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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재대, 존스 홉킨스, 그리고 위대한 기업인
태재대, 존스 홉킨스, 그리고 위대한 기업인
  • 김종영
  • 승인 2023.06.07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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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 ⑩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존스 홉킨스라는 위대한 기업인이 
미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미국을 바꾸었듯이, 
한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바꿀 
위대한 기업인들이 나타날까? 
대학은 꿈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한국 대학은 꿈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기업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에 이토록 수준 높은 기업인들이 있었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출판 이후에 나는 여러 기업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꽤 고무적이었다.

‘당신 말이 맞다.’ ‘지식경제 시대에 세계적인 대학이 전국에 필요하다.’ ‘나도 스탠퍼드와 실리콘밸리에 가 봤다.’ ‘세계적인 대학 없이는 세계적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 ‘서울대 10개 만드는데 우리 기업인이 도와줄 일이 없나?’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업인이 꽤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치인이 한국의 미래를 바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기업인이 나서야 한다. 

美 기업인이 연구중심대에 기부하는 이유

1876년 세워진 존스 홉킨스대학은 미국 대학이 세계 최고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존스 홉킨스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창조권력인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했다. 볼티모어의 기업인 존스 홉킨스는 전 재산의 반을 이 대학의 설립에 바쳤다. 이 대학의 초대 총장인 대니엘 길맨은 당시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이었던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었다.

공격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이 된 존스 홉킨스는 미국 전역의 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으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대학사의 대가 존 텔린은 미국에 ‘진짜 대학’이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존스 홉킨스와 같이 미국의 위대한 기업인들은 최고 대학을 세우는데 자신의 재산을 바쳤다. 에즈라 코넬(코넬대학, 1865년),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밴더빌트대학, 1873년), 존 록펠러(시카고대학, 1890년), 릴랜드 스탠퍼드(스탠퍼드대학, 1891년), 제임스 듀크(듀크대학, 1924년) 등 미국의 기업인들은 미국 전역에 최고의 대학을 세웠다.

미국 기업인은 사립대 뿐만 아니라 주립대에도 큰 기부를 했다. 당대 캘리포니아에서 스탠퍼드 가문과 쌍벽을 이루었던 허스트 가문은 버클리에 대대적인 기부를 하여 오늘날의 버클리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의 미국 기업인들은 새로운 대학을 세우기보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에 대대적인 기부를 하고 있다. 블룸버그 회장 2조3천904억(존스 홉킨스대학), 도어 회장 1조4천608억(스탠퍼드 대학), 나이트 회장 1조3천280억(오리건대학), 레스닉 회장 9천960억(칼텍), 무어 회장 7천968억(칼텍), 저커버그 회장 6천640억(하버드대학) 등 미국의 무수히 많은 기업인들이 대학에 기부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의 대대적인 기부는 미국 대학이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태재대와 존스 홉킨스의 차이

왜 미국 기업인들은 대학에 기부할까? 대학이 세상을 바꾸고 인재를 키우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거의 종교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존스 홉킨스, 릴랜드 스탠퍼드, 존 록펠러가 가장 잘한 일은 대학에 투자한 것이었다.

세계 의학의 중심인 존스 홉킨스대학,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킨 스탠퍼드대학, 노벨경제학상의 메카 시카고대학 등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기술력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국 기업인들의 대학에 대한 종교와 같은 믿음 때문이었고, 결국 그들이 옳았음을 역사는 증명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한국판 미네르바 대학인 태재대 설립을 위해 3천억 원을 기부했다. 태재대는 세상을 바꿀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태재대와 존스 홉킨스의 차이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전자는 교육중심대학이고, 후자는 연구중심대학이다. 대학사회학의 창시자 버턴 클락이 말했듯이 현대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의 승리’로 요약될 수 있다.

곧 인터넷·반도체·원자력·무선통신·mRNA 백신 등 무수히 많은 핵심 원천기술은 교육중심대학이 아니라 ‘연구중심대학’에서 개발되었다. 교육중심대학이 세상을 바꿀 인재를 길러낸다면, 연구중심대학은 직접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 기업인들은 거의 대부분 ‘연구중심대학’에 기부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학이 직접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 없다…위대한 기업인을 기다린다

존스 홉킨스라는 위대한 기업인이 미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미국을 바꾸었듯이, 한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바꿀 위대한 기업인들이 나타날까?

서울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서울대는 중장기 발전계획에서 컴퓨팅 단과대학(School of Computing)을 설립하여 AI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카이스트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의대 설립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BT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부산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조선·영화·기계·금융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경북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제2의 반도체 혁명을 일으켜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경상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우주항공학의 선두 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문제는 돈이 없다.

사실 내가 재직하는 경희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나는 강력한 리더십과 충분한 예산만 있으면 경희대가 SKY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3천억 원의 기부를 받는다면 노벨의학상을 위해 의대에 2천억 원, 노벨경제학상을 위해 경제학과에 5백억 원, 노벨문학상을 위해 국문학과에 5백억 원을 지원하겠다.

이것이 단지 꿈이라고 당신이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1891년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에 스탠퍼드대학이 세워졌을 때 누구도 이 대학이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상상치 못했다. 꿈이 없다면 창조도 없고 대학도 없다. 왜냐하면 대학은 꿈으로 이루어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은 꿈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기업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판했다(EBS 다큐멘터리K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영).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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