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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지옥+베버의 지옥+여자의 지옥’을 벗어나는 탈출법은
‘맑스의 지옥+베버의 지옥+여자의 지옥’을 벗어나는 탈출법은
  • 김종영
  • 승인 2022.10.13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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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② 맑스의 지옥 + 베버의 지옥 + 여자의 지옥 = 헬조선

현대국가는 지식국가이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세계 최저 출산율은 맑스의 지옥, 베버의 지옥, 여자의 지옥이 
강력하게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헬조선은 자유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중층적 사회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다.

   

맑스의 『자본론』과 나의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공통점은 ‘지옥탈출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론』 3권은 총 2,870쪽에 달하는데 이를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의 가치 창출과 자본 축적은 장시간의 노동 착취에 의해 일어나고 이 상황에서 노동자는 ‘사회적 지옥’을 경험하며 이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혁명으로 자본과 국가를 동시에 빼앗아야 한다. 

1864년 영국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아동들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에서 18시간까지 일했다. 1870년대 보고서에 의하면 공업이 발달한 맨체스터와 리버풀 노동자계급의 평균수명은 각각 17세와 15세였다. 『자본론』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상품, 화폐, 노동 간의 복잡한 관계가 아니라 19세기 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맑스의 세밀한 기록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단테의 지옥이 현실 세계에 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피와 살이 튀는 현장의 기록’이기에 강렬하다. 

19세기 자유론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존 스튜어트 밀이었고 그는 『정치경제학 원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밀은 이 책에서 노동자도 자본가와 같이 똑같은 자유인이며 노동자도 노동력을 가진 자본가라고 말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밀은 ‘위대한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자유주의 핵심 사상가다.

『자본론』의 부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이었기에 밀 또한 다른 정치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맑스의 저격 대상이었다. 맑스는 밀이 말하는 서류상(철학상)의 자유가 현실 어디에 있냐고 격분한다. 하루에 12시간에서 18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있겠는가. 맑스는 밀을 ‘엉터리 지식인’이라고 비난하고 밀을 위대한 지성이라고 말하는 지배계급의 지적 수준도 형편없다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19세기 영국의 ‘공장지옥’ 21세기 한국의 ‘공부지옥’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맑스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역사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역사라고 설명한다. 맑스는 노동시간을 줄이면 노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맑스는 ‘공부를 해라!’라고 외친다. 지옥에서 해방되기 위해 특히 정치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인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한국 성인들은 장시간의 노동시간과 출퇴근시간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다. 세계에서 책을 읽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공부의 몫은 아동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졌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공부라기보다 ‘공부 노동’이다. 한국 아이들의 공부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고 수면시간은 가장 짧다. 고등학생들은 하루 평균 6시간을 잔다. 사실상 모든 시간을 학교, 학원, 자습이라는 공부 노동에 바친다.

19세기 영국 아동들은 공장 지옥을 경험했고 21세기 한국 아동들은 ‘공부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죽고 싶다는 아이들이 33.7%나 되고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연구자들은 통계로 입증했다. 나는 한국 아동의 공부 지옥을 맑스의 지옥에 대비시켜 ‘베버의 지옥’이라고 부른다. 

학벌을 향한 ‘교육 무기 경쟁’이 가장 격렬하고 고통스럽게 일어나는 곳이 한국이다. 엘리트 대학을 향한 좁은 병목이 교육지옥을 만들어낸다. 그 탈출 방법은 무엇일까. 빚에 쫒겨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 「오징어게임」은 헬조선의 또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오징어게임」 포스터

교육과 여성의 ‘지옥탈출법’은 현실적인가

베버는 공부 지옥을 말하지 않았지만 학벌과 같은 사회적 지위의 중요성을 말했다. 베버를 따른 네오베버주의자들은 풍요로운 사회일수록 사회적 지위에 대한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진다고 강조한다. 곧 학벌을 향한 ‘교육 무기 전쟁’(educational arms race)이 일어나는데 선진국 중 이것이 가장 격렬하고 고통스럽게 일어나는 곳이 한국이다.

엘리트 대학을 향한 좁은 병목이 교육지옥을 만들어낸다. SKY라는 단 하나의 고속도로만 만들어 놓고 모든 학생들이 그 곳을 통과하라고 하니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베버의 지옥으로부터의 탈출 방법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한국의 절대 다수 지식인들은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지덕체’를 길러야 한다는 서류상의(교육학상의) 목표 이외에 ‘교육지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이들을 ‘좋은 막말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지덕체, 공동체, 정의, 평등, 민주, 공정과 같은 좋은 막말들이 정확한 현실 진단을 가로막는다. 교육지옥에서 이런 말들은 지옥 자본주의에서 밀이 외친 자유만큼이나 공허하다.  

한국 여성들의 지옥탈출법은 출산 거부다. 육아 독박, 남성 임금의 60%밖에 되지 않는 경제적 착취,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가부장 체제에 의한 문화적 억압, 지위재가 되어버린 높은 아파트 가격, 물리적 폭력에 항시 노출되어 있는 환경... 이들이 경험하는 한국은 지옥이다.

따라서 이들은 해방, 해방, 해방을 외친다. 「나의 해방일지」의 외침. 세계 최저 출산율은 맑스의 지옥, 베버의 지옥, 여자의 지옥이 강력하게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헬조선은 자유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중층적 사회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다. 

초저출산의 원인이 서울 집중 때문일까

절대 다수의 한국 지식인들이 초저출산의 원인을 서울 집중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대한 병목이 되어버린 서울에서 생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다수의 지식인들은 초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통계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이들이 통계의 기본을 아는지 의심스럽다. 독립변수(원인, 서울 집중)와 종속변수(결과, 초저출산으로 인한 연금과 노동 문제)가 있는데 왜 종속변수로 종속변수를 고치려고 하는가? 이것은 한국의 교육지옥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독립변수인 대학서열체제를 타파해야 하는데 자꾸 종속변수인 대학입시를 고치려고 하는 것과 똑같다. 

서울 집중이 문제라면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이 아니라 서울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에 대대적인 교육, 문화, 경제 인프라를 깔아주어야 한다. 한국의 절대 다수 지식인들이 현실과 논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헬조선에서 탈출하기란 요원하다. 『자본론』의 외침이 ‘공부를 해라!’라면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외침은 ‘생각을 해라!’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근 출판했다.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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