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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대학이 붕괴되고 있다…지배당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학문과 대학이 붕괴되고 있다…지배당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 김종영
  • 승인 2022.08.31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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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 연재를 시작하며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여러 쟁점들이 부상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교육’은 없었고, 교육부총리는 현재 공석이다. 반도체 인력양성부터 지방대 시대 선언, 만 5세 입학 등 어설픈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대국가는 지식국가이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나섰다. ‘학문의 주먹’ 연재를 시작한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학문의 주먹이 운다

정말 분했을 것이다. 민주정에서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스승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었다. ‘학문의 주먹이 운다. 저 수준 낮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다니!’ 플라톤은 분노의 눈물을 집어삼키며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정치인이 되기를 원했던 플라톤은 정치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철학자가 되었다. 너무나 분한 나머지 그는 국가는 수준 낮은 인간들이 절대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책까지 썼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하이라이트는 ‘철인왕’이다. 지식권력이 곧 국가권력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플라톤은 비열하고 수준 낮은 기득권 지배층을 향해 ‘철인왕’이라는 학문의 주먹을 날렸다. 플라톤의 ‘아카데미’는 ‘학문의 주먹들’을 길러낸 대학의 원형이다. 

대학에 반도체학과만 있는가?…‘지방대 죽이기’
  
한국 대학과 학계 도처에서 학문의 주먹들이 울고 있다. 국가와 정치의 수준을 눈뜨고 봐줄 수 없다. 보수와 진보 모두 마찬가지다. 지난 15년 동안 정부는 대학에 투자하지 않아 대학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OECD 통계가 보여주듯 초등학교보다 못한 투자를 받고 있는 곳이 한국 대학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들은 죽어가고 있다. 대학과 학계의 일자리가 급속하게 감소한 현실에서 학문후속세대는 절망과 분노에 빠져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학문의 주먹을 들고 국가로 진격해야 한다. 당신이 플라톤이다!

대학에 반도체학과만 있는가? 한국대학체제에 대한 마스터플랜, 즉 종합계획을 세운 이후에 반도체 학과와 인재를 양성해야지 갑자기 대통령이 정책 하나를 툭 던져서 대학 생태계는 혼란에 빠졌다.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수도권 집중은 더 강화될 것이다. 정부는 ‘지방대 시대’를 선언해 놓고 실질적으로 ‘지방대 죽이기’에 나서고 있으니 지방대 총장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비수도권 7개 권역 대학총장협의회 연합은 지난 7월 8일 수도권 정원 규제 완화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진=강일구

대학에는 관심이 없다. 이러다가 국가가 망한다

플라톤의 ‘철인왕’은 현대 국가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해석될 강력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국가는 ‘지식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네 가지 기둥은 무력, 법, 경제, 지식이다. 현대국가론의 대가 헬무트 빌케(Helmut Willke)는 국가의 역사적 형성에서 그 중심이 무력(15~17세기, 군대와 경찰로 이루어진 야경국가), 법(18~19세기, 법치국가), 경제 또는 산업화(19~20세기, 경제·세금·복지로 이루어진 사회국가), 지식(20~21세기, 지식국가)으로 옮겨왔다고 통찰력 있게 설명한다. 한국은 서구 국가가 지난 600년 동안 이룬 것을 단 70년 만에 이루었다. ‘압축국가’이기 때문에 엄청난 구조적 스트레스 속에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검경갈등이라는 국가 내부 무력 조정 문제로 또 5년을 보낼 것인가? 『국가』의 주먹이 운다.

무력, 법, 경제, 지식의 네 기둥은 국가권력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제 국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지식이다. 핵무기는 누가 만드나? 물리학자들이 만든다. 반도체는 누가 만드나? 공학자들이 만든다. mRNA 백신은 누가 만드나? 의사·과학자들이 만든다.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은 누가 만드나? 경제학자들과 사회복지학자들이 만든다. 곧 지식은 국가안보(무력)부터 경제, 복지,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장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 가운데에는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지식국가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대학으로부터 형성된다. 따라서 현대국가들은 19세기 초반부터 대대적으로 대학들에 투자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OECD 국가는 없다. 초등학교보다 못한 곳이 한국 대학이다. 학문을 모르는 입시의 신들이 교육계를 판치고 있다. 모두 초중등교육에만 관심이 있고 대학에는 관심이 없다. 이러다가 국가가 망한다. 2차 산업혁명은 독일 대학들이 이끌었고 3차 산업혁명은 미국 대학들이 이끌었다.

4차 산업혁명은 누가 이끄나? 당연히 대학들이 이끈다. 2차 세계대전의 핵무기는 미국 대학의 물리학자들이 만들었다. 곧 지식이 무력이자 경제이자 국가다. 법만 아는 자들이 판치는 한국 정치에서 국가는 절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국가적 혼란은 플라톤이 그토록 혐오했던 수준 낮은 인간들이 국가와 정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은 싸움이다. 원래부터 주먹이었다

학문은 싸움이다. 대부분 이 사실을 모른다. 『철학의 사회학』의 저자 랜달 콜린스는 2500년 철학사는 싸움에서 비롯되었고 이 싸움 덕분에 철학이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 철학, 제자백가, 독일관념론 모두 싸움을 통해서 창조성이 폭발했다. 현대의 학문 또한 모든 영역에서 싸움을 통해 발전한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이 싸웠고 mRNA 백신을 발명하기 위해서 의학자들이 싸웠다. 학문의 작동 방식은 싸움이다. 싸움을 피하는 것은 지배당하는 것이다. 그람시가 말하듯 가르치는 자가 지배하는 자다. 미국 대학과 학자들이 한국 대학과 학자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글로벌 지식 전쟁에서 대학의 붕괴는 곧 국가의 붕괴다. 지금 대학이 붕괴되고 학문후속세대가 붕괴되고 지방이 붕괴되고 있다. 비전도 없고 실력도 없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연합에 의해 학문과 대학이 붕괴되고 있다. 대학과 학문을 위해 저질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에게 지배당할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당신이 학문을 하는 자라면 싸움을 택해야 한다. 학문은 원래부터 주먹이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근 출판했다.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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