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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국가자본주의..‘정경유착·정실주의’는 오래된 문제
인도네시아의 국가자본주의..‘정경유착·정실주의’는 오래된 문제
  • 전경진
  • 승인 2023.06.12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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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기업의 정당성 확보가 시급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며 서강대 동아연구소는 네 차례에 걸친 인도네시아 정치·외교 강연 시리즈를 기획했다. <교수신문>은 이 강연 시리즈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지난 9일에 열린 마지막 강연은 김경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인도네시아의 경제개발전략과 국가자본주의」이다. 전경진 씨(서강대 동남아시아학 박사과정)가 정리했다. 
정리=전경진 서강대 동남아시아학 박사과정

지난 9일, 김경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했다. 사진=서강대 동아연구소

현재 집권 중인 조코위(Jokowi)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14년부터 집권하여 내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조코위 정권의 가장 구체적인 성과는 사회기반시설 확충, 세계 최대 금 광산인 프리포트(Freeport) 인수 등을 통한 경제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가 존재한다.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에서 국유기업의 총자산은 GDP 대비 60%를 웃돌며, 자원산업·유틸리티·교통뿐만 아니라 금융업·제조업·건설업 등 인도네시아 내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요한 경제주체다. 이러한 국유기업은 조코위 정권이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상정한 3대 과제인 ‘사회기반시설 확충’, ‘외자유치’, ‘자원기반 산업화’에 중요한 참가자이자 원활한 정책추진의 핵심 동력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를 회복하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하며 안정적인 경제성장 추세를 보여주었지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소득수준이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2014년 집권하기 시작한 조코위 정부는 경제위기 이후 민간분야의 투자에 의존하여 발생한 더딘 사회기반시설 확충으로 이러한 뜨뜻미지근한(mediocre) 경제성장 추세의 본질적인 구조를 개편하는데 목표를 두고 각종 경제정책을 수립하였다.

여러 정책 추진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소득수준은 여전히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사진=서강대 동아연구소

인도네시아는 1990년대 이전까지 이른바 ‘동아시아 경제 추격’의 주인공이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정치적 혼란과 공공부문의 마비, 그리고 경제적 위기까지 겪는 등 아시아 위기 국가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으며 경제성장 추세가 대폭 꺾였다. 특히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워싱턴 컨센서스에 입각한 개혁을 수용하였고, 이에 따라 필연적·구조적·자발적으로 중앙정부의 역할이 축소되었으며, 그동안의 개발주의와 산업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는 후순위로 밀려났으며, 사회기반시설 확충은 민간영역에서의 투자에 의존하게 되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이 세 번 바뀌는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는 동안 재정적자는 GDP의 3% 이내로, 국가부채는 GDP의 60% 이내로 유지하는 재정준칙이 수립되었다. 2004년 첫 직선제로 당선되어 수립된 유도요노 정권은 집권 기간 대부분을 현상 유지를 목표하였기에 경제정책에는 소극적이었고, 민간투자 유치를 통한 사회기반시설 개발을 도모하였으나 민간업체들의 매각을 통한 자산 플리핑 행위가 만연하면서 이 방식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유기업은 중앙정부부처인 국유기업부(BUMN)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대통령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정부가 정부자본유입(Penyertaan Modal Negara,PMN)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조코위 정부가 수립한 경제성장 정책의 핵심 동력인 인도네시아의 국유기업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수카르노 집권 시기 네덜란드계 기업의 잇따른 국유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수하르토 집권 시기 국유기업은 인도네시아 고도 경제성장의 원천이자 국가자본주의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국유기업들도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IMF 주도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나, 여전히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유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국유기업은 2000년대 이후에도 생존할 수 있었다. 

조코위의 집권 중 국유기업은 조코위 정권의 개발 요원(Agent of Development)으로서 활동하며 대규모 정부 지원 및 정책사업 참여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였고, 국유건설사들이 조코위 정부가 추진하는 고속도로, 항만 등 인프라건설을 전담하였다. 조코위 정부는 국유기업의 배당률을 인하하고 자산재평가 관련 혜택, 발주 특혜 및 정책자금을 지원하였고, 제한된 정부 재정 여력과 개발에 필요한 재원확보를 위해 개발금융기관을 설립, 확대하였다. 

이러한 결과,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하는 가시적인 인프라 건설 성과를 달성하였다. 조코위 정권 1·2기 통틀어 건설된 유료고속도로의 연장은 약 1,800km로 유도요노 정권 시기 건설된 고속도로 연장의 8배이자 수하르토 정권부터 메가와티 정권까지 건설된 고속도로의 약 3배 수준에 달한다. 이렇게 조코위 정권에서 자리를 확고하게 잡은 국유기업은 인도네시아의 신수도개발 프로젝트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는 국유기업의 효율성을 증진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별 국유지주회사를 설립하여 유사 산업군 내 국유기업을 지주회사 산하로 배치했다. 이중 프리포트 인도네시아(Freeport Indonesia) 지분 51%를 국유화하며 설립된 국유지주회사 인도네시아 광산지주(MIND ID)를 주목해야 한다. 프리포트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집권 이후 인도네시아의 시장개방과 외자도입을 상징하던 미국계 금·동 채광기업이었는데, 이를 국유화하고 광업 관련 국유기업을 국유지주 산하로 집약시키며 광물 수출규제를 도입하는 행보는 자국 중심으로 광물가공 관련 제조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이다. 

여타 산업에서 보여주던 시장개방 추세와는 전혀 다르게 광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자원기반 산업화 정책은 보호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토대로 자국의 니켈을 활용한 전기자동차 가치사슬을 구축하고자 하는 인도네시아의 구상을 대변한다. 그러나 국유기업들은 과거처럼 국유기업집단 내에서만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과의 협력 및 합작투자를 통해 민간영역에서의 경제활동을 동시에 촉진하고 국제시장에서 우위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김경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인도네시아의 경제개발전략과 국가자본주의」 발표를 함께한 이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서강대 동아연구소

조코위 정권에서 돌아온 국가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이행 이후 진행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추진에서 다양한 이들의 합의가 필요하며, 특히 정부부처와 각 기관 견제가 이뤄진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내 주요고속철도 프로젝트에서는 국유기업부가 전반적인 프로젝트 개발을 관장하나, 환경산림부는 환경 영향을, 교통부는 프로젝트 결과물의 질적수준을, 재무부는 재정 및 국유기업의 건전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프로젝트 내에서 부처 간 견제가 이뤄진다. 

더불어 자산감독청(BPK), 재정개발감독청(BPKP), 경쟁감독위원회(KPPU), 부패방지위원회(KPK) 등 다양한 감시기관이 국유기업의 기업활동 내 부정부패가 존재하는지 감시한다. 이러한 견제와 감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의 최고경영자가 고가의 오토바이를 자사 항공기로 밀수하는 사례가 적발되었고, 조코위 대통령의 측근들이 주요 국유기업의 이사 등 요직으로 배치되면서 정실주의라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과거부터 부정부패, 정경유착, 정실주의가 인도네시아의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되었던 만큼 이 역시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가자본주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성공적인 정책수행을 위해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인도네시아의 국유기업과 국가자본주의는 과거의 이념적 정책을 넘어 민간영역의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는 영역에 투입되어야만 하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고, 민주주의 제도 아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견제와 협력이 필요한 만큼, 개발을 위한 국가자본주의를 지속하기 위해서 정부는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한국기업도 인도네시아 내 국유기업의 위상과 국가 경제 내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들과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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