성을 조금 보태보면 어떨까.

부모가 무병장수하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65세 이상 국민의 13% 이상이 암을 경험하고, 10%를 웃도는 숫자가 인지장애를 경험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음의 준비를 내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부모님 세대의 기여를 인정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해보자.

‘내리사랑’의 필연적이지만 불필요한 죄책감에 대해 자녀나 후속 세대로서 할 수 있는 보은을 단리(simple interest)보다는 복리(compound interest)로 접근하자. 굳이 임종 시점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노인의 존엄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운이 좋으면 동시대인의 평균연령 만큼은 늙는다. 우리의 노년이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되는 데 다른 어떤 이유가 더 필요한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기만 하면 사회적 연결이 잘 되어 있을수록 노년이 건강하다는 연구는 차고 넘친다.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 공공의 안전망, 살아온 인생에 대한 축하, 시설 신세 지지 않고 나 살던 데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은 왜 여전히 개인의 몫인가. 약음기 한 다섯 개 끼우고 연주하는 현악기 소리 같은 노년이 내게도 온다면, 악장마다 치열한 카덴차같았을 내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의 준비를, 쓸쓸하게 혼자서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호스피스 간호를 앞두고 있는 나의 어머니 곁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 삶을 찬미하며, 강인하게 끝까지 존엄을 지켜내려는 당신들의 노력에 경탄하며, 우리에게 희로애락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쓴다.

정안숙 드폴대 심리학과 교수
연세대에서 심리학·국어학 학사, 임상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시카고에서 공동체심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가족공동체가 외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고, 저소득가정 및 이민가정, 암·알츠하이머·루게릭 등 중증질환자 가족, 지속가능 노인케어를 위한 지역사회내 가족 지원체계 등을 연구했다. 미국심리학회 공동체심리학 분과의 2023~2025년 연구자상 및 드폴대 2023~2025년 건강문제 지역사회 연결 연구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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