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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오브 클론, 내가 21세기 파우스트를 쓴 이유
킹 오브 클론, 내가 21세기 파우스트를 쓴 이유
  • 김종영
  • 승인 2023.07.10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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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 ⑪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그 황빠는 나의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과학의 세계에서 순종적으로 길러진 절대다수가 
순종적인 글쓰기를 한다. 
그 황빠의 피와 살이 튀는 삶을 
어떻게 순종적인 글쓰기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킹 오브 클론, 황우석. 18년 전 황우석 사태가 불거졌을 때 온 국민은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아직도 당시의 대혼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황우석이 어떻게 전 세계를 속일 수 있었을까? 그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돌연변이였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영혼까지 판 우리 시대의 파우스트였다. 나는 당시 사회학자로서 황우석 사태와 황빠(열렬한 황우석 지지자)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 과학자뿐만 아니라 황우석 지지자를 쫓아다녔다. 

황빠 중의 황빠가 있었다. 그는 북파공작원을 훈련시킨 군인 출신이었다. 나는 인터뷰하기 위해 그에게 연락했다. 그는 나에게 수원의 광교산으로 오라고 했다. 그것도 늦은 오후에. 내 평생 연구를 위해 수백 명을 인터뷰해 봤지만, 산에서의 인터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내가 밤 9시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일러두었다. 

지난달 23일 넷플릭스에 출시된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 : 황우석 박사의 몰락」 이미지다. 획기적인 인간 복제 연구부터 불미스러운 사태에 따른 몰락까지, 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와 황빠를 연구하다

남자의 체구는 작고 깡말랐지만 다부졌고, 약간의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야산의 호수 위로 오후의 태양이 떨어졌다. 황우석 사태 전후로 황빠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을 때 그는 검은색의 HID 요원 복장을 하고 시위에 나타나 경찰을 긴장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황우석 사태를 음모 세력의 공작이라고 여기며 항의의 표시로 북파공작원들 손가락 30개를 절단하여 대통령에게 보내려는 기획으로 청와대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또 다른 황우석 열성 지지자 모 씨의 분신자살로 무산되었다. 

“왜 황빠가 되었습니까?” 그는 제대 후 용역회사를 차려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그는 홀아비로 4살 난 아들을 강하게 키운다는 신념으로 겨울산에서 얼음찜질을 시켰다. 그런데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병이라는 것이 저절로 나을 줄 알아서 병원에 가질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열병으로 고막이 나갔고, 뇌척수에 장애가 생겨서 장애자가 되었죠. 이제 여덟 살밖에 안 됐습니다. 돈이 몇백억이 들어가든 몇천억이 들어가든 저의 전 재산이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가는 세대지만 아기는 앞으로 커가니까요. 우리 아기가 결혼하면 후세가 나올 거고… 아기만이라도 건강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황빠 운동에 올인하게 된 거죠.”

운명의 덫에 걸린 아빠. 아들을 일으켜 세워 아들과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황빠가 된 아빠.   

순종적인 글쓰기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에 한 방 맞았다. 그의 이야기는 도저히 사회과학적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그 충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해답을 준 사람은 나의 대학원 시절 질적연구방법론(질방)을 가르쳤던 세계적인 석학 노만 덴진 교수였다. ‘질방’이라는 세계에서 덴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질방에 대해 수십 권의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우리가 질방 시간에 배운 것은 시·연극·소설과 같은 일종의 예술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거지? 빨리 논문 써서 졸업하고 취직해야 하는데...’ 질방의 초보로서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다.

그것이 덴진 교수가 수십 년 공부한 끝에 도달한 경지였다. 연구가 곧 예술이 되는 경지. 질방의 초보자들이 질방의 최고 경지, 곧 예술을 흉내냈다. 사회학자로서 학계와 대학에 진입하기 위해서 시나 소설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할 필요성도 없었고 그렇게 할 능력도 없었다. 덴진의 학문의 주먹을 나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그 황빠는 나의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순종적인 글쓰기(docile writing). 박사로 훈련받았다는 것은 푸코가 말한 저 훈육(discipline)을 가장 고되고 장기간에 걸쳐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학의 세계에서 순종적인 몸(docile body)으로 길러졌고, 절대다수가 순종적인 글쓰기를 한다.

그 황빠의 피와 살이 튀는 삶을 어떻게 순종적인 글쓰기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니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피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황우석과 황빠의 이야기는 피로 써야만 했다. 그래서 18년 전 나는 21세기 파우스트를 쓰기로 결심했다.

김종영 교수가 황우석 사태를 배경으로 쓴 소설 『문두스』의 표지다. 

소설과 사회학의 공통점

소설과 사회학의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하기는 매우 어렵다. 소설은 결코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 진입장벽도 상당히 높다. 게다가 나의 목표는 21세기 ‘파우스트’가 아닌가. 괴테를 읽고 또 읽었다. 니체가 19세기 최고의 교양서라고 칭송한 『괴테와의 대화』도 여러 번 읽었다. 괴테는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제까지 살았던 지상 최고의 인간 중 하나였다. 괴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최고를 만나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괴테와의 대화』에 나오는 구절이다. 괴테라는 최고의 인간을 만나서 보는 눈이 달라졌다. 괴테는 21세기 파우스트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방법도 알려주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그래서 18년을 방황했다.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소설을 완성했을 때 나는 서재에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며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쳤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쓴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책을 출판한 이후 많은 이들이 말이 된다며 지지와 응원을 보냈고, 올해 5월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TV 다큐멘터리까지 방영되었다.

내가 ‘21세기 파우스트’를 꿈꾸면서 『문두스』를 썼다고 하면 또 말도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 18년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지 않았는가. 내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모사드 국장 바단보다 나의 심정을 잘 표현한 사람은 없다. “구원받았어! 이제야 구원받았어! 오, 하늘이시여, 드디어 구원받았어!”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황우석 사태를 연구하다 영감을 받아 ‘21세기 파우스트’ 『문두스』(소설)를 오랫동안 집필하여 최근 출판했다.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판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EBS 다큐멘터리 K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영).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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