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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에서 민주주의까지...‘인도네시아의 힘’
노동개혁에서 민주주의까지...‘인도네시아의 힘’
  • 김정현
  • 승인 2023.04.25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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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의 8개 기본협약 비준 완료한 인도네시아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며 서강대 동아연구소는 네 차례에 걸친 인도네시아 정치·외교 강연 시리즈를 기획했다. <교수신문>은 이 강연 시리즈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여 소개한다. 지난 21일 열린 두 번째 강연은 전제성 전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인도네시아의 힘: 노동개혁에서 민주주의까지」이다. 김정현 씨(서강대 동남아시아학 석사과정)가 정리했다. 
정리=김정현 서강대 동남아시아학 석사과정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이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를 유지해오고 있는 국가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 21일 전제성 전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인도네시아의 힘: 노동개혁에서 민주주의까지」를 강연했다. 사진=서강대 동아연구소

과거 수하르또 정권 당시의 노동탄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희생은 수하르또 권위주의의 붕괴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성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역사에서 노동운동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 요소로서 민주주의와 함께 심화해 왔다. 

수하르또 권위주의 정권 당시 탄압받던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은 1993년 5월의 마르시나(Marsinah) 변사사건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중부 자바 시도아르조(Sidoarjo)의 한 군납 시계공장의 여공이자 노동운동가로서 활동하던 마르시나가 지역 군부대에 소환된 후 3일 만에 심하게 훼손된 변사체로 발견되자, 노동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세력들의 전국적인 진상규명 운동이 조직됐다. 

이러한 진상규명 운동은 수하르또의 노동 탄압에 대한 저항의 시작점으로서, 파업과 단체행동이라는 노동자들의 자기방어적 수단을 통해 인도네시아군과 수하르또 정권 말기의 민낯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1998년 민주화 이후 노동절(메이데이) 행사에서 볼 수 있듯이 ‘보다 과감한’ 노동자들의 외침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민주화 이후 노조를 중심으로 한 조직화에 성공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민주주의를 공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라는 평가를 받는데, 인도네시아의 기업들이 노조들의 파업과 노사교섭에 협조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이 그 성공을 증명한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업무로 인정해 주고 있으며, 심지어는 연대시위참여를 지원해 주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노사문화와 확연한 차이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인도네시아는 노동 탄압에 대한 저항을 통해 우리나라와 확연히 다른 노동문화를 일궈냈다. 사진=서강대 동아연구소

 

특유의 민주적 정치문화인 ‘회의와 대화’·‘협상과 타협’

1990년 2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의 결성 이후 전국적인 연대조직을 가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즉 양대노총 중심의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2020년 기준 16개 노총 산하 106개 업종 노동조합연맹(노련)이 있으며, 이외에도 55개의 독립노련이 활동 중이다. 

이러한 다양한 노조들의 병립은 얼핏 보면 노동운동이 극심하게 분열된 것처럼 보이나 국가와 기업으로부터의 포섭(cooptation)을 방지할 수 있을뿐더러 인도네시아 특유의 민주적 정치문화인 ‘회의와 대화’ 그리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참여의 포괄성과 다양성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노조들은 지역 기반의 협의체를 통해 ‘회의와 대화, 협상과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고 있으며, 이른바 ‘거리정치(street politics)’로 정의할 수 있는 다양한 단체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교섭력을 효과적으로 높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노동정치의 발전은 2002년 개정헌법의 ‘사회보장권’ 명시, 2004년 국가사회보장제도 수립, 그리고 2011년 사회보장관리공단에 관한 법률 제정 등으로 그 결실을 보고 있다. 법률제정을 압박하고, 실제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은 따라서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 차원을 넘어 공세적 투쟁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일련의 제도 수립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혜택을 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나아가서 다른 노동자들의 권익까지 고려하는 인도네시아 노동정치의 연대성을 파악할 수 있다.

회의와 대화, 협상과 타협, 그리고 광범위한 연대를 중시하는 인도네시아의 노동정치는 세계적인 기준에도 부합한다. 수하르또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진 지 불과 3년만인 2000년 인도네시아는 국제노동기구(ILO)의 8개 기본협약(핵심협약) 비준을 완료했다. 이는 현재까지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자연스럽게 국제노동조합연맹(ITUC)이 2014년에 발표한 세계노동권리지수에서 한국이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수준에 머무른 반면 인도네시아는 상대적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인도네시아의 힘’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부분이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외교적 사안에 대한 적극적 관여를 통한 독립성, 자주성 확보’라는 원칙을 외교의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적극적 관여’는 앞에서 언급한 ‘대화와 협상’과 그 맥이 닿아있다. 
인도네시아는 그들의 ‘대화하고 토론하는’ 민주주의를 활용하여 동남아시아의 지역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물론 내부적으로 국민적 지지와 호응 확보라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국민적 동의를 얻는 데에 성공한다면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는 동남아시아, 나아가 아시아 지역 평화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서강대 동아연구소의 인도네시아 정치·외교 강연은 총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사진=서강대 동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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