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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반동의 서막, 인도네시아 지방선거
[글로컬 오디세이] 반동의 서막, 인도네시아 지방선거
  • 정정훈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21.05.2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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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오디세이_서강대 동아연구소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지난 1월 12일 중국 시노백사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AP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지난 1월 12일 중국 시노백사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AP

 

인도네시아 2020년 동시지방선거는 현직 대통령인 조코 위도도(이하 조코위)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이하 기브란)의 선거였다. 인도네시아 주요 일간지와 이를 참고하여 기사를 작성하는 해외 언론들은 선거 쟁점을 일찍이 ‘조코위 아들 출마가 갖는 도덕적 결함’으로 단정하였다. 조코위 정부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악습을 되풀이 한다는 기시감을 안기면서 ‘개혁정부’라는 수사의 허구성에 대해 비판하였다.

인도네시아 지방선거는 민주화의 산물이다. 1998년 수하르토 군사독재정부가 물러난 이후, 지방 권력 선출에 있어 직접 선거에 대한 열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2005년 지자체 별 직선제 선거에 이어 조코위 대통령 집권 이후인 2015년 12월 9일에 첫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2020년 동시지방선거는 당초 9월 23일로 예정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한 차례 연기돼 12월 9일에 실시되었다. 총 1억 600여만 명의 유권자 투표로 9명의 주지사, 37명의 시장 그리고 224명의 군수를 선출한다. 투쟁민주당, 골카르, 그린드라, 나스뎀, 국민각성당, 민주당, 번영정의당, 국민수권당, 통합개발당 등 16개 정당이 참여하였다

선거의 결과는 거대 양당인 투쟁민주당과 골카르의 압승으로 요약된다. 최근 치러진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 투쟁민주당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중부 자바, 발리, 북술라웨시 지역은 이번 선거에도 투쟁민주당에게 압승을 안겨주었다. 북수마트라 지역은 야당인 그린드라, 국민수권당, 번영정의당의 영향력이 지대한 곳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지원을 받은 현직 시장과 군수가 투쟁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집권 세력 성적 평가 vs 족벌주의의 재림

 

선거결과와 별개로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은 기브란과 대통령의 사위인 보비 나수티온의 시장 출마였다. 특히 기브란의 출마지역이 조코위가 시장을 역임한 지역이라는 특수성이 부각되면서 ‘반칙과 특권’ 이슈가 선거쟁점화 되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소위 ‘정치 왕조’로 분류된 후보자는 기브란과 보비를 포함하여 124명이었고, 이 중 50명의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들 중 기브란은 기존 인도네시아 정치의 고질병으로 지목되었던 ‘후원 네트워크’와 ‘족벌주의’라는 상징성을 온전히 부여 받은 채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군부독재가 무너진 후 ‘보수’와 ‘개혁’ 담론은 인도네시아 선거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인도네시아인의 열망은 선거에 있어 경제발전을 어떤 정치세력이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택의 과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2020년 지방선거는 조코위로 상징되는 개혁 담론이 그의 재선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는 점, 동시에 과거 수하르토로 대표되는 군부와 정치엘리트 계층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신화 역시 많이 희석되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논의된 다양한 정책들은 현 정부의 방향성,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돌아보게 한다. 주요 경제 분야 정책 중 ‘인프라 강화’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도서 지역, 수도권 이외의 지방 그리고 농촌경제 활성화와 연결된다. 또한 ‘샤리아 경제’는 ‘이슬람적 가치가 공공적 영역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유권자의 요구에 대한 반응이다. 결국 조코위로 대표되는 ‘개혁’ 세력이 실증적인 경제발전을 이끌면서 정치적 저변도 확장된 셈이다.

 

개혁의 동력은 정책의 방향성과 성과에 있다

 

인도네시아 선거와 정치가 가진 여러 전형적 문제점을 대통령 아들의 출마와 결부시켜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야당의 선거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수하르토와 그의 자녀들의 천문학적인 국고 횡령, 이전 정부 집권연립내각의 주요 인사들의 부패혐의 등을 잊지 않았다. 선거 과정에서 공직후보자와 친인척의 법적∙도덕적 평가는 매우 중요하지만, 이에 더하여 제도적 개혁을 추동하는 정치세력이 어느 집단인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동반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 기간 공직자 부패감시기구인 부패척결위원회(KPK)의 조사와 기소독립성을 훼손하는 법안 통과의 문제점이 주목 받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020년 인도네시아 지방선거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조코위 정부의 개혁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이후 선거에서 만약 정부 여당이 패배한다면, 이미 부정적인 상징성이 쓰인 기브란은 다시 소환돼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될 것이다. “적어도 태평양의 한 섬에서 일어났던 일이 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라는 인류학자 기어츠의 언설처럼, 2020년 인도네시아 지방선거는 개혁에 내재된 다양한 반동에 대한 비교학적 시각을 제공한다.  

 

 

정정훈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전북대에서 문화인류학박사를 받았다. 전공은 인도네시아 전통과 문화관광 연구이며, 현 한국동남아학회 교육위원장이다. 『세계화의 창(窓) 동남아: 사회문화의 혼종적 재구성』(공저, 2018)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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