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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대학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 김종영
  • 승인 2023.02.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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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⑥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현대국가는 지식국가이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대학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중국 정부와 달리 
지난 20여 년간 한국 정부는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 모두 
대학에 대한 어떠한 국가전략도 없이 대학을 철저히 무시해 왔다. 
그야말로 국가적 자살행위다.

최근 출판된 윌리엄 커비 하버드대 교수의 『아이디어의 제국들, Empires of Ideas』이 미국 교육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커비는 “위대한 대학 없이 위대한 국가는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독일대학은 1810년 대학혁명을 일으켰고 100년 이상 세계 최고 대학이었다. 독일대학 덕분에 독일은 2차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19세기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20세기 세계 최강국은 미국이었고 미국대학, 특히 캘리포니아 대학들은 3차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커비는 21세기 초반 중국대학의 급부상에 거의 공포를 느끼며 놀라워한다. 그는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가 독일(19세기), 미국(20세기), 중국(21세기)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것은 제국의 이동과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이 세 국가의 국가전략은 똑같은데 그것은 경쟁과 특성화로 전국에 세계적인 대학을 세운 것이다.

2022년 세계대학랭킹, 중국대학의 급부상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세계대학랭킹은 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ARWU) 지표다. UCLA, 일리노이-어바나샴페인, 텍사스-오스틴, 듀크대 등의 대학보다 서울대를 더 높이 평가한 QS 랭킹을 당신은 믿겠는가? 위스콘신-매디슨, 미네소타, USC, 노스캐롤라이나, 밴더빌트 등의 대학보다 서울대를 높이 평가한 THE 랭킹을 당신은 믿겠는가? 대학에 대한 조그마한 상식만 있어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대학의 연구중심능력 즉 창조권력을 중심으로 세계대학랭킹을 측정한 ARWU에 의하면 2015년 세계 100위 안의 중국대학은 전무했다. 세계 101-200위에 9개, 201-300위에 8개의 중국대학이 속했다. 한국도 세계 100위 안은 전무했고, 101-200위에 1개(서울대), 201-300위 4개가 속했다.

7년이 지난 2022년의 세계대학랭킹은 한국의 입장에서 정말 쇼킹했다. 중국대학은 세계 1-100위 안에 9개 대학, 101-200위 안에 21개 대학이 포진했다. 세계 100위 안의 한국대학은 서울대(98위)가 유일했다. 세계 101-200위의 한국대학은 전무했다. 세계대학랭킹 200위 권의 중국대학과 한국대학을 비교하면 2015년 9:1이었고, 2022년에는 30:1이었다.

중국대학들은 미국대학들과 사실상 경쟁에 들어갔고 한국대학들은 폭망했다. 중국은 전국에 세계적인 대학들을 세웠고 한국은 단 하나만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웠다.

중국정부가 대대적으로 대학에 투자할 때 한국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식경제와 지식국가 시대에 한국인들 중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인들 중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미국대학들은 세계대학랭킹 100위 안에 39개가 포진되어 있지만, 오히려 대학전문가인 윌리엄 커비 하버드대 교수가 중국대학의 급부상에 엄청난 위기감을 토로했다. 

중국 대학은 ARWU 2022년 세계대학랭킹에서 세계 100위 안에 9개 대학, 101-200위 안에 21개 대학이 포진했다. 한국은 100위 안에 서울대가 유일하다. 사진은 2021년 4월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개교 110주년을 앞둔 칭화대를 시찰하는 모습이다. 사진=인민망

‘국가적 전략 부재’ 드러낸 윤 정부 대학정책

윤석열 정부가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은 대학에서 이루어지는데 고등학교 교육만 강조한다. 대학에 1조 7천억 원을 새롭게 투자한다고 하지만 이는 세계 100위 권 미국대학 하나 예산의 절반에 해당한다. 대학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이 사실 자체를 모른다.  

윤석열 정부의 대학정책은 대학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지방대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지자체에 대학예산과 전략을 맡기려는 방안은 대혼돈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과 지역 대학들이 결탁하여 대학을 ‘타율적인 정치적 권력’에 맡겨버리기 때문이다.

대학총장들과 교수들도 대학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이 부족한데 지자체장이 대학을 잘 알겠는가? 윤 정부가 기획하고 있는 대학정책은 대학에 대한 국가적 전략 부재에 덧붙여 지역대학을 정치판으로 만들고 혼돈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수습 불가의 국면에 직면할 것이다. 

세계 최고 대학체제 만든 ‘대학 자율성’

캘리포니아대학체제가 세계적인 대학체제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할 때 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대학전문가들이 ‘중앙집권적으로’ 기획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은 매우 특이하게 캘리포니아 헌법이 그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입김을 최소화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대학체제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캘리포니아대학이 헌법에 보장한 권리를 바탕으로 ‘중앙집권적’으로 대학개혁을 주도해 연구중심대학-교육중심대학-직업중심대학의 기능분화를 이룸으로써 대학들과 지역들 간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중국대학의 세계적인 부상은 1995년의 211공정, 1998년의 985공정, 2015년의 ‘세계일류대학화일류학과건설’ 정책 등 중앙정부의 국가적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 중국 전역에 세계적인 대학 만들기를 한 것은 중국 중앙정부의 기획·조정·전략 없이는 불가능했다. 중국대학은 서구대학에 지배받아 왔는데 이제는 그 지배에서 벗어나 서구대학과 맞서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미국대학은 100년 이상 독일대학에 지배당했다. 미국대학을 개혁한 사람들은 독일 유학파였다. 미국대학이 독일대학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나치의 인재 말살 정책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노벨 수상자들까지 내쫓았으니 그야말로 국가적 자살행위였다. 7천여 명의 인재들이 나치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핵무기를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오펜하이머조차 독일 유학파였다. 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대학전쟁’이었다.  

전 지역에 세계적인 대학 세우는 중국

중국은 1960년대 중반 문화혁명을 일으키며 10여 년 동안 대부분의 대학을 폐쇄해 버렸다. 1978년 중국대학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대학생 수는 불과 86만 명이었다. 2000년에는 700만 명, 2018년에는 4천490만 명으로 미국 대학생 수(1천965만 명)의 두 배 이상이 되었다.

1999년 중국의 대학진학율은 3%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50%가 대학에 진학했다. 세계교육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대학을 폐쇄했을 때 미국은 캘리포니아 대학들이 3차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마오쩌둥은 국가적 자살행위를 한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 대학인 칭화대 이공계 출신으로 마오쩌둥과 달리 중국대학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왔다. 미국 전역에 세계적인 대학들을 세운 것과 똑같이 시진핑은 중국 전역에 세계적인 대학을 세우고 있다. 대학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중국 정부와 달리 지난 20여 년간 한국 정부는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 모두 대학에 대한 어떠한 국가전략도 없이 대학을 철저히 무시해 왔다. 그야말로 국가적 자살행위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근 출판했다.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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