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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에 예술혼 불태운 정선의 ‘인왕제색도’
76세에 예술혼 불태운 정선의 ‘인왕제색도’
  • 김재호
  • 승인 2022.10.17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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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나이 듦-1)

이번 심포지엄에서 가장 강렬했던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1751)이고, 다른 하나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의 「결혼」(1791∼1792)이다.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노년에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고야의 「결혼」은 당대의 세태를 비판하고 노인에 대한 관점을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겸재 정선은 노인이 되어 기존까지 해왔던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인왕제색도」에 표현했다. 그림=위키백과

장진성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노년의 거대한 예술적 실험: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발표했다. 정선은 그 당시 최고의 인기 화가였다. 그래서 그림 주문이 많았다. 정선은 수응화를 택했다. 제자를 동원해 대필을 시키기도 했다. 장 교수는 “수응화는 화가가 그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의 그림 요청에 부응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대충 그린 그림, 즉 정성과 공력이 들어가지 않은 범용(凡庸)한 그림을 지칭한다”라고 설명했다. 정선은 수응화 제작으로도 바빴다. 정선은 시간이 모자라 붓을 두 자루 쥐고 그림을 그릴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회화에서 볼 수 없었던 긴 화면

그런데 정선은 그의 나이 76세에 「인왕제색도」로 역사에 남는 화가로 기록됐다. 장 교수는 “현존하는 정선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이라며 “「인왕제색도」는 당시 76세의 노인이었던 정선이 이룩한 거대한 예술적 실험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인왕제색도」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눈앞에 성큼 다가온 거대한 인왕산의 위용, 묵면(墨面)으로 처리된 암벽의 육중한 괴량감(塊量感), 활기 넘치는 화면, 호방(豪放)한 필묵법(筆墨法)은 정선이 그림의 대가였음을 알려준다. 이 그림의 화면 구성은 정선의 다른 작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가로 138.2cm, 세로 79.2cm로 옆으로 긴 화면을 그가 사용한 것은 조선시대 회화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대담한 시도였다.” 정선은 인왕산을 클로즈업 해서 묘사했는데, 이 때문에 보는 사람들은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안개가 걷히는 인왕산의 장대한 모습에 시각적으로 압도당한다”라는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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